일본 정부의 경제 보복 조치에 맞서 자발적으로 시작된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일본산 먹거리'로 번지고 있다. 동네 마트에 이어 전국 슈퍼마켓·편의점 등이 일본산 맥주와 담배는 물론이고 음료와 과자·소스까지 '먹고 마실 수 있는' 전 품목을 안 팔겠다고 나서면서다. 소비자들도 일본산 대신 국산과 타 수입 식품 등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불발을 거듭한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이번에는 성공할지 주목된다.
"안 판다"…마진 버리면서까지 보이콧 나선 상인들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이하 총연합회)는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인근 소녀상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일본 제품 판매 중단 확산을 선포했다.
대형마트와 편의점 등에서 일본 제품이 차지하는 매출이 적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중소상인들은 마진 하락을 감수하면서도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란 초강수를 꺼내 든 셈이다.
앞서 총연합회는 지난 5일 같은 장소에서 "(일본의 반도체 제조 핵심 소재) 수출 제한 조치는 위안부·강제징용 배상 문제에 대한 보복"이라며 "일본 제품의 판매 중지에 돌입한다"고 밝힌 바 있다.
열흘 만에 다시 열린 기자회견은 일본 제품 판매 중단에 동참하는 지역과 업종이 확대된 데 따른 것이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총연합회와 산하단체 관계자를 비롯해 편의점주와 전통시장 상인 대표자 등이 참여했다.
정연희 한국수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 정책실장은 "일본산 담배와 맥주는 매출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품목"이라면서도 "향후 연합회 확대회의에서 간장 등 일본산 소스류에 대한 판매 중단이 결정되면 지금보다 강도 높은 불매운동을 전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호준 한국편의점네트워크 사무총장은 "편의점은 본사에 물건을 일괄적으로 반품하기 어려운 조건이라 점주들이 일본산 제품들을 진열하지 않거나 보유 물량을 소진하고 난 뒤 추가 발주하지 않는 방식으로 동참하고 있다"며 "편의점주들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 일본 제품 판매 중단에 함께하겠다"고 강조했다.
전통시장 상인 대표로 나선 김진철 서울상인연합회 부회장은 "전통시장은 주로 1차 상품을 취급하는 곳이지만 혹시라도 일본 제품을 취급하는 점포가 있으면 이들을 설득해 팔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현재 일본 제품 판매 중단에 동참한 마트는 3000곳을 넘어섰으며, 편의점·전통시장 점포 등도 잇달아 보이콧에 나서고 있다. 특히 2만여 개의 슈퍼마켓이 가입한 슈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에서도 판매 중단에 참여하는 회원이 늘고 있다. 이들은 각 점포에서 취급하는 일본 제품을 국산이나 다른 해외 제품으로 대체하고 있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대체 품목을 구매하더라도 3% 안팎의 매출 하락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총연합회는 "소비자들이 국내산 제품을 대체 구매하고 있지만 연합회에서는 대략 3%가량의 매출 하락이 있을 것으로 본다"며 "연합회는 이런 매출 감소를 무릅쓰고서라도 일본의 만행을 규탄하겠다"고 밝혔다.
총연합회는 기자회견 직후 아사히 맥주를 'NO SELLING NO BUYING(팔지도 말고 사지도 말자)'이라고 적힌 쓰레기통에 버리는 퍼포먼스를 했다.
[연합뉴스 제공]"안 산다"…맥주 판매량 '뚝'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먹거리로까지 전방위로 확산되면서 그 효과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과거 실패의 역사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일본 제품 불매운동 역사는 무려 반세기가 넘었다. 1965년 한일 회담 시작 이후 독도·역사 교과서·위안부·일본 정치인의 말실수 등의 사건 때마다 불매운동이 반복적으로 일어났다. 하지만 성공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일본 언론인 JB프레스가 최근 "한국의 일본 제품 불매운동은 반복적으로 벌어졌다. '반복'적으로 이뤄진다는 건 '효과가 없었다' 또는 '계속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결국 매년 금연이나 다이어트 선언을 반복하는 것과 같다"고 분석한 배경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어떨까.
일단 일본 맥주 제품은 어느 정도 영향을 받고 있다.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일본 맥주 대신 국산 맥주와 타 수입 맥주를 찾는 움직임이 포착된다.
지난 16일 이마트(왕십리점)에서 만난 한 소비자는 "아사히·기린이치방 등 일본 맥주가 없어도 괜찮다"며 일본 맥주를 대신해 국산 맥주인 하이트를 카트에 담았다.
또 다른 소비자는 "일본 맥주 말고도 맛있는 수입 맥주는 많다"며 "일본 제품 불매운동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다"고 했다.
이 같은 움직임은 마트별 일본 맥주 매출 하락을 통해서도 확연히 볼 수 있다.
이달 1일부터 14일까지 이마트의 일본 맥주 매출은 24.6% 줄었다. 같은 기간 수입 맥주 매출이 1.9% 오른 것을 감안하면 의미 있는 수치다.
롯데마트에서도 일본 맥주 매출은 10% 넘게 떨어졌다. 수입 맥주 전체 매출 감소치인 -3%대를 훨씬 웃도는 수치다. 특히 수입 맥주 매출 2위를 자지했던 아사히는 4위로 추락했고, 기린이치방도 7위에서 10위로 떨어졌다. 불매운동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업계에서는 일본 맥주의 매출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는 것을 두고, 상대적으로 대체재가 많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실제 일본 맥주가 없어도 마트에는 다양한 외국 맥주와 국산 맥주가 즐비하다.
대형마트 한 관계자는 "맥주의 경우는 불매운동 전부터 국산 테라 등의 맥주가 강세를 보이던 상황"이라며 "타 수입 맥주 등 대체재도 많아 효과가 바로 나타나고 있다"고 귀띔했다.
반면 일본산 담배 판매량은 불매운동 전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편의점 업계에 따르면 JTI의 메비우스와 카멜 등 일본산 담배 판매량 감소 폭은 0.1% 미만에 불과했다. 담배의 경우 고객 충성도가 높은 제품이다 보니 이 같은 차이가 만들어진 것으로 풀이된다.
편의점 업계 한 관계자는 "일본산 맥주의 매출은 큰 폭으로 감소했지만 담배는 영향이 거의 없다"며 "일본산 맥주와 담배 모두 일부 소매점을 중심으로 반품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두 제품의 판매량에 큰 차이가 나고 있어 매출에 미치는 영향도 전혀 다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흡연자들의 경우 같은 회사 담배라도 특정 제품에 대한 선호가 뚜렷한 데다 변화를 꺼리는 만큼 불매운동 효과가 거의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반면 일본산 맥주가 이처럼 단기간 급감한 전례가 없었던 만큼 향후 추이를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