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순간 '한 방'이 있는 박소담(27)이다. '검은 사제들(장재현 감독)'을 통해 단박에 충무로가 주목하는 샛별로 떠오른 박소담은 이후 쉼없는 열일과 그 시간만큼의 휴식을 거쳐 '기생충(봉준호 감독)'으로 다시 존재감을 높였다. 언제나 잘했고, 또 잘 할 것이라는 신뢰를 짧은 시간 누구보다 탄탄하게 쌓을 수 있었던 박소담이다. 데뷔 초부터 눈에 띄었던 독보적인 분위기까지 더해지면서 탄탄대로 꽃길만 예약돼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활동이 주춤했던 지난 1여 년은 단순히 그냥 쉬고 싶어서가 아닌, 자연스레 찾아 온 슬럼프와 싸우며 홀로 감내해야만 했던 성장통의 시간이었다. 고뇌와 고민이 있었기에 '기생충'이라는 기회에도 당연하지 않은 감사함이 뒤따른다. 철부지 어린 스타, 거품 인기는 박소담 스스로 흘려 보냈다. 모든 선택엔 이유가 있고, 그래서 똑똑하다 평가 받는다. '배우 박소담'의 장기전은 이제 다시 시작이다.
-'기생충' 레이스에 대해 '얼떨떨하다'는 표현을 여러 번 언급했다. "진짜 얼떨떨하다. 칸에 다녀온게 맞나? 개봉을 한게 맞나? 내가 출연한게 맞나? 자꾸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웃음) 내 자신이 너무 낯설 정도다. 이렇게 많은 분들과 인터뷰 하는 것도 처음이다."
-캐스팅 소식을 들었을 때 어땠나. "감독님은 캐스팅을 하고 시나리오를 쓰신다고 하더라. 처음 들었던 이야기는 '송강호 선배님의 딸이고 최우식의 동생이다'는 것이 전부였다. 이후 두 달간 연락이 없었다. 내 입장에서는 너무 조마조마하고 애가 탔다. 나중에는 그냥 나를 안 쓰시는 줄 알았다.(웃음) 근데 알고보니 모든 배우들이 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더라. 정작 감독님은 '왜 그런 생각을 했지? 내가 분명히 이야기를 했는데'라고 하면서 그저 시나리오를 쓰느라 바쁘셨다고 했다. 그렇게 드문드문 연락을 한 줄도 몰랐다고.(웃음) 그만큼 매달리고 싶은 작품이었다."
-기다려 받은 시나리오는 어땠나. "잘 읽혔다. 나는 연기를 시작한지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시나리오를 보는 눈이 생겼다고 할 수 없다. 그래서 '시나리오가 어떻다, 작품이 어떻다'는 것을 확신할 수 없지만 '기생충'은 정말 잘 읽혔다. 특히 내가 연기해야 할 기정이의 대사들을 보면서 '감독님이 벌써 나에 대해 다 아시나?' 싶을 정도로 대사들이 입에 착착 붙었다. '빨리 연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했는데 '이러다 혹시 또 연락이 안 오면 어떡하지' 싶기도 했다.(웃음) 너무 하고 싶은만큼 불안감도 쉽게 떨쳐지지 않더라."
-누구나 탐낼 수 밖에 없는 작품이었겠지만, 그래도 더 탐났던 이유가 있을까. "그동안 강한 역할들을 많이 했다. 기정이도 캐릭터 자체로는 약하지 않지만 '현대물에서 내 또래 캐릭터를 맡아 내 입으로, 내 말로 생활 연기를 하고 싶다'는 갈증이 있었다. 28살의 기정이를 읽는데 못하게 되면 너무 억울할 것 같더라. 그 정도로, 그 이상으로 원했다."
-봉준호 감독과는 첫 인연인가. "사실 '옥자' 때 미팅을 했다. 감독님이 미자 역할에 어울리는 배우를 찾아가 내 어떤 모습을 보고 '이 정도면 10대 캐릭터를 맡아도 가능 하겠는데?' 싶으셨다고 하더라. 근데 막상 불러놓고 보니 내 나이가 너무 많았던 것이다. 24살~25살 때였다. 감독님이 처음 생각했던 미자보다 10살이나 더 많았다.(웃음) '아쉽게도 미자는 못하겠지만 이왕 왔으니 차나 한 잔 마시고 가라'고 하셨고 한 시간 반 정도 대화를 나눴다. 오히려 어떤 목적이 있는 오디션이 아니라 엄청 편하게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그 때의 만남이 '기생충'으로 이어질 줄은 상상도 못했다."
-영화를 보며 기정에게 가장 궁금했던 지점은 '어떻게 다송이(정현준)를 휘어 잡았을까'라는 것이었다. "검색 찬스를 쓰지 않았을까? 하하. 기정이도 그 나이 또래의 아이를 잘 다루는 진짜 방법은 몰랐을 것이다. 아이를 키워본 것은 아니니까. 다만 연교(조여정)는 집안 일을 잘하는 여자가 아니고, 다송 같은 또래의 아이들은 교감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다송이가 불안해 했던 지점도 아마 그런 부분이 없어서 그런 것 아닐까' 유추할 수 있다. 기정은 꼭 다송을 무릎에 앉혀두고 수업한다. 살과 살이 맞닿을 때, 접촉에 의한 교감을 통해 아이들은 안정감을 느끼고 마음을 연다고 하더라. 때리면 오히려 더 말을 안 듣는다고. 그런 지점들이 다송이의 정신 사나움도 잠재울 수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다송이가 연기를 너무 너무 잘해서 그 장면이 더 살아날 수 있었던 것 같다. '쟤 진짜 연기 잘한다'며 매 순간 감탄했다."
-송강호 뒤통수에서 쏟아낸 욕설도 차지더라. "취했기 때문에 가능한…?(웃음) 송강호 아버지가 뭘 하든 귀여워라 해 주시니까 진짜 뭐든 하게 됐던 것 같다. 사실 아무리 연기라 해도 불안한 마음이 조금은 들기 마련이라 촬영이 끝나면 '괜찮아요, 아부지?'라고 슬쩍 여쭤보기도 했는데 오히려 아버지는 뭐가 문제냐는 듯이 '아휴, 괜찮아 괜찮아~ 막 해' 하시더라. 기정이가 나쁘고 못된 애는 아닌데, '예의 없고 버릇 없게만 보이면 어쩌나' 걱정이 들기도 했는데 아버지가 '걱정마. 그 정도는 괜찮아'라고 진짜 편안하게 이야기 해 주시고 대해 주셔서 시원하게 할 수 있었다."
-흡연 연기도 눈에 띄더라. 맛깔스러우면서도 씁쓸한 감정이 모두 묻어났다. "담배는 세가지를 종류를 놓고 테스트도 해 봤다. 금연초랑 크기가 다른 담배를 두고 피워봤는데 잘 안 넘어가서 꽤 고생을 했다. 감독님도 담배를 안 피우시니까 내가 잘 피우는건지 못 피우는건지 확인이 안 됐다.(웃음) 그래서 현장에 다른 흡연자 분들이 내 연기를 도와주셨다. 감독님이 '기정이 지금 괜찮아요?' 물으면 촬영 감독님이 사인을 주는 방식이었다. 재미있었다.(웃음)"
-폭우신은 어떤 마음으로 연기했나. "'우리 가족 진짜 안 됐다' 그리고 '충숙이 엄마 보고싶다' 박사장네 홀로 있을 엄마 생각이 그렇게 많이 나더라. 영화를 보면 아버지가 물에 잠긴 집을 한 바퀴 둘러보고 나온다. 사실 그 장면을 현장에서 보고 펑펑 울었다. 그래도 소중한 우리 보금자리가 물에 잠긴 것도 슬프고, 아버지의 눈도 너무 슬펐다. '우리 가족 제발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들었다. 감독님과 선배님들은 내가 그 때 울었던걸 아직도 놀린다.(웃음)"
-기정의 엔딩을, 기정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감독님이 그러셨다. '관객들이 마지막까지 '기정이는 죽지 않을거야'라고 느꼈으면 좋겠다'고. 그건 기정이도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기정이의 마지막은 딱 그녀다웠다고 생각한다. 계속 이야기하고, 눈 마주치고…. 슬프기도 하지만 기정이 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