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목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신·시·모도’가 있다. 신도·시도·모도. 이렇게 세 개 섬이다. 이 섬들은 모두 다리로 연결돼 하나의 섬처럼 다녀오는 곳이 됐다.
빨려 들 듯 푸르른 동해 같은 맛은 없지만, 질펀한 갯벌이 마음을 뻥 뚫리게 해 주는 바다의 맛은 같다. 여기에 섬에서 섬으로 다리를 건너는 맛, 해안가를 거닐며 바닷바람을 맞는 맛, 발이 푹 빠지는 갯벌에서 바지락을 줍는 맛 등은 신시모도에서 즐길 수 있는 것들이다.
인천광역시 중구 영종도의 삼목선착장에서 일단 신도로 가는 배를 타야 한다. 1시간에 1번 출발하는 배를 타고 10여 분 가면 신도다.
[삼목선착장] 하루 종일 ‘신시모도’ 한 바퀴
인천시 옹진군 북서쪽으로 위치한 첫 번째 섬, '신도'에 다다랐다. 삼삼오오 모여 자전거를 배에 싣고 온 관광객들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띌 정도로 자전거 여행 명소로 꼽히는 곳이라고 한다. 요즘 여행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전동 바이크 등을 대여할 곳도 있다. 그만큼 섬을 천천히 둘러보며 볼 만한 풍광이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신시모도 세 섬 중 가장 큰 섬인 신도는 중심에 구봉산이 지키고 있다. 178.4m의 나지막한 산을 트레킹하며 산과 바다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곳이다. 한두 시간이면 가볍게 오를 수 있다. 낮에는 송도·영종도·인천대교 그리고 인천국제공항까지 보이는 풍경을 즐기고, 밤에는 반짝이는 야경에 맞춰 산에 오르는 사람들도 많다.
[시도와 모도를 이어 주는 연도교.]신도에서 다음 섬인 '시도'까지는 579m의 ‘신시도연도교’가 설치돼 있다. 양옆으로 펼쳐진 갯벌에서 바지락을 캐는 동네 주민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천천히 걷는 걸음으로도 건너기 어렵지 않은 길이다. [연도교 아래 갯벌에서 바지락을 줍는 어민들.]연도교를 걸으며 어민들을 바라보니, “8월 즈음 바지락 캐러 놀러 오라”는 바지락을 캐던 주민의 정겨운 말 한마디도 들린다.
시도는 본래 ‘살섬’이었는데, 북쪽 바다 건너 강화 마니산에서 활을 쏘면 시도에 도달했다는 데서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시도 '수기해수욕장'에서 보면 강화 마니산이 코앞이다. 하지만 그 거리가 어림잡아도 4~5km니, 전해지는 이야기는 이야기일 뿐이다. [소나무 숲이 울창해 걷기에 좋은 시도 수기해수욕장.]시도 수기해수욕장은 수심이 얕고 경사가 완만하며, 해수욕장을 둘러싸고 소나무 숲도 울창하니 그늘로 햇볕을 가려 준다. 게다가 희고 고운 백사장이 있어 해변을 걷는 ‘맛’이 제대로다.
과거 KBS 드라마 ‘풀하우스’의 촬영지로 알려지며 방문객이 늘었지만, 2004년 드라마의 ‘약발’이 지금은 없는 듯 보였다.
한적하니 그늘막을 치고 여유를 부리는 여행객들도 눈에 띄었다. 서해의 잔잔한 바다를 눈에 담으며 시간을 보내기엔 제격인 듯하다. [모도의 끝자락에 서 있는 modo 조형물.]‘시모도연도교’를 건너면 마지막 섬 ‘모도’다. 셋 중 가장 작은 섬이지만 볼거리는 가득하다.
모도는 호젓하게 걷거나, 여유와 사색을 즐길 만한 섬이다. 썰물에 온몸이 드러난 고깃배를 보며 걷는 해안길이 있고, 붉은 해당화가 갯바람을 마시며 자라는 1.4km의 길도 있다. 6월 중순인지라 한겨울에 피어나는 해당화가 없는 ‘해당화 꽃길’이었지만, 왼편에 민낯을 드러낸 갯벌을 끼고 걷는 시간도 꽤 즐길 만했다.
모도의 끝으로 가면, ‘modo’라고 쓰인 조형물에 다다른다. ‘박주기(박주가리)’라는 곳인데, 모도 남쪽 끝 뿌리 지명이란다. 모도의 모양이 마치 박쥐같이 생겼고 박쥐 가장 뒤쪽에 있는, 곡식을 쌓은 것 같은 높이의 더미가 있는 곳이라는 의미다.
이곳부터 모도의 해안 둘레길을 걸을 수 있는데, 데크로 해안길이 잘 조성돼 있어 걷기에 수월하다. 이 둘레길을 걷다 보면 ‘배미꾸미 예술공원’에 다다른다. 신시모도 여행자들이 꼭 둘러본다는 조각공원이다.
배미꾸미는 해변 모양이 배 밑구멍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조각가 이일호씨가 해변 풍경에 반해 작업실을 이곳으로 옮겨 와 완성된 작품을 해변에 하나둘 늘어놓게 된 것이 현재의 배미꾸미 조각공원이 됐다. [모도 내 이일호 조각가의 작품이 전시된 배미꾸미 예술공원.]그래서 공원 중심에는 ‘모도와 이일호’라고 쓰인 높은 비석이 우뚝 솟아 있다. 그 뒤편에는 '바다는 모도를 섬으로 고립시킬 생각이 없었고, 모도 또한 바다의 품에 안기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여기 왜 서 있나’라는 글귀가 적혀 있는데, 이 의미가 제법 심오한지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비석을 바라보는 관광객들도 있었다. [모도 내 이일호 조각가의 작품이 전시된 배미꾸미 예술공원.]이곳에는 성(性)과 나르시시즘을 주제로 한 몽환적인 조각품들이 푸릇한 잔디와 바다를 갤러리 삼아 전시돼 있다. 만조 때는 바람이 심하면 조각품 밑까지 파도가 밀려오기도 하는데, 그 또한 색다른 광경이라고 했다.
[모도에서 즐길 수 있는 청계닭백숙은 별미다.]섬 속의 숨은 맛 ‘청계닭백숙’
오전 배편으로 신시모도에 들어왔다면, 모도에 다다를 때쯤이면 배고픔이 찾아올 것이다.
섬이라면 당연지사 ‘해산물’로 구성된 식사가 자연스럽겠지만, ‘청계닭’이라는 생소한 식재료로 백숙을 하는 곳이 있다. 모도 해당화 꽃길 근방에 위치한 ‘해당화나들목’이다.
청계닭은 칠레의 ‘아라우카나’종과 우리나라 토종닭을 교배한 종인데, 그 알이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청색’을 띤다.
보통 양계장에서는 38일이면 닭을 출하하지만, 청계닭은 80여 일이 지나야 450g 정도의 삼계탕 닭으로 자란다. 천장이 높은 계사에서 자유롭게 자라도록 지극정성으로 보살펴야 한단다.
청계닭은 다른 닭보다 그 맛이 좋아 시중에서 일반 닭보다 3~5배 비싸게 팔린다. 지금은 그 맛과 영양가가 알려지면서 청계닭백숙을 즐길 수 있는 곳들이 늘었지만, 여전히 ‘별미’임은 틀림없다.
그럼에도 섬에 왔으니 바다 향을 즐기고 싶다면 ‘소라찜’이 좋겠다. 당일에 직접 잡은 소라를 주문과 동시에 푹 쪄서 대접에 무심히 나오는데, 이쑤시개로 쏙 빼 먹는 쫄깃한 맛이 일품이다. 소라가 단번에 껍데기에서 나오면 익지 않은 것일 수 있으니 먹으면 안 되고, 거뭇한 내장은 떼고 먹어야 배앓이할 염려를 덜 수 있다.
소라는 소화가 잘 안 되는 사람이나 노인에게 좋고, 소라 국물은 빈혈에 도움을 주며 열을 내리게 하고 눈을 맑게 하는 효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