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또 울고 말았다. 무기력한 패배 이후, 마지막으로 메달을 받으러 올라온 '울보' 손흥민(27·토트넘)의 눈시울은 붉어져 있었다.
"이제는 다시 울지 않겠다"던 손흥민의 다짐이 무너졌다. 손흥민은 2일(한국시간) 스페인 마드리드의 완다 메트로폴리타노에서 열린 2018~2019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리버풀과 경기에 선발 출전해 풀타임을 뛰었으나 팀의 0-2 패배를 막지 못했다. 리버풀은 2004~2005시즌 '이스탄불의 기적' 이후 14년 만에 '빅 이어(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컵)'를 들어 올렸고, 팀 통산 6번째 대회 우승과 잉글랜드 클럽 최다 우승 기록도 썼다. 반면 창단 이후 처음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오른 토트넘은 준우승으로 대회를 마쳤고, 선수들은 눈물을 흘리며 은메달을 목에 걸고 리버풀의 우승에 축하를 보냈다.
기대가 컸던 만큼 허탈함도 큰 경기였다. 시작부터 경기가 꼬였다. 토트넘은 전반 2분 만에 핸드볼 파울로 페널티킥을 내주면서 위기를 자초했고, 그 결과 모하메드 살라(27)에게 이른 시간 선제골을 허용해 힘들게 경기를 풀어 갔다. 실점 없이 버티며 동점골을 노렸지만, 후반 42분 디보크 오리기(24)에게 추가골까지 내주며 패배하고 말았다. 부상에서 돌아온 해리 케인(26)을 비롯해 크리스티안 에릭센(27) 델레 알리(23) 그리고 손흥민까지 'DESK 라인'을 총출동시켰으나 만회골은 없었고, UEFA 챔피언스리그 첫 우승의 꿈도 무산됐다.
경기 종료 후 손흥민에게 위로를 건네는 리버풀의 마팁과 살라. 연합뉴스 제공 경기 이후 손흥민은 그대로 그라운드에 주저앉았다. 벤치에 앉아 있던 팀 동료 벤 데이비스(26)가 그에게 다가가 손을 잡고 일으키려 했으나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고, 리버풀의 살라와 다른 선수들도 그에게 다가와 위로를 건넸다. 낙심한 손흥민은 경기 이후 진행된 메달 수여식에도 마지막으로 등장했다. 시상식이 진행되고 토트넘 선수들이 침통한 표정으로 메달을 목에 거는 사이, 마지막으로 모습을 드러낸 손흥민은 눈물 자국을 숨기지 못한 얼굴로 단상에 올라 메달을 받았다. 토트넘팬들이 모여 있는 관중석으로 다가가 인사하고, 아버지 손웅정씨를 끌어안고 다시 눈시울을 붉혔다. 간절히 바랐던 우승은 놓쳤지만, 유효슈팅 3개를 포함해 위협적으로 리버풀 골문을 노린 손흥민에게 토트넘팬들은 기립 박수를 보냈다. 리버풀의 대표적인 응원가 'You'll Will Never Walk Alone'이 울려 퍼지는 경기장 안에서도 박수 소리는 선명했다.
어느 때보다 이기고 싶은 경기였기에, 손흥민은 또 한 번 눈물을 흘렸다. 그는 결승전을 하루 앞둔 지난 1일 영국 일간지 더 선과 인터뷰에서 "결승에서 패하면 눈물이 쏟아질 것 같나"라는 질문을 받았다. 손흥민은 "눈물이 나는 것을 멈출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울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눈물은 그냥 터져 나온다"라며 "2014 브라질월드컵 때도 울었고, 4년 이후 러시아월드컵에서도 울었다. 이제는 다시 울지 않을 것이고, 이번에는 패하고 싶지 않다"고 다짐한 바 있다. 하지만 손흥민의 다짐은 이뤄지지 않았고, 그의 눈시울은 다시 붉게 물들었다.
꿈의 무대에서 터진 손흥민의 눈물은 익숙한 듯 낯설었다. '울보'라는 별명처럼 손흥민은 그라운드에서 우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2014 브라질월드컵 때는 조별리그 탈락 이후 눈물을 흘렸고,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서도 8강에서 탈락한 뒤 울음을 터뜨렸다. 2018 러시아월드컵 때도 어김없이 눈물을 쏟았다. 16강 진출의 분수령이었던 조별리그 2차전 멕시코와 경기에서 패한 뒤 문재인 대통령이 방문한 라커 룸에서 펑펑 울고 있는 손흥민의 모습이 공개됐고, 3차전 독일전 승리 이후에도 16강 좌절의 아픔에 또 눈물을 쏟았다. 태극마크를 달고 뛰면서 흘린 손흥민의 눈물은 그만큼 익숙하다. 그러나 소속팀 유니폼을 입고 보인 눈물은 흔치 않아 '꿈의 무대'가 주는 무게감을 실감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