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을 수록 고개를 숙이는 벼'와 똑 닮은 인생을 살고 있는 배우 송강호의 입에서 처음으로 '최고의 순간'이라는 흡족한 반응이 터져 나왔다. 1000만 배우에 등극했을 때도. 개인상을 수상했을 때도 기쁨보다 겸손함을 먼저 표하며 누구보다 현실적이면서 객관적인 속내를 내비쳤던 송강호다. 하지만 '20년 영화 인생 동반자' 봉준호 감독과 함께 탄생시킨 영화 '기생충', 그리고 함께 이룩한 황금종려상이라는 뜻깊은 수확 앞에서는 한국 영화 역사에 길이 남을 의미를 명확히 짚어 대배우의 내공을 다시금 확인케 했다.
송강호는 '살인의 추억'(2003) '괴물'(2006) '설국열차'(2013)에 이어 '기생충'까지 봉준호 감독과 약 20여 년간 네 작품을 함께 하며 '봉준호의 페르소나'로 불리고 있다. '기생충'이 황금종려상을 봉준호 감독과 송강호는 충무로 최강 콤비에서 세계 최강 콤비로 자리매김했고, 송강호는 이번 작품에서도 또 다른 송강호의 얼굴을 선보이며 명불허전 대한민국 최고의 배우이자 '위대한 배우'임을 입증시켰다.
송강호는 '기생충' 개봉을 앞두고 진행된 인터뷰에서 숨길 수 없는 '광대 미소'를 발산하며 흐뭇한 어르신의 면모를 보여 취재진들까지 웃음짓게 했다. 수 없이 가진 인터뷰 자리에서 단 한 번도 예민하고 날카로운 적 없었던 송강호지만 시종일관 진실된 미소와 눈웃음으로 최상의 기분을 마음껏 표출한 적도 처음있는 일. 역대급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월드 클래스' 반열에 올랐음에도 송강호 특유의 친근함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만들었다.
한 단어로 정의 내릴 수 없는 송강호의 행보와 그가 쌓은 필모그래피는 곧 한국 영화의 역사나 다름없다. 특히 시대극을 통해 영화 역사를 넘어 대한민국의 역사를 그려내며 관객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있는 송강호인만큼 송강호라는 이름과 존재에 대한 무게감은 비교 대상이 없을 정도. 송강호 스스로도 매 작품마다 끊임없는 책임감을 느껴야 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때문에 4번째 호흡을 맞추게 된 봉준호 감독은 송강호에게 오랜만에 찾아 온 '기댈 구석'이 됐다. 봉준호 감독은 앞선 인터뷰에서 "송강호 선배를 떠올리면 시나리오와 대사의 폭이 넓어진다. 강호 선배라면 뭐든 설득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갖게 되는 것이다. 과감해 질 수 있고, 그건 작품 작업에 큰 영향력을 끼친다"고 추앙했다. 이는 송강호 역시 다르지 않다.
"봉 감독과 '기생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랬다. '아휴, 나 이제 좀 살 것 같다'고. 하하. '봉준호라는 거대한 산이 버티고 있으니 이제 아~무 생각없이 연기해도 되겠다'고 했다. 뭘 해도 다 받아줄 것 같고, 다 조율이 될 것 같으니까. 그렇다고 진짜 아무 생각없이 연기를 하는건 아니겠지만.(웃음)"
송강호가 '기생충' 작업을 하며 더욱 행복함을 느꼈던 이유는 '송강호의 영화'라는 타이틀보다 '앙상블'이 주는 힘을 강조할 수 있었기 때문. 송강호는 "10명의 배우들이 누구하나 소외되는 캐릭터 없이 자신의 몫을 해내야 했고, 해낼 수 있었다. 행복한만큼 편안했고, 앙상블을 맞춰가는 재미도 있었다"며 "전작들이 갖고 있는 시대의 무게감, 진중함 등은 주연 배우에게는 보이지 않는 압박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기생충'은 봉준호를 탁 두고 있으니 좋더라"고 솔직하게 고백했다.
이어 "주위의 많은 분들이 매 작품마다 격려해 주시는 것은 감사하지만 내 스스로는 늘 과찬이라 생각한다. 특히 한국 영화 안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어떤 방면으로든 갇히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밝혔다.
또 "사실 이제는 후배들이 많이 쳐다볼 수 밖에 없는 포지션이다. 그러다 보니 내가 하면 무조건 300만, 500만 명을 넘어야 하고, '저번에는 800만 명을 했으니 이번에는 1000만 명을 넘어야 한다'는 시선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선배의 모습보다는 뭔가 후배나 팬 분들이 '송강호가 저 작품을 선택했을 땐, 상업성도 중요하지만 예술가로서 고민하고 각성하고 있구나'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더 크다"며 "흥행은 누구나 실패할 수 있다. 연속으로 잘 될 수 있으면 연속으로 실패할 수도 있다. 결과는 배우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많은 분들이 예의주시하고 있고, 기대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안다.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갇히지 않으려 한다"고 강조했다.
'기생충'은 30일 국내 공식 개봉 후 작품성에 이어 흥행성까지 거머쥐며 탄탄대로 꽃길을 걷고 있다. 개봉 3일만인 1일 누적관객수 237만 명을 돌파하며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외신의 최고 평점에 이어 심사위원 만장일치 황금종려상, 그리고 가장 큰 산이라 여겨졌던 국내 관객들의 찬사까지 받으면서 한 편의 영화로 이룩할 수 있는 것은 이미 다 이뤘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송강호는 배우 송강호에게 남을 '기생충'의 의미에 대해 "최고의 순간"이라는 강렬한 표현을 쓰며 "앞으로도 의미있는 작업들을 해 나가겠지만, 세월이 지나도 '기생충'이 가진 의미는 결코 퇴색되지 않을 것이다. 이 순간 만큼, '기생충'을 선보인 현 시점을 함께 살고있는 배우로서 한국 영화의 어떤 중요한 지점에서라도 그건 결코 사라지지 않는 중요한 업적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단언했다.
'기생충'은 전원 백수인 기택(송강호)네 장남 기우(최우식)가 고액 과외 면접을 위해 박 사장(이선균)의 집에 발을 들이면서 시작된 두 가족의 만남이 걷잡을 수 없는 사건으로 번져가는 이야기를 그린 가족 희비극이다. 송강호·이선균·조여정·최우식·박소담·장혜진·이정은 등 충무로 대표 배우들이 열연했다.
조연경 기자 cho.yeongyeong@jtbc.co.kr 사진=CJ엔터테인먼트 / 칸(프랑스) 박세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