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50)의 수식어는 시대를 타고 계속 변화한다. 한 가지 수식어에 머무는 것이 보통인데, 꾸준히 발전하고 노력해온 윤상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1990년 '이별의 그늘'로 가수 데뷔할 무렵의 윤상도 그랬다. 좋아하는 선배 가수들과 일하고 싶어 신촌블루스에서 포스터를 붙이는 아르바이트를 자처했던 그는 故김현식과 인연이 닿아 '여름밤의 꿈' 작곡가로 먼저 가요계 이름을 알렸다. 이어 강수지의 '보랏빛 향기', 김민우의 '입영열차 안에서', 박효신의 '먼 곳에서', 팀의 '사랑합니다' 등 수 많은 히트곡을 낳았으며 동방신기·보아·아이유·가인·러블리즈 등과도 협업하고 세대를 아우르는 감각을 보여줬다. 아이돌도 작사·작곡하는 올라운드 플레이어가 각광받는 시대 속에서 윤상은 원조 만능 뮤지션으로 30년 넘게 활동 중인 셈이다. 2018년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에서 대통령 표창으로 그 공로를 인정받았다.
비결은 '절박함'이다. 윤상은 "어쿠스틱 쪽에는 워낙 실력이 좋은 선배들이 많았던 시절이다. 음악을 배워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서 남들이 아직 잘 모르는 분야에 손을 대야만 했다. 먹고 살길은 컴퓨터 뮤직밖에 없었다. 컴퓨터 뮤직을 잘해서 경쟁력을 갖춘다는 것은 나에게 숙제 같은 일이었다"며 과거를 떠올리다 술을 홀짝였다. 심한 알코올 중독을 이겨낸 후로 술과 거리를 둔 윤상이지만 이날만큼은 맥주 두 모금을 함께 했다. 동석한 뮤지가 "형님과 방송도 하고 음악 작업도 했지만 술을 마시는 모습은 처음 본다"며 놀랐을 정도로 오랜만의 건배였다.
윤상은 "지금도 도태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35세 넘어 대학을 다시 다녀온 것도, 새로운 후배들과 교류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1일 발매된 뮤지의 발라드 싱글 '밀린일기' 프로듀서로 함께한 것도 나에겐 새로운 자극이었다. 군더더기 없는 가창력이 부럽기도 했다"며 "마지막 정규앨범이 10년 전인데 이러다 영영 정규를 못 내겠다 싶다. 더 늦어지기 전에 심각하게 고민을 해봐야 겠다"고 가수로서의 컴백도 기대하게 했다.
-뮤지와의 첫 만남은 언제인가요. "미용실 동기라서 오가다 봤죠. 예능도 함께 출연하면서 알고 지낸지는 꽤 됐는데 음악작업은 처음했어요."
-뮤지의 발라드 프로젝트는 어떻게 성사됐나요. "'복면가왕' 왕밤빵에 반했는데 그게 뮤지였어요. '보컬플레이'라는 음악예능을 뮤지와 함께 찍고 있어서 매주 보고 있을 때였는데도, 왕밤빵이 뮤지인 줄을 몰랐어요. 3연속 가왕을 하고 있는데도 그게 뮤지일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죠. 모창하는 모습으로 익숙해 실력을 잘 몰랐다가 반했어요."
-발라드곡을 준 가수가 성시경 다음 5년만에 뮤지라고요. "곡을 오래 써왔다고 하지만 발라드를 쉽게 제안하긴 어려워요. 발라드는 가수마다 스타일이 있어서 제안이 쉽지 않은데, 뮤지가 먼저 발라드를 꺼내더라고요. '이 친구가 나를 믿는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5년 전 발라드 작업을 같이한 친구는 성시경이에요. 그 이후로 내가 자진해서 곡을 써보고 싶다고 한 것은 뮤지가 처음이죠."
-특별히 반한 포인트가 있나요. "말 그대로 취향 저격을 당했어요. 발음, 발성이나 노래 부르는 전반적인 스타일이 내 마음처럼 하는 친구에요. 군더더기도 없고 감정의 소모도 없이 곡 자체를 살려서 부르더라고요. 뮤지인 줄 모르고 부럽다고 했어요. 가끔 노래하는 사람으로서 뮤지처럼 노래하는 게 가능하면 좋겠다 싶어요. 시티팝을 같이 해보고 싶어서 연락했는데 발라드를 해보자고 제안해줘서 감사했죠."
-완벽주의자로 알려진 만큼 실제로도 까다롭나요. "뮤지가 일반 가수가 아니라 프로듀서잖아요. 사공이 많으면 일이 복잡해지니까 곡만 딱 써서 주고 최대한 뒤에 있었어요. 알아서 잘 할거라고 믿었어요. 해석하고 녹음하는 건 뮤지의 몫이었죠. 정말 만족스러워요. 뮤지가 음악을 오래 해왔는데 가수로서 이렇게 주목을 받는 건 처음이에요. 재미있는 작업이고 많은 사람들이 뮤지의 노래 실력을 알아줬으면 해요."
-신곡 계획은 없을까요. "마지막 싱글이 3년 전이에요. 컬래버레이션 가창자를 구해본 적이 있는데 그 때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았어요. 사람들이 필요 이상으로 나를 어려워한다는 것도 느꼈고요. 누구한테 곡 하나 주는 것도 너무 조심스러운 일이에요. 그 무렵부터 무언가를 작업할 땐 '나 혼자 하는게 편해'라는 생각으로 있다보니 시간이 흘렀죠."
-윤상의 정규앨범도 기다려져요. "전에는 노래를 기다려주고 좋아하는 팬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없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 50대 소비층이 없어요. 전통가요 쪽과는 다른 분야라서 중장년 세대 리스너들을 찾기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새 앨범을 장담하기 어려워요. 10년 전인 2009년 정규 6집 '그땐 몰랐던 일들'을 끝으로 앨범을 안 냈어요. 7집 선공개까지 이뤄졌는데 이런 저런 일들로 엎으면서 나오지 않았죠. 이러다 영영 정규를 못 내겠다 싶기도 해요. 한 곡씩 녹음해서 언제 열 곡 채워서 정규 내나 싶은 생각도 들고, 그 에너지 소모량 따지자면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에요. 심각하게 고민해 보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움직여 보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