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명예회장은 1932년 고 박두병 두산그룹 초대회장의 6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서울 경동고를 졸업했고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해군에 자원 입대해 활약했다.
군 제대 이후 미국 워싱턴대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귀국한 뒤 1960년 한국산업은행에 공채로 입사해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1963년 동양맥주 평사원으로 두산그룹에 들어온 뒤 한양식품 대표·동양맥주 대표·두산산업 대표 등을 거쳐 1981년 두산그룹 회장에 올랐다.
두산그룹 회장 재임 시 고인은 국내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연봉제를 도입하고 대단위 팀제를 시행하는 등 선진적인 경영을 적극 도입했다. 1994년에는 직원들에게 유럽 배낭여행 기회를 제공했고, 1996년에는 토요 격주 휴무 제도를 시작했다. 또 여름휴가와 별도로 리프레시 휴가를 실시했다.
부단한 혁신을 시도했던 고인은 창업 100주년을 한 해 앞둔 1995년 경영 위기 타개를 위해 당시 주력이었던 식음료 비중을 낮추면서 유사 업종을 통폐합하는 조치를 단행, 33개에 이르렀던 계열사 수를 20개 사로 재편했다.
고인은 인화를 중심에 두고 인재를 중시한 경영으로 ‘글로벌 두산’의 기틀을 닦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가정에서나 직장에서 모든 결정의 중심에 있었지만, 좀처럼 먼저 입을 열지 않았고 상대의 말을 끝까지 경청하고서 나서야 자신의 뜻을 짧고 간결하게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업적 결단의 순간에도 실무진의 의견에 먼저 귀를 기울였고, 다 듣고 나서야 방향을 정했다고 한다.
아울러 고인은 한번 일을 맡기면 상대를 신뢰하고 오래도록 지켜보는 ‘믿음의 경영’을 실천했다.
이에 두산 직원들은 “세간의 평가보다 사람의 진심을 믿었고, 다른 이의 의견을 먼저 듣고 존중하던 ‘침묵의 거인’이셨으며, 주변의 모든 사람을 넉넉하게 품어 주는 ‘큰 어른’이셨다”고 말한다.
고인의 유족으로는 아들 정원(두산그룹 회장) 지원(두산중공업 회장) 딸 혜원(두산매거진 부회장)씨 등 2남 1녀가 있다. 빈소는 5일 오후 2시부터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차리며,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른다. 발인과 영결식은 오는 7일이며, 장지는 경기 광주시 탄벌동 선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