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에게 주어지는 기회는 늘 영광입니다." 조선의 아나키스트 박열로 분했을 때도, 위안부 이야기를 담아낸 작품을 이끌었을 때도 이제훈의 발언은 늘 한결같았다. 데뷔 이래 흔한 구설 수 하나없이, 오로지 작품을 통해 진정성 넘치는 모습을 보였던 이제훈의 행보는 '100주년 3.1절'을 맞아 작품 밖으로도 이어져 의미를 더했다. '꾸준함'은 이래서 중요하다.
이제훈은 1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개최된 제100주년 3.1절 중앙기념식에 참석, ‘쉽고 바르게 읽는 3.1독립선언서’의 일부를 낭독했다. "남녀노소 구별없이 어둡고 낡은 옛집에서 뛰쳐나와 세상 모두와 함께 즐겁고 새롭게 되살아날 것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자 여성 인권과 평화의 상징인 여성인권운동가 이용수 할머니와 함께 무대에 오른 이제훈은 자리가 주는 무게감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진중한 모습으로 선언서의 내용을 또박또박 전달했다.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는 국가적 행사에 이제훈이 참석자로 포함된 이유는 그의 필모그래피가 대변해 준다. 이제훈은 1923년 관동대학살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목숨을 걸고 투쟁했던 조선의 아나키스트 박열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박열(이준익 감독)'과, 미 하원의회에 마련된 공개 청문회에서 일본군의 만행을 증언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이야기를 다룬 '아이 캔 스피크(김현석 감독)'를 통해 묵직한 울림을 선사했다. '박열'과 '아이 캔 스피크'에 연달아 출연하며 '일본 저격 전문 배우'라는 농담 반 진담 반의 수식어까지 얻었던 이제훈은 작품 선택에 있어 인기배우 타이틀을 고려하지 않은 채 "배우로서 그런 연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이 오히려 영광이다"는 뜻을 여러 번 전달했다. '동참'에 의의를 두며 작품과 캐릭터가 주는 울림에 더 많이 공감하고, 더 잘 전달하기 위해 늘 애썼던 이제훈은 "나를 공부하게 만들고, 나를 당당하게 만들어 주는 작품들이다"며 고마움을 표하기도 했다.
배우는 결국 작품으로 말하는 직업이다. 늘 진심을 다 했고, 흥행보다 지지에 더 무게감을 뒀던 이제훈의 부끄럽지 않은 행보는 이번 3.1절 행사에서 빛을 발했다. 10여 년간 나눔의 집 봉사활동을 이어온 유지태, 3.1운동 후 유관순 열사가 머문 서대문 감옥 8호실의 1년을 다룬 영화 '항거:유관순 이야기(조민호 감독)'의 주인공으로 나선 고아성 등 배우들과 함께 행사의 진정성을 높이는데 이제훈 역시 일조한 것.
행사 참석 후 이제훈은 소속사를 통해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의 의미를 되새기는 자리에 국민 중 한 명으로서 참여하게 되어 영광이다"며 "독립을 위해 힘쓴 애국선열의 숭고한 희생을 기억하겠다"는 소감을 남겼다. 늘 자신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던만큼 이제훈이 언급하는 '영광'은 결코 가볍지도, 단순하지도 않다. 한결같음을 무기로 끊임없이 열일을 펼칠 이제훈을 언제나 응원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