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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의 갓모닝] 760. 아물지 않은 상처
2019년 기해년은 돼지해다. 그것도 황금돼지해라고 한다. 문득 12년 전 정해년 2007년이 떠오른다. 그해도 황금돼지해였다. 그해 태어난 아기는 부자로 산다고 해서 많은 부부가 출산을 준비했다. 2007년은 내가 회갑을 맞는 해이기도 했다. 아내와 동갑인 나는 회갑을 기념해 후암 회원들과 카리브해로 크루즈 여행을 떠났다.
카리브해로 가는 크루즈가 버뮤다 삼각지대를 지날 때였다. 며칠 동안 휴대전화도 터지지 않는 배에서 반강제로 ‘미디어 금식’을 하다 보니 영적으로 매우 맑아져 있었다. 인터뷰 영상을 촬영하던 중 10년 이후 대한민국을 예언하게 됐다. 10년 이후인 2017년에는 이 세상에 없을 사람이라고 생각했기에 정말 마음 편하게 있는 말, 없는 말을 다 하고 말았다.
그때 했던 예언 중 하나는 보수 정권이 다시 시작되지만 진정한 보수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었다. 진정한 보수가 되려면 과거의 역사를 책임지고 반성할 줄 알아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일제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다. 그 흔적이라는 것은, 바로 일제에 빌붙어 부와 권력을 누렸던 중추원 참의 출신의 후손들이 사회 각 분야에서 주요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중추원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의 자문기관으로, 한마디로 친일파의 핵심이었다. 당시 일본은 친일파들에게 작위와 함께 중추원 명예직을 주었다. 중추원은 의장은 총독부 정무총감, 부의장 1명, 고문 15명, 찬의 20명, 부찬의 35명, 서기관장 1명, 서기관 2명, 통역관, 속전임 각 3명을 두었는데 3·1운동 이후에는 고문, 찬의, 부찬의를 ‘참의’로 고쳐 65명을 정원으로 했다.
65명의 중추원 참의들은 일제강점기에 부와 명예를 누렸다. 일본이 패망한 뒤에는 잠시 자숙하는 분위기였으나, 정부수립 과정에서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에 참여하면서 많은 이들이 기득권을 유지했다. 지금 우리가 알 만한 수많은 유명 인사들이 놀랍게도 중추원 참의의 후손들이다. 기업 회장, 유력 정치인, 모 대학총장, 사학재단 이사장 등 이루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친일 행위, 반민족 행위에 대한 연좌제 시행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선조의 부끄러운 친일 행적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자성의 목소리가 없다는 것이다. 어떻게 그들이 백 년이 넘는 시간 동안 꽃과 과일을 모두 누리며 살 수 있었는지 그저 통탄스러울 따름이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린 독립운동가의 자손들은 힘들게 살고 있음이 안타깝다.
조선시대의 관서·관북지역은 정3품 이상의 관리로 등용될 수 없었기에 사실상 고위직들은 대부분 남쪽에 있었다. 그들 중 상당수가 일제강점기에 친일파로 흡수돼 중추원 참의가 된 것이다. 상대적으로 친일 인사가 적었던 북한은 해방 이후 빠르게 친일파를 청산해 하나로 뭉칠 수 있었다.
2019년 기해년에는 달라져야 한다. 특히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3·1 독립운동 100주년을 맞아 친일 역사를 청산해야 한다. 남북한의 화합이 진행되는 작금의 상황에서 친일의 흔적을 하루속히 정리하여 역사의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힘들었던 무술년이 지나갔다. 기해년 아침에 뜨는 해를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큰 감동이다. 뇌종양으로 걷는 것도 불편하고 식사도 제대로 할 수 없지만, 올 한 해 어떤 일이 있을지 떠오르는 생각을 전할까 한다. 기해년 4월이 되면 우리나라에는 큰 변화가 찾아올 것이다. 이를 계기로 보수와 진보가 하나가 되는 물꼬가 터질 것이다. 남북한의 교류보다 자기 성찰과 반성으로 서로를 보듬어 주고 어루만져 줘야 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격랑의 역사가 휘몰아칠 것이다. 보다 겸허한 마음으로 기해년을 맞이할 때다.
(hooam.com/인터넷신문 whoi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