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관이 28일 암투병 끝에 눈을 감았다. 전태관은 6년 전에 신장암이 시작됐고 2년 뒤에 어깨 뼈로 전이가 됐다. 그 이후에 뇌, 머리 피부, 척추 뼈, 그리고 골반 뼈 등으로 계속 전이가 됐지만 그럴 때 마다 잘 이겨냈다. 지난 4월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뒤 더욱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도 김종진 등 '절친'들과 가족들의 응원 속에서 단단하게 버텨왔던 전태관은 봄여름가을겨울이 데뷔 30주년을 맞이한 해에 세상과 작별 인사했다.
전태관 최측근은 일간스포츠에 "최근 (전)태관이가 급격히 건강이 안 좋아져서 (전태관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난 뒤) 미국 이모 집에서 생활한 딸도 고등학교 졸업을 마치고 한국에 들어왔다. 암투병 중에도 딸의 졸업식을 직접 가고 싶다고 미국까지 다녀왔던, 딸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던 사람이었다. 잘 버텨왔는데"라며 울먹였다.
최근 전태관의 건강이 눈에 띄게 악화되면서 김종진은 전태관 곁을 계속 지켜왔다. 예정된 공연, 방송 스케줄을 모두 올스톱하고 전태관 옆에서 기도를 하며 매일 눈물을 흘렸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종진은 전태관을 위해서 후배 가수들의 도움과 응원을 받으며 데뷔 30주년 기념 앨범도 냈다. 혼자서 준비하기에 엄두가 안 났지만, 전태관을 위해서 더 힘을 냈던 김종진이었다. 여기에 윤종신, 윤도현 등 후배 가수들과 배우 황정민, 함춘호 기타리스트도 적극적으로 앨범에 참여했다.
김종진은 봄여름가을겨울 데뷔 30주년 기념 공연도 준비 중이었다. 이 또한 전태관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김종진은 지난 10월 데뷔 30주년 앨범 '친구와 우정을 지키는 방법' 발매 기념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전태관과 봄여름가을겨울로 활동을 시작하면서 함께 정한 '투 두 리스트( to do list)' 중 아직 지키지 못 한 것에 대해서도 언급하면서 "감사하게도 하나 빼고 다 이뤘다. 버스 타고 다니던 시절에 '그랜저를 타고 한 손으로 핸들 돌리면서 1만석 공연장에 들어가는 대단한 뮤지션이 되어보자'고 했는데 그런 것도 이뤘다. 또 백발이 송송해도 무대 위에서 섹시한 뮤지션으로 남자고 또 무대 위에서 죽자고 했다. 하지만 아직 그걸 이루지 못 했다. 그런데 이제 그것도 이루는 쪽으로 마음을 바꿨다. 무대 위에 올라서, 다 갖춰진 무대에서 음악을 해야지만 무대 위에서 죽는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그리고 우리가 딛는 모든 땅이 무대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언제 어디서건 음악을 하다가 떠나면, 무대에서 우리 음악이 나오다가 떠나면 그 약속을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눈물을 흘렸다.
봄여름가을겨울의 김종진· 전태관은 1986년 고(故) 김현식이 결성한 밴드 ‘김현식의 봄여름가을겨울’로 음악활동을 시작했다. 1988년 봄여름가을겨울 정규 1집을 발표하며 정식 데뷔해 올해로 30주년을 맞았다. 퓨전재즈 등 실험적인 시도부터 블루스, 록, 어덜트 컨템포러리 등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며 30년간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다.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봐' '어떤 이의 꿈' '내 품에 안기어' '10년 전의 일기를 꺼내어' '브라보 마이 라이프' 등 히트곡을 냈다. 2008년 이후엔 공연활동에 집중하며 매해 한 장씩 수준 높은 라이브 실황 앨범을 꾸준히 발표해 왔다. 2015년에는 와인콘서트 10주년을 기념해 세계 최초로 돌비 애트모스 기술로 녹음된 공연실황 블루레이를 발표하기도 했다. 김연지 기자 kim.yeonji@jtbc.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