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전문 기업 한섬의 자회사 현대G&F 영캐주얼 브랜드 'SJYP'는 최근 벤처기업인 '디자이노블'과 협업해 AI(인공지능)가 디자인한 옷을 선보였다. 지난해 7월 설립된 디자이노블은 AI에 패션을 접목해 사업을 시작한 패션 기술 스타트업이다. 패션 트렌드 정보를 분석해 디자인을 도출하거나 추천하는 디자인 AI, 패션 기술 등 설루션을 패션 회사에 공급한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국내 패션 업계는 깜짝 놀랐다. '인간 고유의 영역'으로 평가되는 창조의 영역에 AI가 발을 들인 국내 첫 사례기 때문이다.
결과물은 수준급이었다. SJYP가 디자이노블과 협업해 출시한 '디노 후드티'는 옷 뒷면에 SJYP가 개발한 캐릭터 '디노'와 블록(레고) 컨셉트를 결합한 그래픽 아트가 반영됐다. SJYP 브랜드 로고와 디노 캐릭터, 블록들이 불규칙하게 배열된 디자인이다. 작업은 1차로 SJYP 로고와 캐릭터, 디자인 컨셉트 등 이미지 약 33만 장을 디자이노블의 AI 기술인 ‘스타일 AI’에 제공하고, AI가 스스로 데님 소재 등 기존의 SYJP 이미지와 어울릴 만한 스타일을 학습하는 과정을 거쳤다.
국내는 최초지만,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미 전자상거래·패션 기업들이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추세다. 지난해에는 미국 의류 쇼핑몰 ‘스티치픽스’가 처음으로 AI 디자이너가 기획한 옷을 내놔 완판된 바 있다.
한섬 관계자는 "SJYP는 앞으로도 AI를 활용한 디자인을 계속해 나갈 예정이다. 다른 브랜드들은 디자인 외에 빅데이터를 분석해 스타일을 추천하는 등 패션업에 다양하게 적용할 수 있는지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일간스포츠가 국내 최초로 AI를 패션 디자인에 접목하고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는 신기영 디자이노블 대표와 이야기를 나눴다.
- 국내에서 AI가 의류 디자인에 참여한 것이 이번이 최초라고 들었다. "해외에서는 AI가 의류 디자인에 참여한 사례가 더러 있었지만 국내에서는 SJYP와 디자이노블이 처음이다. 그동안 국내 패션 업계에서 AI를 활용해 물류나 판매 등에 활용하는 경우는 많았지만, 디자인 협업은 실제 제품 출시까지 연결된 경우가 없었던 것으로 안다."
- 협업 과정이 궁금한데. "SJYP가 보유했던 '디노' 캐릭터를 디자이노블의 AI 기술인 '스타일 AI'에 제공했다. 이후 AI가 스스로 데님 소재 등 기존 SJYP 이미지와 어울릴 만한 스타일을 학습한다. 이후 학습을 마친 AI가 브랜드 스타일과 느낌에 맞춰 기획한 디자인 결과물을 디자이너에게 제출하고 디자이너가 AI에 수정을 다시 요청하는 작업을 수차례 반복해 만들었다."
- 제안은 얼마나 이뤄지나. "AI의 제안은 무한대로 가능하다. 그러나 무조건 많은 결과를 도출하는 것은 목표가 아니다. 좋은 결과물을 디자이너가 선택하고 다시 역제안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이번 '디노 후드티'는 옷 뒷면에 SJYP 캐릭터 '디노'와 블록(레고) 컨셉트를 결합한 그래픽아트가 반영됐다. 블록 컨셉트는 최초에 AI가 제안한 여러 스타일을 받아본 SJYP의 요청에 따라 블록 컨셉트에 맞춰 재작업이 수차례 이루어진 결과물이다."
- 비용은 얼마나 들까. "기간이나 몇 번이나 AI를 활용했냐에 따라 모두 다르다. 현재 상황에서는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똑똑한 신입 사원을 기용하는 것이 비용 면에서 더 저렴할 수 있다.(웃음) 현재는 AI를 디자인에 적용하는 초입 단계다. 과거 편의점이나 패스트푸드점에 키오스크(무인 계산기)가 아르바이트를 쓰는 것보다 비싸서 잘 이용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AI는 쉬지 않고 일하고 노동력을 사용하는데 이어 여러 집회나 결사 등 분쟁이 없다. 다만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패션 업계의 모든 것을 자동화할 수는 없다. 패션은 변형도 많고 섬세한 작업이 요구되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기술적 도입이 다소 늦은 편인데 점차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 디자인 협업부터 제품이 나오기까지 총 시간은 얼마나 걸렸나. "사람이 직접 디자인하는 시간이 한 달 정도 걸린다고 가정했을 때, AI를 활용할 경우 한 달에 약간 미치지 못한 것 같다. 이유는 '협업'에 있다. AI가 알아서 디자인을 택하고 찍어 내는 것이 아니라 AI가 도출한 결과를 SJYP가 보고 고민한 뒤 다시 제안하는 협업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 디자이너 입장에서 AI와 협업이 달갑지 않을 것 같다. '밥그릇' 싸움이 될 수도 있다. "SJYP는 AI 협업에 굉장히 전향적이고 적극적이었다. 평소 벤처기업의 새로운 도전을 많이 접하면서 언젠가 패션에도 AI를 접목하는 때가 오겠구나 하는 막연한 생각만 갖고 있었다고 하더라. 국내에서 최초로 AI가 디자인에 시도되는 것이라서 기술을 확인하고 싶어 했다. 물론 혹자는 디자인의 영역에 AI가 침범한다는 사실에 거부감이 있거나 반대로 사람이 어느 정도 개입돼야 한다는 점에 거리를 두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SJYP는 처음부터 AI 기술이 발전돼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인간과 협업을 통해 기술력이 더 나아져야 한다는 태도를 갖고 있었다."
- 인간과 협업하면서 AI도 어느 정도 학습 효과를 얻었을까. "그렇다. SJYP의 피드백이 적극적으로 이뤄지면서 AI의 완성도와 이를 만드는 엔지니어의 실력이 향상됐다. '알파고'도 처음에는 바둑을 잘 두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인공지능이다. 이후 수없이 많은 바둑 고수들과 대국을 펼치면서 여러 데이터를 학습했고 현재 수준까지 왔다. 디자이노블의 스타일 AI 역시 마찬가지다. SJYP에서 '이런 건 어려운가' '이런 컨셉트는 어떨까' 등 반문을 받는 과정에서 엔지니어가 확신을 갖고 작업을 수행하고, AI 발전도 이뤄졌다."
- 현재 패션 업체와 디자이노블 AI가 협업하는 제품이 있나. "현재 스포츠 의류와 모자 등 패션 잡화 브랜드와 협업하고 있다. 유의미한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초기 시절부터 함께 다양한 기술을 검토하며 연구하는 경우다. 시행착오도 있지만, 그건 모든 AI 영역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가령 암을 진단하고 처방하는 AI가 있다고 할 때 기존에 축적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학습한다. 반면 의사는 환자와 대화하면서 끄집어내면서 AI와 다른 점이 생긴다. 이런 과정의 시행착오 속에서 AI의 데이터 활용 범위가 넓어지고, 우리의 기술이 더욱 발전하는 것이다."
- 향후 패션 업계에서 AI의 영향력이 얼마나 커질 것으로 보나. "'점점 커질 것'이란 것이 정답이겠으나 그 과정에 있어서 정체기도 분명 있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AI 기술은 한동안 정체됐다가 알파고 이후 크게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현재 패션 업계에서 AI는 기술의 가장 끝단인 '추천' 시스템에만 관심을 갖고 있다. 이는 결과로 바로 도출될 수 있고 수치화할 수 있어서다. AI는 사람이 소화하기 어려운 수많은 데이터를 조합해 결과를 낼 수 있어 압도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역사적 흐름상 향후 지금의 시기를 넘어서게 되면 AI 기술이 패션 디자인의 더 많은 영역에서 활용되는 시기가 다시 올 것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