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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의 갓모닝] 747. 영적인 부정행위의 최후
지난 15일 2019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있었다. S여고 사태 탓에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치러진 시험이었지만 수험생들의 눈빛만큼은 반짝반짝 빛났다. 수능 고사장에는 부정행위를 막기 위해 수험생이 하지 말아야 할 행동 수칙이 무려 71개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71개의 행동 수칙이 통하지 않는 ‘영적인 부정행위’가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제는 모두 지난 일이지만, 영 능력자인 나는 학교에 다니는 일이 쉽지 않았다. 사춘기가 와 방황이 심했던 고등학교 때 수학을 좋아했지만 영어만큼 성적이 잘 오르지 않았다. 다른 과목의 시험은 내 실력대로 봤지만, 영어 시험을 볼 때 영 능력을 조금 사용한 적이 있다고 고백한다.
영어 시험을 볼 때 영 능력을 사용하면 유독 정답이 잘 보였다. 물론 모든 문제를 그렇게 풀었다는 것은 아니다. 열심히 풀다가 풀리지 않는 답답한 문제가 있으면 영 능력으로 정답을 찾았다. 그러다 보니 친구들은 내 영어 점수를 보고 의아해했다. 영어를 잘하는 것 같지 않은데 영어 시험 점수가 좋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영 능력으로 시험을 보면 꼭 대가를 치러야 했다. 손목을 크게 다치기도 했고, 어깨뼈가 탈골되기도 했다. 영적인 커닝은 완벽했지만 반드시 영적인 형벌을 받아야 했다. 이를 잘 알기에 함부로 영적인 커닝을 감행할 수 없었다. 차라리 선생님에게 걸려 호되게 혼나고 영점으로 처리되는 편이 나았을 수도 있다.
대학에 입학하고 판검사가 되기를 꿈꿨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나는 사법시험 1차를 무난히 합격했다. 이때도 영적인 도움을 조금 받았다. 미리 정답을 알아 낸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시험을 잘 볼 수 있게 스스로를 도운 것이다.
1차 합격의 기쁨도 잠시, 2차 시험 준비를 하던 중 학교 고시 연구실에서 각혈하며 쓰러졌다. 폐결핵이었다. 사법고시 1차 시험에서 영 능력을 쓴 벌을 받은 것일까. 결국 폐결핵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고 다니던 학교마저 4학년 1학기에 그만둬야 했다. 사법시험을 포기하고, 학교마저 자퇴한 뒤 내 인생에서 다시는 영 능력을 사용해 시험을 볼 일이 없게 됐다. 얼마나 마음이 편했는지 모른다.
시간이 흘러 30대 중반의 나이에 서울 장안동에서 혼자 도를 공부하고 있을 때였다. 한 어머니가 고3 아들을 데리고 나를 찾아왔다. 아들의 성적으로는 도무지 들어갈 수 있는 대학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순간 그 어머니의 모성애에 감동해서 해서는 안 될 말을 하고 말았다. “Y대 수학과에 원서를 넣으세요.” 그 말에 그 어머니는 깜짝 놀랐다. “이 성적으로 어떻게 Y대 같은 명문대에 원서를 넣습니까?” “아무 말씀도 하지 마시고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세요.”
그 어머니는 속는 셈 치고 Y대 수학과에 원서를 넣었다. 결과는 합격이었다. 그해 Y대 수학과는 운 좋게 미달이 된 것이다. 그 어머니와 아들이 함께 찾아와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나는 속으로 ‘입학보다 졸업이 더 문제인데…’라고 생각했다. 실력이 부족했던 아들은 수학과를 졸업하는 데 무려 10년의 시간이 걸렸고, 나와 연락도 소원해졌다.
S여고에서 벌어진 사태는 많은 학부모들의 분노를 샀다. 시험지 유출과 부정행위로 지금 재판을 기다리는 그들은 그동안 불안 속에서 지냈을 것이다. 최종 판단은 법정에서 가려지겠지만 본인들도 차라리 법적인 처벌을 받고 마음 편히 지내고자 했을지도 모른다. 나처럼 영적인 처벌을 받게 되면 일반인으로선 감당이 안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노력으로 얻은 결과가 아닌 것은 시간이 지나도 결코 자기 것이 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hooam.com/ 인터넷신문 whoi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