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부산 해운대구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 문화홀에서는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BIFF·B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이하 부국제) 갈라 프레젠테이션 초청작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의 공식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장률 감독과 배우 박해일이 참석해 영화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했다.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는 선배의 아내인 송현(문소리)을 좋아했던 윤영(박해일)은 송현이 이혼했다는 사실을 알게된 후 충동적으로 군산 여행을 떠나고, 함께 머물게 된 민박집에서 민박집 주인인 중년 남자(정진영)와 자폐로 방에서 나오지 않는 딸(박소담)과 엇갈리는 사랑을 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박해일·문소리·정진영·박소담을 비롯해 문숙·명계남이 출연했으며, 한예리·정은채·윤제문이 깜짝 카메오로 등장해 재미를 더한다.
"영화 '경주'에 이어 장률 감독과 부국제를 다시 찾게 돼 기쁘다"고 운을 뗀 박해일은 '시간이 될 때마다 감독님을 만나 '감독님이 이번엔 무슨 이야기를 할까' 곁에서 지켜볼 계기가 많았다"고 말했다.
이어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의 원래 배경이었던 목포에 감독님과 함께 다녀 오기도 했다. 감독님만의 새로운 지역을 찾아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오겠다는 것을 곁에서 목도했다. 하지만 최종적 장소는 군산이 됐는데 감독님만의 이야기에 더 적합한 장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신뢰를 드러냈다.
장률 감독은 "이 이야기는 재작년에 처음 떠올랐다. 몇 년 전 목포 대학에 특강을 갔는데 그 공간이 인상 깊었다. 목포에 일제강점기 때 건물들이 많이 남아있고 정서들도 많이 남아있는 것 같더. 그래서 '목포에서 찍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어떤 인물이 목포에 가겠는가' 했을 때 떠오른 사람이 박해일이었다"고 회상했다.
두 사람은 목포에 직접 찾아 갔지만 최종적으로 영화의 메인 장소가 돼야 하는 민박집이 마음에 들지 않아 방향을 틀었다고. 그렇게 선택된 곳이 바로 군산이다.
장률 감독은 "군산에 가보니 일제강점기 때 건물들이 목포보다 더 많이 남아있었다. 목포와 군산이 주는 공간의 질감은 달랐다. 군산이라는 공간은 좀 더 부드러워보였다. 부드럽다고 하면 남녀가 같이 가서 연애를 하고 싶은 곳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영화에 있는 정서들도 공간을 바꾸면서 많이 변했다"고 설명했다.
장률 감독은 '경주', '필름시대사랑'에 이어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까지 박해일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박해일은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를 통해 장률 감독의 진정한 페르소나로 거듭났다.
박해일은 장률 감독과 호흡에 대해 "감독님과의 작업은 나라는 배우를 포함해 참여한 많은 배우들이 늘 궁금해 한다. 주변에서 '장률 감독님 이야기는 들어봤는데 도대체 어떤 분이기에 저런 작품이 나오냐'고 묻기도 한다. 그리고 작품을 했을 때 만족해 하더라"며 "'감독님이 섬세한 감정을 갖고 있는 배우들에게 보듬어주는 능력이 탁월하구나' 싶었다"고 진심을 표했다.
박해일이 장률 감독과 함께 한 시간은 벌써 5년. "처음엔 감독님과 내가 섞일 수 있는 지점이 많이 없다고 생각했다"는 박해일은 "하지만 자리를 가질 수록 서로의 호기심이 발동하는 것 같다. 호기심은 관심이 되고 감독님은 그것을 캐릭터와 작품에 녹여낸다"며 "감독님에 한국에서 만들어 가는 작품과 이전 작품의 질감 차이의 변화도 체감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박해일은 "감독님은 앞으로도 전국 팔도를 다니며 대한민국 모든 배우와 작업하지 않을까 싶다. 감독님께 예산은 중요하지 않다. 100억 원대 대작도 만들어낼 수 있을 만큼 감독님의 상상력은 무한하다"며 "감독님은 친근하면서도 속을 절대 알 수 없는 사람이다. 이런 지점이 감독님의 매력이고, 그것이 작품을 통해 다가온다"고 강조했다.
장률 감독의 작품은 해석본이 따로 필요하다 생각될 정도로 명확한 무언가를 애써 전달하려 하지 않는다. 박해일 역시 장률 감독의 작품을 한 번도 해석하려 하지 않았다고. "명쾌한 해석을 하지 못할 바에야 모든걸 감독님께 맡기는 편이 낫다"며 웃은 박해일은 "감독님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카메라 앞에서 공기와 공간을 느끼며 연기하려 했다"고 나름의 연기 비법을 논했다.
박해일은 "그건 신뢰가 없으면 나오기 힘든 부분이다. 감독님은 나 뿐만 아니라 모든 배우들을 섬세하게 지켜본다. 배우들 입장에서는 본인들도 미처 몰랐던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정말 신선하고 즐거운 경험이다"며 "배우로서 그런 신선함을 즐기는 것이다. '경주' 때도 작품의 의미는 가늠하지 못했다. 감독님의 작품은 볼수록, 들을수록, 오래오래 곱씹게 되는 작품들로 남지 않을까 싶다"고 덧붙였다.
장률 감독에 대한 박해일의 신뢰 만큼이나, 박해일에 대한 장률 감독의 신뢰도 만만치 않다. 장률 감독은 "한국에 몇 년 있으면 가장 많이 만난 사람이 박해일이다. 친구가 됐다고 생각한다. 자주 떠오르는 사람이리도 하다"며 "개인적으로 해일 씨 연기에 좋아하는 부분이 있다. 사실 연기를 잘하는 배우들은 많다. 그런데 어떤 배우들은 연기를 잘하는 방향이 하나다. 해일 씨는 그 방향이 많고 다양하다"고 평했다.
또 "해일 씨는 실제 생활에서도 시인 같은 모습이 있다. 시인들이 좀 이상한 면이 있지 않나"라고 읊조려 좌중을 폭소케 하더니 "자신만이 가진 리듬 같은 것들이 있다. 그런 부분에 박해일은 항상 흥미를 갖고 있고 아직까지는 계속 떠오르는 배우다. 그래서 팔도를 다니면서 더 같이 영화를 찍어봐야 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귀띔했다.
"극중 윤영이 유난히 '죄송하다'는 대사를 많이 한다"는 말에도 장률 감독은 "그것도 실제 박해일의 특성이다"며 "직업이나 이런걸 배제하고도 완벽주의자 성격인 사람들이 일상에서 '죄송하다'는 말을 많이 하는거 같다. 박해일도 그렇다. 박해일은 평소에 조금이라도 누군가에게 피해가 됐다거나 싶으면 '죄송하다'는 말을 한다. 그래서 이 역할과 더 잘 어우러진 것 같다"고 흡족해 했다. (부산)= 조연경 기자 cho.yeongyeong@jt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