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라경(18·계룡고)은 현재 수험생이다. 심신이 힘든 시기지만 진로를 잡은 것은 위안거리다. 두 번째 월드컵을 경험하며 확신이 생겼다.
한국 여자 야구의 보물이다. 시속 110km대 빠른공을 던지며 '천재 소녀'로 주목받았다. 이내 최연소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전 한화 투수였던 김병근의 친동생이다. 자연스럽게 야구를 접했고 흥미를 느끼며 공을 잡았다고 한다. 지난 2016년 9월 기장군 드림볼파크에서 개최된 7회 세계여자야구월드컵에서 '전도사' 역할도 해냈다. 그를 향한 관심이 커졌고 여자 야구도 함께 주목받았다.
여전히 한국 여자 야구의 에이스다. 지난 8월 미국 플로리다에서 열린 제8회 월드컵에 참가했고 단연 돋보이는 실력을 보여 줬다. 예선 첫 경기던 네덜란드전에선 3⅔이닝을 2점(비자책)으로 막아 내며 한국의 9-8 승리를 이끌었다. 마지막 이닝 1사 만루 위기에서 직구로 삼진 2개를 잡아내는 강심장을 보여 줬다. 한국은 슈퍼라운드 진출에 실패하며 세계 수준과 격차를 확인했지만 김라경의 존재는 위안이 됐다.
이제 대입을 위한 스퍼트를 한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공을 놓지 않았고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느꼈다. 국제 대회를 치르며 체육 선진국의 모습을 직접 접하기도 했다. 관련 분야를 제대로 공부해 보고 싶었다. 미국 월드컵을 치르며 확신이 생겼다. 제2의 야구 인생을 준비 중인 김라경과 얘기를 나눴다.
- 두 번째 월드컵을 치렀다. 소회를 전한다면. "원정 대회를 소화한 운동선수들이 어떤 심정이었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일단 시차 적응이 어려웠다. 현지 적응은 그나마 괜찮았다. 정해진 훈련 시간과 경기 일정에 맞춰야 했기 때문이다.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귀국한 뒤 한동안 힘들었다. 무엇보다 공허함이 컸다. 대입을 준비하는 고교 3학년이라 부담감도 있었지만 준비 과정에서 최선을 다했다. 그래서 '끝났다'는 아쉬움이 오래갔다.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어도 같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 기량이 여전히 뛰어나다.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중학교 3학년 때까지는 리틀야구 소속이었지만 고교 진학 이후 마음껏 운동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다. 주도적인 자세가 필요했다. 실내에서 운동할 수 있는 공간을 알아보고 체대 입시를 준비하는 친구들을 모으기도 했다. 공부도 소홀할 수 없으니 잠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좋아하는 걸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 기량 향상 정도를 전한다면. "기장 대회에서는 팔꿈치가 안 좋았다. 마음껏 투구하지 못한 게 아쉬웠다. 몸 관리의 중요성을 깨달았고 보강 훈련을 위해 노력했다. 튜빙밴드 등을 이용해 잔근육을 키우는 운동을 주로 했다. 규칙적으로 운동할 순 없었지만 매일 (운동)하기 위해 노력했다. 구속은 유지하는 것에 힘썼다. 나아진 점이 있다면 '멘틀 관리'라고 본다."
- 구체적으로 전한다면. "중요한 경기를 재차 치르다 보니 멘틀이 중요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야구는 변수가 정말 많은 경기라고 생각한다. 마운드 위뿐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제 실력을 발휘할 줄 알아야 좋은 선수가 될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멘틀지(노트)'를 만들었다. 매 경기에서 반성해야 할 부분을 적고 시합에 나가기 전에 항상 읽었다. 지난 2년 동안 그런 훈련을 했고 이번 월드컵에서도 위기에서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 야구의 본고장에서 열린 대회다. 느낀 점이 있다면. "대회 기간 동안 세미나가 있었다. 여자 야구 강국들의 시스템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미국의 여자 야구 인프라가 한국보다 크게 앞선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오히려 그 부분은 일본이 최고라더라. 감탄한 건 활성화된 생활 체육이다. 인프라 등 기반도 탄탄한 것 같다. 덕분에 선수들의 기량도 좋고 성장 속도도 빠른 게 아닐까 생각했다."
- 기장 월드컵 이후 여자 야구에 변화가 있었나. "조심스러운 얘기다. 팬들의 관심은 정말 많아졌다. 하지만 지속되진 않았다고 본다. 물론 실력이 아직 세계 수준에 미치지 못한 점도 있다. 가끔 마음이 아프다. 이제 나보다 어린 선수들도 많다. 이번 월드컵에서 처음으로 막내 자리를 뗐다. 고교 1년생 이지혜 선수가 있었다. '이 친구들이 나처럼 어려움을 겪으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이 들 때면 더욱 그렇다."
- 2년 전부터 스포츠 행정가가 되고 싶어 했다. "야구를 하면서 다른 나라의 체육 문화와 환경이 어떤지 직접 경험할 기회가 많았다고 생각한다. 보고 느꼈다. 이번 대회를 통해 진로 방향을 이쪽(스포츠 행정)으로 잡으려 했던 기존 각오에 더욱 확신이 생겼다. 자극도 됐다. 지금은 그저 수험생이다. 이제 스퍼트를 올려야 한다. 만약에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지금은 막연하게 문제점이나 보완점으로 생각하고 있는 점들이 구체적으로 실현될 수 있을지 연구해 보고 싶다."
- 최근 아마 야구 활성화를 기대할 수 있는 움직임이 많다. "고교생인 내가 야구 발전에 대해 얘기하는 건 맞지 않다고 본다. 그저 진심으로 야구를 하고 싶어 하는 이들이 좌절하는 상황이 줄어들었으면 좋겠다. 프로 구단에 지명받지 못하는 또래 선수들이 생겼다. 프로 무대에서 자리를 잃은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야구를 할 수 있는 곳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