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한국시간) 유벤투스와 사수올로와의 2018~2019시즌 이탈리아 세리에A 4라운드 경기가 열린 토리노의 알리안츠 스타디움. 0-0으로 맞선 후반 5분 유벤투스 코너킥 상황에서 한 남자의 발끝이 번뜩였다. 그는 상대 수비수가 제대로 걷어내지 못하자 본능적으로 볼을 향해 돌진해 침착하게 골문으로 밀어넣었다. 득점 후 포효하며 관중석을 향한 그는 하늘아 높이 날아오른 뒤 양팔을 크게 벌리며 착지하는 특유의 세리머니를 펼쳤다. 슈퍼 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3)가 부진을 씻고 이탈리아 무대 데뷔골을 터뜨린 순간이다.
320분간 골침묵을 깬 호날두는 한 골로 만족하지 않았다. 1-0으로 앞선 후반 20분 역습 상황에서 전매특허인 폭발적인 돌파에 이은 강력한 슈팅으로 또 한 번 상대 골문을 열어젖혔다. 하프라인 후방에서부터 쇄도를 시작한 호날두는 엠레 찬의 패스를 받아 왼쪽 페널티박스 부근에서 날카로운 왼발 슈팅으로 결승골을 넣었다. 영국 BBC는 "역습 상황에서 터진 호날두의 두 번째 골은 특유의 득점 방식이 돋보인 장면"이라고 칭찬했다. 유벤투스는 후반 추가 시간 사수올로의 쿠마 바바카르에게 헤딩으로 추격 골을 허용했다. 또 종료 직전 더글라스 코스타가 경고 누적으로 퇴장당해 위기를 맞았지만, 호날두의 멀티골에 힘 입어 2-1 승리를 지켜냈다. 4연승을 달린 유벤투스(승점 12)는 리그 선두를 질주했다.
지난 시즌까지 레알 마드리드(스페인)에서 뛰며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3연패를 이끈 호날두는 지난 7월 11일 유벤투스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계약 기간 4년에 연봉은 약 3000만유로(약 400억원)로 알려졌다. 이적료는 1억1200만유로(약 1500억원)로 역대 5위다. 역대 1위 이적료는 네이마르가 바르셀로나(스페인)에서 파리 생제르맹(프랑스)으로 이적하면서 기록한 2억2000만유로다. 호날두는 레알 마드리드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2009년 레알 마드리드 유니폼을 입고 9년간 총 438경기에 출장해 451골을 넣어 구단 사상 최다 골 신기록을 세웠다. 2위 라울 곤살레스(323골)와는 무려 100골 이상 격차다. 특히 챔피언스리그에서 역대 최다인 120골을 넣어 라이벌 리오넬 메시(바르셀로나·100골)도 제쳤다. 호날두가 있는 동안 레알 마드리드는 챔피언스리그 4회 우승을 비롯해 리그 우승 2회, 스페인 국왕컵 2회 등 총 16회 정상에 올랐다. 호날두의 합류로 기존 간판 스트라이커 곤살로 이과인은 AC 밀란(이탈리아)으로 이적했다.
유벤투스는 20년이 넘는 우승 한을 풀고자 골잡이 호날두를 영입했다. 창단 121년 구단 역사를 자랑하는 유벤투스는 수년째 이탈리아 최강팀으로 군림하고 있지만, 유럽클럽대항전만 나서면 힘을 쓰지 못했다. 유벤투스는 1996년 이후로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어보지 못했다. 유벤투스 홈팬들은 호날두의 영입을 두고 세계 최고의 공격수를 품었다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팬들은 "레알 마드리드의 챔피언스리그 3연패를 이끈 우승 청부사 호날두와 함께라면 든든하다"라며 기뻐했다. 반면 30대에 접어든 호날두는 전성기가 지나 몸값 만큼 활약하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바이에른 뮌헨(독일)의 칼-하인츠 루메니게 회장은 "33세나 된 (노장) 선수에게 1500억원을 쓸 순 없다. 뮌헨이라면 영입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번 시즌 개막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은 호날두는 좀처럼 골맛을 보지 못했다. 리그 1~3라운드까지 3경기 동안 풀타임을 뛰면서 무득점에 그쳤다. 2라운드에서 라치오를 상대로 도움 1개만 기록한 것이 전부였다. 그러자 일부 팬들의 조롱도 이어졌다. 이들은 "한물 간 호날두는 1500억원의 가치가 없는 선수"라며 비아냥댔다. 하지만 베테랑 호날두는 묵묵히 뛰었다. 흔들리지 않고, 평소 훈련을 철저히 소화했다. 강한 정신력으로 부진을 탈출한 호날두는 경기 후 이탈리아 스카이와 인터뷰에서 "기대감이 높아서 조금 걱정되기도 했다. 정말 골을 넣고 싶었는데, 성공해서 기쁘다"면서 "동료들과 호흡이 좋다. 반드시 팀이 우승하는 데 기여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호날두는 이제 유벤투스 소속으로 첫 챔피언스리그 득점에도 도전한다. 유벤투스는 20일 발렌시아와 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 1차전을 치른다. 호날두는 "어려운 상대들과 같은 조에 묶였지만, 행운이 따르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