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에 따라 마일리지를 많이 쌓은 선수에게 병역 면제 혜택을 주는 방안이 어떨까 싶다."
'병역 면제 특례' 논란 속에서 마무리된 2018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 해단식 기자회견에서 이기흥(63) 대한체육회장이 낸 의견이다. "개인적인 의견"이라는 단서를 달긴 했지만, 주무부처인 병무청에서도 "병역 면제 특례 제도를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현실화될 가능성이 생겼다.
이번 병역 면제 특례 논란은 아시안게임 야구·축구대표팀에서 집중적으로 불거졌다. 대회 전부터 선수 선발을 두고 논란이 많았는데, 일부 선수들을 발탁하는 과정에서 실력보다 군 면제 혜택을 주기 위해서 선수를 선발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실제로 한국 양대 프로스포츠로 군림하고 있는 야구와 축구가, 실력 차가 큰 아시아 팀들을 상대로 최정예 선수들을 구성하고 와일드카드를 기용하며 대회에 나선 배경에 주요 선수들의 병역 면제 특례가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국민적인 응원을 등에 업고 와일드카드로 대표팀에 나선 손흥민(26·토트넘)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김학범호는 출범하기 전부터 '손흥민의 군 면제'로 더 많은 관심을 모았고, 국내뿐 아니라 외신들도 '손흥민이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병역 의무를 피했다'며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사실 이런 병역 면제 특례 논란은 아시안게임이 열리는 4년마다 되풀이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직설적으로 얘기하자면 '올림픽보다 아시안게임이 쉬우니까'다. 현행 병역법상 운동선수에게 주어지는 병역 면제 특례 혜택 조건은 올림픽 3위 이상 입상자와 아시안게임 1위 입상자 두 가지인데, 전 세계의 톱 랭커들이 총출동하는 올림픽보다 아시안게임이 아무래도 '만만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사실상 '군 면제 특급열차 티켓'인 아시안게임 대표팀 승선을 두고 4년마다 논란이 벌어지는 상황이다.
이기흥 회장이 성적 누적식 '마일리지 제도'를 언급한 것은 바로 이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다. 이 회장은 형평성에 문제를 제기하며 "아시안게임보다 더 큰 대회가 세계선수권대회인데 병역 면제 혜택이 없다. 세계선수권대회까지 포함해서 마일리지를 쌓은 뒤 일정한 수치에 도달하면 혜택을 주는 것으로 보완이 가능하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각 종목 국제연맹이 주관하는 세계선수권대회는 올림픽 다음가는, 혹은 올림픽 이상으로 권위 있는 국제 대회지만 현행 병역법상 병역 면제 특례 대상이 아니라는 점에 착안한 의견이다.
'병역 마일리지' 제도는 이 회장의 '사견'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러나 전 세계 200개가 넘는 가맹국이 경쟁하는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에 나서야 하는 한국 남자 축구대표팀 입장에선 귀가 솔깃해지는 의견이다. 한국은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했고 16강전에도 두 번 진출했지만 월드컵이 병역 면제 특례 대상 대회가 아니라 이 문제에 대해선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었다. 4강 신화를 이뤄 낸 2002 한일월드컵 당시 대표팀이 이례적으로 병역 면제 혜택을 받긴 했지만 말 그대로 '이례'였다.
그러나 병역 마일리지가 현실화되면 월드컵은 물론, 아시아축구연맹(AFC) 주관 대회인 아시안컵 등 보다 많은 대회에서 점수를 쌓을 기회가 생긴다. 4년에 한 번 찾아오는 아시안게임에 병역 면제 혜택을 받기 위해 매진하는 것이 아니라 차근차근 각종 대회에서 실력을 발휘하며 쌓은 성과로 혜택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셈이다. 꾸준히 성적을 내고 실력을 증명하는 자에게 특례를 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자연히 지금보다 선수들에게 더 큰 동기부여가 될 수 있다. 게다가 육상과 수영 등 이른바 기초 종목에서 묵묵히 땀을 흘리는 선수들에게도 큰 메리트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 '병역 면제용 대회'로 전락한 아시안게임에서 반짝 메달로 특례를 얻는 데 그치지 않고 장기적으로 실력 있는 선수를 키워 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