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종오(39·kt)의 별명은 누구나 다 알고 있듯 '사격 황제'다. 일일이 늘어놓자면 입이 아플 정도로 화려한 수상 경력 그리고 별명에 걸맞은 침착하고 냉철한 경기 운용 등이 그를 '사격 황제'로 불리게 했다. 사대에 서서 왼손을 바지 주머니에 꽂고 무표정한 얼굴로 과녁을 겨냥하는 침착한 뒷모습은 진종오의 트레이드마크다.
그러나 21일 인도네시아 팔렘방의 자카바링 스포츠시티 슈팅 레인지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 사격 남자 10m 공기권총 결선 경기를 앞두고 진종오의 '포커페이스'가 깨졌다. 예선 2위로 여유롭게 결선에 진출한 진종오는 자신의 생애 첫 아시안게임 개인전 금메달을 정조준하고 있었다. 그런데 결선이 시작되기 전, 진종오가 심판에게 무엇을 항의하기 시작했다. 본경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쏘는 시사(시험 사격) 마지막 발 결과가 선수 모니터 화면에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회 운영 과정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해프닝이기에, 이때까지 진종오는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심판은 진종오의 항의에 무성의하게 대응했다. 진종오에게 한 발을 더 쏘게 한 심판은 모니터 화면에 표시가 제대로 된 것을 확인하자 그대로 경기를 진행했다. 대한사격연맹 관계자는 "모니터에 시사 마지막 발 탄착이 보이지 않았다. 이럴 경우 보통 모니터를 고치고 무제한 시사를 줘야 하는데 대회 운영 미숙으로 한 발밖에 주지 않았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대회 측이) 운영의 미가 부족해서 진종오가 초반부터 심리적으로 영향을 받았다"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김승철 대표팀 코치 역시 "이런 상황에서 선수가 이의를 제기하면 경기 진행을 중단하고 장치 등에 문제가 없는지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선수에게 무제한 시사를 허용해야 한다"고 설명하며 심판의 지시에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경기는 그대로 진행됐고 심리적으로 흔들린 진종오의 총구는 평소처럼 날카롭지 못했다. 결국 진종오는 178.4점을 쏴 결선에 진출한 8명의 선수 가운데 5위로 대회를 마쳤다. 함께 출전한 이대명(30·경기도청)은 6위로 경기를 마쳐 남자 10m 공기권총 메달 획득의 꿈은 무산됐다. 진종오의 입장에선 미숙한 대회 운영으로 망쳐 버린 금메달의 가능성이 아쉬울 수밖에 없다.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아시안게임 무대에서 첫 번째 개인전 금메달을 쏘겠노라고 다짐하고 오른 장도였다. 진종오는 그동안 올림픽 사격 종목 사상 첫 3연패는 물론, 국제사격연맹(ISSF) 월드컵 시리즈와 세계선수권대회, 아시아선수권대회 등 굵직굵직한 국제 대회를 휩쓸었지만, 유독 아시안게임 개인전에선 금메달을 따지 못했다. 단체전에서는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과 2014 인천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는데 개인전은 2002 부산아시안게임 때부터 이번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까지 5번의 대회를 치르는 동안 1번도 금메달을 획득하지 못했다.
경기를 마친 진종오는 공동취재구역(믹스트존) 인터뷰도 마다하고 경기장을 떠났다. 국제사격연맹(ISSF) 선수위원을 맡을 정도로 적극적이고, 평소 언론을 통해 자신이 하고 싶은 얘기를 가감 없이 전해 왔던 진종오였기에 이날 그의 침묵은 더 무거웠다. 5번의 아시안게임 개인전 금메달 도전을 허무하게 마친 진종오는 오는 23일 귀국, 9월 1일 개막하는 창원세계사격선수권대회에 출전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