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항공이 기내식 공급 업체를 바꾸는 과정에서 '노 밀(No Meal)' 사태가 벌어진 가운데 기내식 생산 협력 업체 대표가 숨졌다. 항공기 지연이 사흘째 이어지고, 영세 협력 업체 책임자의 사망 소식마저 전해지자 아시아나항공을 향한 국민의 공분도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김수천 아시아나항공 사장이 사과문을 발표한 데 이어 중국 출장 중이었던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급히 귀국했으나 사태는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납품 걱정하던 협력 업체 대표 자살… 유감 표명도 없는 아시아나
3일 경찰에 따르면 지난 2일 오전 인천시 모 아파트에서 아시아나항공 기내식 공급 업체 샤프도앤코의 협력사 대표 A씨가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유족들은 경찰 조사에서 "전날 기내식 납품 문제로 많이 힘들어했다"고 진술했다. 기내식을 배열하는 작업을 주로 맡았던 이 업체의 직원들은 아시아나항공에 기내식을 공급하기 위해 28시간 가까이 일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A씨가 남긴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은 항공기에 기내식을 제대로 싣지 못해 일부 항공편이 지연돼 사회문제가 되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유족과 회사 관계자를 조사 중이다.
이번 사태는 자금 압박에 시달리던 아시아나항공이 기내식 공급 업체를 무리하게 교체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아시아나항공은 지난달 30일을 끝으로 독일 루프트한자 그룹 계열사인 LSG스카이셰프코리아(이하 LSG)와 관계를 청산했다. 이에 앞서 아시아나항공은 LSG 측에 그룹 지주회사인 금호홀딩스가 발행한 1600억원 규모의 신주인수권부사채를 20년 만기 무이자로 사 줄 것을 요구했다가 거절당한 바 있다.
결국 아시아나항공은 1600억원을 투자한 중국 하이난 그룹 계열사인 게이트고메코리아와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지난 3월 게이트고메코리아가 새로 짓고 있던 기내식 공장에 불이 나면서 샤프도앤코와 3개월 임시 계약을 맺었다. 이후 계약 첫날이던 지난 1일 기내식 생산 업체가 제대로 기내식을 공급하지 못했다. 이로 인해 기내식 없이 비행기가 출발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협력사 대표의 자살 소식이 전해진 이튿날인 3일 오전 아시아나항공은 김 사장 명의로 된 사과문을 발표했다. 기내식 서비스에 차질이 생긴 점에 대한 사과와 이른 시일 내에 정상적인 서비스를 하겠다는 약속이 주 내용이었다. 협력사 대표의 자살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아시아나항공은 자살은 알고 있지만, 이번 대란과 자살은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사망자가 샤프도앤코의 하청 업체 중 한 곳의 대표인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정확한 신상 정보와 사인, 이유 등은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국민청원에 소송 움직임도… 여론 부글부글
여론은 부글부글 끓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이번 사태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 등 사정 기관의 조사를 촉구하는 청원 글이 연이어 올라오고 있다.
박 회장을 조사해 달라는 청원도 있다. '아시아나항공 기내식 대란 사태, 박삼구 회장의 비리를 밝혀 주세요'라는 글을 올린 청원자는 '박삼구 회장 때문에 죄 없이 직원들은 고통 속에 살고 있다. 박삼구 회장, 아시아나 항공의 비리를 밝혀 달라'고 했다.
박 회장은 중국 출장길에 탔던 비행기에 기내식이 실리면서 비난받고 있다. 박 회장은 기내식 대란이 벌어진 첫날이던 1일 인천발 칭다오행 OZ317편을 탔다. 아시아나항공은 이날 중국과 일본 등 비교적 짧은 노선은 기내식을 싣지 않은 채 출발하기도 했다. 그러나 박 회장이 탄 비행기엔 기내식이 정상적으로 실려 정시에 출발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법무법인 한누리는 아시아나항공 경영진을 상대로 한 주주대표소송에 참여할 소액주주를 모집한다고 3일 밝혔다. 한누리 측은 회사의 이익이 아닌 금호홀딩스의 이익을 위해 기내식 공급 업체를 신설 업체로 바꾼 박 회장 등 아시아나항공 경영진의 행동이 업무상 배임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
주주대표소송은 소액주주가 회사에 손해를 끼친 임원을 상대로 회사를 대신해 제기하는 소송이다. 아시아나의 발행주식총수는 2억523만5294주다.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하기 위해서는 주식 2만524주를 6개월 이상 보유한 주주들의 참여가 필요하다.
이번 사태에 대한 금호그룹이나 박 회장 차원의 수습책 발표 계획은 아직 없다.
금호산업 관계자는 "그룹이나 박 회장님 차원에서 추후 대책이나 입장 등 발표는 아직 전달받은 바가 없다. 내부적으로 정신이 없는 상황이나 조속한 수습을 위해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