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색 물결로 가득한 니즈니노브고로드 스타디움 앞, 그래서 점점이 흩뿌려진 붉은 악마들의 모습은 더욱 잘 보였다. 18일(한국시간) 이곳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 F조 1차전 한국과 스웨덴의 경기를 보러 모여든 4만 3000여 명의 관중들 중 붉은 유니폼을 챙겨입은 한국 팬들의 숫자는 불과 1500여 명. 3만 가까이 입장한 스웨덴 팬들과 비교하면 말 그대로 '새발의 피'였다. 하지만 1500명의 붉은 악마는3만 스웨덴 팬들에 밀리지 않고 당당히 맞서 응원전을 펼쳤다.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을 응원하겠다는 일념으로 이역만리 타국까지 날아온 사람들의 얼굴에는 승리에 대한 기대감, 혹은 패배에 대한 두려움보다 지금 이 순간 월드컵 본선이라는 큰 무대에 나선 한국에 대한 자부심과 즐기는 마음만이 가득했다. 포항에서 올라왔다는 세 청년은 페이스 마카로 얼굴에 태극무늬를 그리고 '깔맞춤'으로 가발까지 쓰고 나타나 이목을 집중시켰다.
엄용국(37) 씨는 경기 전 팬들로 가득한 니즈니노브고로드 스타디움 앞 광장에서 가장 인기있었던 사람 중 한 명이다. 찜통같은 더위 속 왕을 연상케 하는 한복 차림으로 광장을 활보하는 엄씨에게 스웨덴 팬들은 물론 수많은 외국인들이 사진을 요청했다. 엄씨가 사비로 20만원을 들여 한복을 대여하고 상투관을 구매해 니즈니노브고로드까지 날아온 건 당연히 한국을 응원하기 위해서다. 엄씨는 "故 김대중 대통령이 한국 경기를 보시는 날은 반드시 이겼다고 하더라, 그래서 왕 차림 정도는 하고 와야하지 않을까 싶었다"며 한국 승리를 기원했다.
사진 찍는 건 멋쩍어하며 거부했지만, 유독 눈에 띄는 형광 주황색 제주 유나이티드 유니폼을 입고 나타난 한국 팬들도 있었다. 휴가를 내고 러시아로 날아온 제주도에 사는 두 명의 회사원들이었다. "제주도에 살면서 제주 경기만 보느라 유니폼이 이것뿐"이라며 웃은 그들은 "한국을 응원하고 포르투갈 경기 하나 더 본 다음에 돌아갈 예정이다. 휴가를 일주일 밖에 못 받았다"고 했다. 제주도에서 니즈니노브고로드까지의 거리는 6530km. 축구를 보러, 응원하기 위해 날아온 그들의 열정이 선수들에게도 전달됐길 바란다.
이날 경기장에는 스웨덴과 한국 팬들만 찾아온 건 아니었다. 개최국인 러시아 팬들은 물론, 멕시코와 미국, 싱가폴, 일본, 중국 등 다양한 팬들이 경기장을 찾았다. 스웨덴을 응원하러 온 싱가폴 팬도 있었고, 태극기로 옷을 만들어 입고 한국을 응원하는 러시아 여성도 있었다. 오성홍기와 태극기를 나란히 들고 응원을 온 중국인 저우저이탄-왕청카이-리앙슈화는 "우리는 광저우 에버그란데의 팬이다. 그래서 김영권을 응원하기 위해 여기에 왔다"고 한국을 응원하러 온 이유를 설명했다. 응원에 힘입어 김영권은 이날 경기서 좋은 활약을 펼쳤다.
한국의 2차전 상대인 멕시코 팬들도 만났다. 양쪽 뺨에 태극기와 스웨덴 국기 모양 페이스페인팅을 그리고 경기장을 찾은 이들은 "한국과 스웨덴이 무승부를 거뒀으면 좋겠다. 그게 우리에겐 베스트"라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모스크바에서 열린 멕시코와 독일의 1차전은 안타깝게도 티켓을 구하지 못해 보지 못했다"고 말을 이은 이들은 "한국과 2차전이 열리는 로스토프도나누에는 갈 것이다. 좋은 경기를 펼치자"고 엄지를 치켜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