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여배우들이 연상 연하물을 선호하진 않는다. 외모에 민감하다 보니 어린 남자와 투 샷이 잡히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손예진에게 그런 점은 중요하지 않았다. 이미 지난해부터 작품을 열심히 공부했고, 결말까지 모두 알고 촬영에 임했다. 그렇기에 JTBC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는 온전히 손예진의 드라마로 평가받았다.
친한 친구의 동생이자 자신의 동생 친구로만 여겼던 정해인(서준희)에게 애정을 느끼며 연애에 빠진 윤진아를 연기했다. 드라마 초반에 달콤한 케미스트리가 빛났고 중반으로 넘어갈수록 현실 벽에 부딪히며 영원할 것 같았던 두 사람의 사랑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결국 이별을 택했고 3년 동안 다른 남자와 연애했지만 드라마 최종회에서 정해인과 재회했다. 드라마를 끝내고 만난 손예진은 쉽게 드라마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 드라마가 끝났다. "끝났다는 걸 못 느끼고 있다. 일주일이 지났지만 인터뷰하고 있어서 그런지 잘 못 느끼겠다. 보통 작품을 끝내고 나면 쉬고 싶은 마음이 드는데, 이번엔 아니었다. 에너지가 남아 있다는 게 놀랍다. 새로운 경험이었다. 이런 감정이 드나 싶었다. 여운이 오래갈 것 같다."
- 긴 여운에 이유가 있나. "짚어 어떤 부분이라고 하기엔 너무 많다. 이 작품은 내 또래의 이야기였고 사랑과 가족이었다. 또 직장에서 사건도 있어 생각을 많이 하게 해 준 드라마다. 안판석 감독님과 함께한 첫 작품인데 너무 좋았다."
- 안판석 감독은 특별했나. "감독님은 원테이크 촬영을 좋아한다. 극적인 상황에 놓여 있을 때 배우들의 얼굴을 잡는 게 아니라 카메라를 뒤로 뺀다. 배우의 얼굴보다 상황을 전달하려고 한다. 그런 연출이 너무 좋았다. 또 '벌써 끝났나' 싶을 정도로 많이 촬영하지 않는다. 한 신을 많이 해야 두 번 정도 연기한다. 다이내믹한 카메라워킹과 배우들의 극적인 순간에 익숙한데, 안판석 감독님은 다르다. 이 드라마의 색깔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흔들린 적이 없고 바뀐 적이 없다."
- 드라마가 사랑받은 이유가 뭘까. "누구나 한 번쯤 연애 경험이 있지 않나. 그러나 실제 연애에서는 드라마나 영화처럼 멋있는 장소와 장면이 연출되지 않는다. 이 드라마는 일상에서 주는 현실 멜로였다. 일상적인 사랑을 표현하고 싶었다. '나도 저랬는데' '연애하고 싶다'는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 직장 여성의 차별을 겪어 본 적 없을 텐데. "꼭 직장을 다니지 않더라도 하이힐을 신으면 너무 힘들어 운동화로 바꿔 신는다. 주변에 직장을 다니는 사람이 많아 익히 들었다. 직장 내 업무적인 스트레스 외에 한 팀 내에서 오는 감정 스트레스도 크다고 들었다. 듣다 보면 '어떻게 회사에 다니나' 싶을 정도로 스트레스가 크더라."
- 정해인과 실제 사귀냐는 얘기를 많이 듣지 않았나. "유독 이번 작품을 하며 정해인과 실제 사귀냐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데뷔 이후 줄곧 멜로를 해 왔는데 유난히 이번 작품은 주변에서 사귀는 거 아니냐고 했다. 그래서 왜 그러나 싶어 촬영한 동영상과 사진을 유심히 봤다. 사람에 따라 풍기는 이미지와 성향이 다른데 (정)해인이와 나는 비슷하다. 투 샷이 잡히면 자연스럽게 융화되는 느낌이 강해 사람들이 더 그렇게 생각한 거 같다." - 정해인을 보며 어떤 생각을 했나. "데뷔 초 시절이 생각났다. '클래식' '내 머리 속의 지우개'를 촬영할 때가 떠올랐다. 그즈음에 멜로물을 촬영했는데 이번에 온전히 서준희에게 빠져 있는 모습을 보며 나를 떠올렸다."
- (정해인은) 앞으로 어떤 배우가 될 거 같나. "데뷔한 지 5년 차고 이번이 첫 주연작이라고 들었다. '내가 저 연차에 저렇게 연기했나' 하고 생각해 봤는데, 나는 저렇게 못했다. 해인이와 준희의 싱크로율이 높았다. 센스가 좋고 흡수력이 빠르다. 현장에서 '이렇게 하면 어떨까'라고 말하면 바로 연기가 나온다. 빠르고 유연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오감이 발달돼 있고 감성도 풍부하다. 앞으로 어떤 연기를 보여 줄지 기대된다."
- 극 중 길혜연(김미연)의 행동에 공감했나. "이해했다. 주변에 그런 엄마가 너무 많다. 우리 엄마의 모습을 담아냈다. 사실 부모님이 자식들에게 미안하다는 얘기를 안 하지 않나. '엄마가 미안하다'는 말은 여러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결국 엄마를 저버리지 않는 딸이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가 다 그렇지 않나. 물론 그렇게까지 반대하는 부모를 보는 자식의 입장은 공포와 고통이다. 마지막 회를 극장에서 다 같이 봤는데 엄마와 딸의 관계를 보며 많은 여자들이 울었다."
- 실제라면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겠나. "지금 같은 상황이면 남자를 선택한다.(웃음) 인간은 혼자 사는 동물이다. 실제로 그런 적은 없지만 간접적으로 본 적은 있었다."
- 반대로 엄마의 입장이라면. "살아 봤더니 '이게 맞다'는 정확한 잣대가 놓이지 않더라. 자식이 아직 없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독립적으로 키우고 싶다.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다."
- 극 중에서 감정의 변화가 컸다. 공감했나. "솔직히 답답했다. '진아가 왜 이런 선택을 할까' '솔직하면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했다. 윤진아는 미성숙하고 착한 사람이다. 상대에게 원하는 것만 말하는 사람이 아니다. 모든 걸 감수하고 다른 이야기를 한다. 결과적으로 그들에게 상처를 주지만 진아의 첫 마음은 누구에게도 큰 피해를 끼치고 싶지 않아 한다. 16회 중 정작 진아에 대해 얘기한 건 적었다. 그 부분이 짠했다. 완벽하게 성장할 수 없었는데 시청자들은 그 모습을 원했다."
- 작품을 통해 배우 손예진은 성장했나. "잘 모르겠다. 2018년 봄, 내 나이가 윤진아와 같다. 이런 작품을 만나서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었어서 배우는 게 많았다. 앞으로 어떻게 시나리오를 바라봐야 하는지, 생각의 폭이 넓어졌다. 좋은 현장에서 좋은 에너지를 많이 얻었다. 극 중에서 진아가 '이렇게 사랑받을 줄 몰랐다'는 말을 했다. 배우들이 모든 걸 포기하고 할 수 있는 게 드라마 촬영장이다.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 윤진아와 닮은 점이 있나. "진아는 너무 착해서 남들한테 피해를 주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 모든 걸 짊어지고 가려 한다. 나는 솔직한 편이다. 상대가 상처를 받을지언정 솔직한 게 맞다고 생각한다. 솔직한 게 이기적일 수도 있는데 솔직하려고 한다. 같은 건 나이와 미혼인 점이다."
- 엔딩은 마음에 들었나. "원래 대본에 적힌 엔딩은 몇 줄 안 됐다. '바닷가를 거닐다가 한참 얘기하고 진아가 웃는다'로 끝나는 건데, 해인이와 대화하다가 키스하는 신을 넣어야 한다고 감독님한테 말했다. 감독님이 우리 얘기를 듣고 노을이 지는 배경으로 키스하는 장면을 넣었다."
- 후반부로 갈수록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다. "두 사람의 사랑에 금이 가는 걸 보고 싶지 않아 하는 것 같았다. 주변에서 반대하는 것도 싫고 아름답게 사랑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했다. 예쁘게 사랑하고 끝내면 좋겠는데 왜 저런 상황에 놓였고 왜 두 사람이 헤어져야 했는지에 대한 원망도 있었다. 우리 드라마는 그런 과정을 이야기하려고 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갔는데 그게 우리 드라마의 다른 점이다. 드라마는 누구나 하지 못하는 과감한 선택을 하고 우리가 가지지 못하는 지점의 대리 만족이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사랑에 균열이 생기고 의도치 않게 헤어지는 걸 보여 주려 했다. 이 부분을 좋아한 사람들도 있고 실망스럽게 생각한 사람도 있다는 걸 안다." - 시즌2도 나올 수 있을까. "박수받을 때 떠날지 박수받아도 남을지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 16회를 덮고 나니 이들이 어떻게 살아갈지 궁금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고 그 주변 사람들은 어찌 살아가는지 궁금하다. 캐릭터의 모든 미래가 궁금하다. 다음 대본이 궁금하다. 감독님도 둘을 못 떼어 놓겠다고 했다. 실제로 그런 대본이 나와 정해인과 또 하게 될지는 모르겠다."
- 또 다른 멜로를 기대해도 되나. "나이가 들어도 어울리는 멜로를 하고 싶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화양연화' 같은 작품을 하고 싶다. 두 작품의 스타일은 나이가 더 들어서 촬영하고 싶다."
- 연애관이나 결혼관이 바뀌었나. "이 작품을 해서가 아니라 늘 자주 바뀐다. 자유롭지만 안정적이고도 싶다. 뭐가 정답인지 모르겠다. 나이가 들면 결혼해야 한다는 통념이 있지 않나. 그 시기가 지났다. 부모님이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주변에서 하지 말라는 말을 너무 많이 한다. 결혼한 사람들이 행복해 보이다가도 아닌 거 같기도 하다."
- 결혼에 대한 압박이 있나. "그랬으면 하지 않았겠나(웃음). 아직 잘 모르겠다. 하고 싶긴 한데 언제 결혼하겠다는 생각을 하진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