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벼락 갑질'로 공분을 사고 있는 조현민 대한항공 광고담당 전무 논란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조 전무가 과거 진에어 등기임원을 불법으로 맡은 것에 대해 조사에 나섰고, 경찰은 조 전무를 피의자로 전환해 출국 정지를 신청했다.
대한항공에 더 큰 악재는 따로 있다. 대한항공의 '대한'과 영문명 'Korean air' 등의 상표권을 박탈해달라는 국민적 요구가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특허청과 변리사, 변호사 등 전문가들은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이해 당사자들이 상표등록무효심판과 소송을 할 경우 상표권 박탈이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상표권 박탈…'가능성 희박하지만 등록 무효 제도 존재'
17일 현재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대한항공 사명과 로고를 변경해 달라는 국민청원이 350개 이상 올라와 있다. '대한' 등의 나라를 차용한 상표를 박탈해 달라는 청원에는 6만5000명 이상이 '동의' 버튼을 눌렀다. 정치권 일각에서도 명칭 박탈에 대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상표권 박탈이 가능할까.
전문가들은 대체로 "상표법에 비춰볼 때 대한항공의 '대한' 등 상표권 박탈 가능성은 상당히 희박하다"는 의견이다.
대한항공은 1969년 국영 기업이던 대한항공공사를 한진상사가 인수하면서 만들어졌다. 엄연한 민영 기업의 자산으로 상호와 상표 변경은 대한항공만이 결정할 수 있다.
항공정책을 담당하는 국토교통부 측은 "상표권은 민간 기업의 상표권으로 보호되는 부분으로 정부가 빼앗을 수 없는 부분이다. 대한통운이나 한국타이어 등 같은 명칭을 쓰는 기업이 많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그러나 상표권을 박탈할 수 있는 길이 완전히 없는 것은 아니다. 특허청과 변리사들은 이미 등록된 상표라고 하더라도 상표법에 비춰볼 때 문제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 '상표권등록무효심판제도'를 통해 무효가 가능하다고 했다.
상표권등록무효심판제도는 상표권을 등록할 당시에는 하자가 없었으나 나중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될 때에는 이 심판으로 무효로 할 수 있는 제도다.
특허청 관계자는 "상표법 34조에 따라 상표를 등록해 공익상 또는 타인의 이익을 침해하는 경우에는 이미 상표 등록이 됐더라도 무효로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민도 상표권등록무효 청구 가능 여부 관건
그러나 상표권등록무효심판제도는 이해관계자만 청구하도록 관련 법률과 규정에 명시돼 있다.
다시 말해 경쟁사나 하청업체 등 대한항공과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성립되는 당사자만 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 청원글을 올리는 국민이나 정치권은 상표법에서 제시한 이해관계자에 속하지 않는다.
김재형 법무법인 다온 변호사는 "상표법 제43조 제3항에 따르면 상표등록무효심판을 청구할 수 있는 이해관계인은 등록상표의 소멸에 직접적인 이해관계에 있는 자를 말하는 것"이라며 "경쟁사나 유사한 상표를 이용한 적이 있는 이해관계자를 제외한 일반 국민은 이 심판을 청구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해관계자'라는 단어가 가진 의미의 폭을 확장한다면 국민도 이 심판을 청구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다만, 이럴 경우 국민 여론을 수렴하는 입법 기관인 국회가 나서 관련 법률을 개정해야 한다.
대한항공은 고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가 1969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권유로 당시 국영 항공사인 대한항공공사를 인수한 이후 1988년 아시아나항공이 설립될 때까지 유일한 국책 항공사의 지위를 누렸다. 국가의 지원과 국민의 희생이 없었다면 재계 서열 10위권의 대한항공도 완성될 수 없었다. 이런 사정을 고려하면 이해관계자의 폭을 국민으로 확장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추혜선 정의당 수석 대변인은 "포괄적 의미에서 국민이 이해당사자가 될 수 있으나 법리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면서도 "그러나 대한항공의 갑질 행태가 반복되면서 국민적 시대정신이 명칭 박탈 등을 요구하고 있다면 국민의 청구 자격 여부는 입법부인 국회가 응답해야 하는 문제"라고 말했다.
상표권등록무표심판제도로 '대한'과 ''Korean air' 등의 상표를 박탈하더라도 경쟁사가 이 명칭을 사용할 수 없어서 큰 의미가 없다는 분석도 있다.
한 변리사는 "대한항공에서 '대한'자를 박탈하더라도 경쟁 업종은 이 명칭들을 차용해 사용할 수 없다. 아무도 쓸 수 없는 단어가 되는 것이라 업계 내에서 실효성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대한항공으로서는 상표권 박탈에 따른 막대한 손해가 예상되기때문에 징벌적 차원으로만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