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사단이 몰락했다. 김기덕 감독에, 페르소나로 불린 배우에, 오랜 시간 직접 키운 제자까지 '성 추문'에 휘말렸다. 이쯤 되면 '지옥의 사단'으로 불려도 무방하다. 김기덕 감독과 조재현을 향한 미투(Me Too) 운동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김기덕 키즈'로 불리던 전재홍 감독 역시 논란을 비껴가지 못했다. 미투 고발 대상자가 된 것은 아니지만 비난은 피할 수 없다.
전 감독은 지난 9일 서울서부지법 형사1부 심리로 열린 결심공판에서 2016년 서울의 한 찜질방 탈의실에서 남성 이용객들의 나체 동영상 10여 개를 찍은 혐의(성폭력특별처벌법 위반)로 벌금 500만원을 구형받았다. 전 감독의 송사가 더욱 주목받은 이유는 그가 1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김 감독과 함께 일한 스태프자 제자기 때문이다. 전 감독은 김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 '시간(2006)' 스크립터를 거쳐 '숨(2007)' '비몽(2008)' 연출부로 활동했다. 이후 직접 각본을 쓴 '아름답다(2007)'로 입봉에 성공, '풍산개(2011)'와 '살인재능(2014)' '원스텝(2016)' 등을 통해 자신만의 필모그래피를 쌓았다. 그중 김 감독이 직접 제작에 나선 작품들도 있어 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봐도 무방하다.
영화 팬들은 '악마가 악마를 키웠다'며 분노를 금치 못하고 있다. 영화계 관계자들은 "김기덕 세계가 무너졌다"면서 "대중적이고 상업적이지는 않아도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던 감독이 이제는 모든 것을 잃게 됐다. 작품에서만 보여 줬던 세계가 아니라는 것이 씁쓸하다"고 전했다.
김 감독은 '뫼비우스' 촬영 당시 여배우를 폭행하고 모욕한 혐의로 기소돼 500만원 벌금형을 받았다. 이후 얼마 되지 않은 시기에 신작 '인간, 공간, 시간 그리고 인간'을 들고 제68회 베를린국제영화제를 통해 화려하게 복귀했지만, 국내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성추행·성폭행 폭로였다.
베를린영화제에서 남긴 "영화와 인격은 별개다"던 김 감독의 해명은 오만한 명언(?)으로 남았다. MBC 'PD수첩'이 김 감독과 인연이 있는 여배우 세 명의 미투 인터뷰를 공개하면서, 그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성폭행범' 낙인이 찍혔다. 꽁꽁 숨어 버린 김 감독은 사과도, 변명도 하지 않고 있다.
조재현은 단독으로 또 김 감독과 얽힌 가지각색 내용으로 고발됐다. 수많은 스태프들과 후배 배우들이 입을 열었고, 최근에는 여기자에게 성희롱성 발언을 했던 사건까지 알려지며 논란의 중심에 섰다. 조재현은 '은퇴'를 시사하며 "모든 것을 내려놓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경찰은 김 감독과 조재현 혐의에 대한 수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전 감독은 이미 경찰 조사를 받았다. '끼리끼리'라는 표현이 딱이다. '의기투합'이라는 명목 아래 '김기덕 세계'에서 날고 기며 주목받았던 이들은 '난 이래도 된다'는 자만심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됐다. 김기덕과 함께 흥했고, 김기덕과 함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 김기덕 사단이다.
충무로 관계자는 "김기덕 사단은 영화계 지망생들에게 하나의 스펙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허울만 좋았을 뿐, 내부 상황을 알게 되면서 버티지 못하고 떠난 이들이 훨씬 많다. 성 추문과 관련된 내용을 떠나 열정을 담보로, 능력을 갈아 쓰는 현장으로 악명이 높았다"면서 "이제 김기덕 사단은 자랑이 아닌 인생의 오점이자 지우고 싶은 한 줄이 됐다. 아직 공개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측근들도 마음이 편하지는 않을 것이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