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 업계에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바람이 불고 있다. 정부가 '좋은 일자리 창출'을 핵심 국정 과제로 내세우면서 기업들도 이에 발맞춰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적극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고용 불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규직 전환에 대해서는 사회 전반적으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한쪽에서는 정규직 전환 비용 등 기업의 부담이 오히려 신규 채용 감소로 이어지진 않을지 우려하는 눈치도 적지 않다.
영화 '카트' 주인공들 10년 만에 정규직
5일 유통 업계에 따르면 홈플러스일반노동조합과 홈플러스스토어즈는 지난 1일 무기계약직 570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노사 합의했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만 12년 이상 근속한 무기계약직 직원 가운데 희망자에 한해 올 7월부터 정규직 전환을 실시한다"고 설명했다.
이번에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대상은 2005년 12월 31일 이전에 입사한 무기계약직 500여 명이다. 대부분 주부 사원들로 평균연령은 53세다. 점포에서 계산이나 상품 정리를 담당하는 무기계약직은 일반 계약직과 달리 계약 기간에 제한이 없지만 승진 기회 등이 정규직보다 훨씬 적었다.
이에 홈플러스일반노조는 2007년 비정규직 노동자 대량 해고 사태에 맞서 510일 파업 투쟁을 진행한 바 있다. 이들의 이야기는 2014년 영화 '카트'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홈플러스는 이번 정규직 전환에 따른 별도의 직군을 만들지 않고 기존 인사 체계를 그대로 적용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정규직 '선임' 직급과 '초임 연봉'을 받는다. 기존의 정규직과 인사·급여·복리 후생 등이 동일하게 적용된다.
국내 대형 마트 업계 2위인 홈플러스가 무기계약직의 정규직 전환에 나서면서, 다른 유통 기업들의 고용 정책에도 변화가 일지에 관심이 쏠린다. 앞서 파리바게뜨가 자회사를 설립해 제빵 기사를 고용하기로 한 데 이어 애경산업과 이랜드그룹도 협력 사원을 직접고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애경산업은 700여 명 규모의 판촉 사원의 직접고용을 약속했고, 이랜드월드는 패션 부문 협력사 직원을 올 상반기 내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이랜드월드의 정규직 전환 규모는 총 300여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대형 유통 기업들의 이 같은 결정은 직원들의 소속감을 강화하고, 고용 안정성을 높인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또 정부의 정규직 확대 정책에 부응한다는 측면에서도 긍정적이다. 앞서 오뚜기와 농심, 남양유업 등 식품 업계에서는 판촉 사원을 정규직으로 고용하면서 노동계와 시민단체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바 있다.
[사진= 임일순 홈플러스스토어즈 대표이사 사장(왼쪽)과 이종성 홈플러스일반노동조합위원장이 지난 1일 서울 강서구 홈플러스 본사에서 2018년 임금협약 조인식을 마친 뒤 협약서를 함께 들어 보이고 있다. 홈플러스 제공]
일부에선 "신규 채용 감소 우려"
다만 업계 한쪽에서는 유통 기업들의 이 같은 일괄적인 정규직 전환이 결국 서비스 비용 상승으로 이어지고 제품 가격에도 반영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유통 업계 한 관계자는 "유통 업체의 경우 자체 비정규직보다는 브랜드사에서 파견을 나온 간접고용 형태의 비정규직 근로 형태가 많다"며 "대규모 정규직 전환이 이뤄지면 인건비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유통 업계 관계자는 "업태에 따라 다양한 고용 형태가 필요할 수 있는데 이런 현실은 무시한 채 정규직화만 강조할 경우 오히려 노동시장이 경직될 수 있다"며 "업계 입장에서는 특별한 예산 지원 없이 비정규직을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은 결국 신규 채용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내놓았다.
여기에 식음료 업체의 경우 정규직 전환 비용 등 기업의 부담이 가격 인상으로 소비자에게 전가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인건비가 증가하게 되면 기업은 판관비 등을 1차적으로 줄이게 되는데 이는 결국 소비자 후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업체 관계자는 "채용이나 인건비 비용이 늘어나면 소비자들에게 제공돼야 할 마케팅, 할인 프로모션이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