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수원의 모처에서 프로야구 7개 구단 단장이 한자리에 모였다. 지방이 연고인 삼성과 KIA, 롯데를 제외한 나머지 구단 단장이 빠짐없이 참석했다. 다만 KBO 관계자는 없었다. KBO 관계자 부재 상황에서 단장들이 모이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A구단 단장은 "이례적이다"고 말했다.
여러 대화가 오갔다. FA(프리에이전트) 시장 상황부터 개막과 관련된 이야기도 이어졌다. 그리고 이날 가장 장시간 논의됐던 주제는 프로야구 중계권 구조에 대한 논쟁이었다. 일간스포츠가 1월15일부터 닷새 동안 집중적으로 보도한 내용이다. 10년 넘게 에이클라엔터테인먼트(이하 에이클라)라는 회사가 중계권 사업에서 독점적 지위를 확보하면서 비정상적으로 이윤을 남겼다는 게 골자다.
B구단 단장은 "현재 중계권료는 일방적인 통보라고 보면 된다. 에이클라와 KBO간 계약을 구단에 아예 공개하지 않는다. 비공개 원칙이라고 하는데 그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며 "공개를 해줘야 합리적인 구단 운영도 가능하다"고 이날 단장 모임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단장 모임에서도 에이클라의 정확한 수익 내용을 알고 있는 단장은 없었다.
모임의 분위기를 전한 B구단 단장은 "이날 대화는 사실 논쟁이라고 볼 수도 없다. 의견이 달라야 하는데 그런 것이 하나도 없었으니까. 의견 일치를 본 내용이 바로 일간스포츠가 지적한 프로야구 중계권 구조의 불합리함이다. 새롭게 꾸려질 KBO 프런트와 논의할 내용이기도 하다. 금액을 많이 받고 적게 받고를 떠나, 과정의 투명함이 중요하다. 모든게 서류, 문서로 남는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구단의 경우엔 현재 사장의 지시로 마케팅팀이 중계권 구조의 문제점에 대한 보고서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C구단 단장은 "현재 계약된 것은 어쩔 수 없으니까 앞으로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아야할 부분에 관해서 이야기를 했다. 재계약을 하는 시점이 오면 이전처럼 하지 않을 것이다"고 밝혔다. 이전과 달리 가만히 앉아서 불필요한 지출이 생기는 것을 방관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D구단은 대표이사가 직접 나서서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하는 것으로 확인 됐다. 구단 마다 이런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궁극적으로는 KBOP-구단의 마케팅 태스크포스팀 주축으로 원점에서부터 중계권 계약 구조의 문제점을 점검할 수 있다. 일방적인 의사 결정과정에 따른 그간 관행도 탈피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여기에 지상파-포털 온라인 등 여러 항목의 중계 카테고리에 대한 적정한 시장 평가 등의 작업에 나설 수 있다. KBO- 대행사의 일방적인 결정, 이에 따른 통보 과정에서 벗어나 회원사인 10개 구단이 주도적으로 처리하는 첫 걸음이 되는 것이다.
정운찬 총재는 29일 기자 간담회에서 여러 차례 과정의 투명성에 대해 역설했다. 새 사무총장의 조건에 대해서도 여러 선임원칙을 이야기하면서 가장 먼저 "정직한 사람이 기준"이라고 강조했다. 새 사무총장이 누가 되든 간에 중계권 문제에 대해선 '과정의 투명성'을 염두에 두고 새로운 중계권 계약 모델이 만들어질 것으로 보인다.
중계권 계약을 둘러싼 환경이 변하고 있는 상황에서 야구단의 주도적이고, 선도적인 대책 마련도 필수다. 2018년에는 뉴미디어 중계권이 만료되고, 2019년에는 공중파와 케이블 중계권이 종료 된다. 프로야구 콘텐트 '1차 생산자'는 야구단과 선수다. 이들에게 제 몫이 가고 있는지에 대해선 구단 관계자들 조차 "사실 우리는 잘 모른다. 그간 맡겨 놨을 뿐"이라는 목소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도 선제적인 점검이 필요하다.
일간스포츠는 1월 15일부터 19일까지 '프로야구 새 판을 짜자' 제하의 기획을 통해 가장 먼저 중계권 구조의 불합리함을 지적했다. 2017년 에이클라가 중계권을 통해 벌어들인 수익금은 110억원(추정치) 이상이다. 구단이 받은 중계권 수익금은 53억8000만원으로 에이클라의 절반이 안 됐다. 불필요한 지출이 생기는 '옥상옥 구조'가 문제다. KBOP는 스포츠 마케팅과 중계권, 스폰서십 사업 등을 전담하기 위해 2002년 설립 됐지만 취지를 잃었다. 지상파 3사의 컨소시엄 대행사 에이클라와 중계권 계약을 하는 동안 대행사의 교체 없이 한 곳이 독점적으로 업무를 진행 했다. 에이클라는 명목상 지상파 3사의 대행사이지만, 어느 야구인도 그렇게 인식하지 않는다. 중간에서 수수료로 프로야구 중계권 수익을 나눠간다. KBOP가 본연의 일을 하지 않으면서 불필요한 금액 지출이 생긴 셈이다. 피해는 고스란히 구단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