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1000억 원대의 '경영 비리' 혐의에도 실형을 면하면서 '유전무죄 판결'이라는 비판 여론이 높다. 이는 정치권과 법조계도 마찬가지다. 검찰의 징역 10년·벌금 1000억 원이라는 무거운 구형과 달리 혐의들이 대부분 무죄가 나왔기 때문이다. 이들은 "1심 판결은 법 정의와 형평성에 어긋나고 현 정부와 국민이 원하는 적폐청산과도 동 떨어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정치권 "롯데 판결, 형평성·법 정의와 동떨어져"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부장판사 김상동)는 지난 22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횡령과 배임 등의 혐의를 받고 있는 신 회장에게 징역 1년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총수 일가의 사익추구 범행으로 기업 사유화의 단면이 분명하게 드러났다"고 지적했지만 혐의 대부분을 무죄로 판단했다.
검찰이 신 회장에게 적용한 6개의 혐의 중 유죄 판단이 내려진 건 롯데시네마 매점 운영 관련 배임 및 서미경(신격호 총괄회장과 사실혼 관계)씨 모녀에게 지급한 공짜 급여 횡령 등 2개에 그쳤다.
법원은 배임 혐의의 중요한 축이었던 자본잠식 상태의 롯데피에스넷 지분 인수와 유상증자에 대해서 "합리적인 경영상 판단 범위를 벗어났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은 "임원이었던 장남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에게 급여를 제공한 것을 횡령으로 보기 어렵다"면서 이 부분도 무죄로 판결했다.
정치권은 법원 판결에 '공정성'이 결여됐다며 아쉬워했다.
정청래 전 의원은 "판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정성이다. 신 회장이 롯데그룹의 총수가 아니었다면 실형이 나왔을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혐의를 가진 일반인이 법정 앞에 섰다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 것이라는 것이다.
정 전 의원은 "법조계에는 이른바 '3.5의 법칙'이란 말이 있다.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으면 2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해 풀어주는 법원의 행태를 꼬집는 단어"라며 "롯데의 1심 판결은 재벌 봐주기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이번 판결에 대해 "피고인의 가담 정도와 현재 처한 대내외적 어려움을 감안하면 피고인을 경영일선에서 빼는 것보다 기업활동과 국가경제 발전을 위해 기회를 주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이에 대해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기업에 손해를 끼치고 경제 발전을 저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총수에게 기업과 국가경제 발전을 위해 집행유예를 선고한 것은 법 정의가 사라진 것"이라고 말했다.
박 의원은 또 "재판부가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으로 기소된 신 회장을 그냥 형사상 배임과 횡령으로 법을 적용한 것 같다. 이 역시 솜방망이 처벌"이라고 지적했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 역시 "법원의 결정을 비판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은 아니지만 (이번 1심 판결은) 화나는 일"이라고 말했다.
검찰, 부실 수사·무리한 기소 지적도…일부선 "정치적 고려"
검찰은 지난해 6월 롯데 그룹의 본사와 신 회장의 자택을 수사하며 총 240여 명의 검사와 수사관을 동원했다. 이는 서울중앙지검 인력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숫자로, 검찰이 이번 롯데 수사에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실제로 검찰은 롯데 오너가에 중형을 구형하면서 "총수 일가의 총체적 비리와 불투명한 재벌 지배구조의 폐해를 확인했다"고 자신했다.
그러나 1심 판결은 검찰의 노력과 완전히 달랐다. 시사평론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는 법무법인 디딤돌의 박지훈 변호사는 "1심 판결은 둘 중 하나다. 검찰이 롯데 오너가를 제대로 수사하지 못했거나 법원의 기조가 달라진 것"이라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법원이 재벌을 봐주지 않았다고 한다면 이번 1심 판결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그렇게 믿고 싶지는 않지만 검찰이 무리하게 롯데그룹을 수사했다고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법무법인 가율의 양지열 변호사는 "국민의 법 감정적 측면과 개인적인 차원에서 볼 때 이번 롯데 오너가가 잘못된 경영을 한 것은 분명하다"면서도 "이번 검찰 기소에 대해 처음부터 다소 무리가 있었다는 평가도 있었다"고 말했다.
양 변호사는 롯데피에스넷과 관련한 기소가 무리했다고 봤다.
검찰은 신 회장이 롯데피에스넷이 ATM기를 구매하는 과정에 중간 업체로 롯데기공(롯데알미늄)을 끼워 넣거나 자본잠식 상태에 빠진 롯데피에스넷의 유상증자에 계열사들을 참여시키는 등 471억원의 배임을 저질렸다고 주장했다.
양 변호사는 "계열사들끼리 서로 지원한 것은 분명히 잘못된 경영이다. 하지만 계열사를 끼워 넣었다고 해서 부당한 폭리를 취했다고 보긴 어렵다"며 "또 (유상증자 역시) 법적으로 그 액수를 수치화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양 변호사는 신동주 전 부회장에 대한 임금 지급도 "처음부터 법적으로 임금 액수를 특정하고 유죄를 이끌어내기에는 애매한 부분이 있었다"고 분석했다.
재판부의 1심 판결을 정치적 고려가 녹아든 결과로 보는 시선도 있었다. 최요한 시사평론가는 "법원이 롯데에 '한 번 더 기회를 주자'는 쪽을 선택했다고 봐야한다. 롯데는 '사드 보복'의 최대 피해자 중 하나다. 오너가에 기회를 주고 이번 상황을 정리하는 편이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된다고 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최 평론가는 "이런 판결은 재벌가 봐주기식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수밖에 없다. 또 '적폐청산' 의지를 보여온 현 문재인 정권과도 상반되는 결과"라고 강조했다.
반면 재계는 롯데 오너가가 실형을 면하자 반색하는 분위기다.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단체들은 공식 입장을 밝히진 않으면서도 비공식적으로 "환영한다"는 속내를 드러냈다. 재계 서열 5위인 롯데그룹이 '뉴롯데' 계획을 정상적으로 가동할 수 있게 되면서 한국경제 안팎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했다.
롯데그룹은 1심 판결 직후 "재판부의 판단을 존중한다. 임직원들은 더욱 합심해 경제발전에 기여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