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안은 연말 여행지로 제격이다. 한 해를 정리하기에 안성맞춤이고 해넘이를 볼 수 있어서다. 그중 가장 유명한 곳이 안면도 꽃지해변이다. 꽃지해변의 할미할아비바위 사이로 떨어지는 해를 보기 위해 수많은 인파가 몰린다. 안면도가 있는 곳이 충남 태안이다. 겨울 여행으로 태안을 추천하는 이유는 해넘이 명소가 있을 뿐 아니라 겨울 먹거리가 풍부하기 때문이다. 태안에서만 먹을 수 있다는 박속밀국낙지탕을 비롯해 물텀벙이탕, 새조개 샤부샤부, 우럭젓국, 간자미 회무침, 자연산 굴 등 입맛 돋우는 겨울 별미들이 수두룩하다.
낙지탕·새조개·우럭젓국·물텀벙이탕 등 겨울 별미 수두룩
금강산도 식후경. 볼거리가 많은 태안이지만 잇단 송년회 때문에 쓰린 속을 달래기 위해 뜨끈한 박속밀국낙지탕을 먹으러 읍내의 한 식당으로 향했다. 이 집에서 40여 년 전에 처음 개발했다는 박속밀국낙지탕은 태안의 향토 음식이다. 많이 들어 봤지만 처음 먹는 음식이다. 이름 때문에 착각도 했다. 박속을 파내고 그 안에 낙지를 넣어서 끓인 탕인 줄 알았다.
그게 아니었다. 박속을 얇게 썰어서 대파와 무 등을 육수와 끓인 뒤 서해안 갯벌에서 잡은 세발낙지를 데쳐 먹는 음식이었다. 마치 연포탕과 비슷했다. 박속으로 우려낸 육수는 시원하고 개운해 간밤의 숙취가 확 풀리는 듯했다. 박속은 졸깃졸깃했고 낙지는 야들야들 부드러웠다. 국산 뻘낙지를 사용했음에도 1인당 두 마리가 들어 있었다. 주인은 "마릿수는 그때그때 다르다. 큰 것은 한 마리만 들어갈 때도 있다"고 했다.
저녁에는 술 한잔 하기에 좋은 '새조개 데침'이 있다. 보통 샤부샤부라고 부르는데 태안에서는 '데침'이라고 했다. 한 번 먹어 본 사람은 그 맛을 영원히 잊지 못한다는 새조개 샤부샤부다. 마치 조갯살의 모양이 새의 부리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새조개는 살이 연하고 부드러워 육수를 끓인 물에 살짝 데쳐 먹는데 그 맛이 황홀했다. 소주 한 잔이 거침없이 목을 타고 넘어가도 취기가 오르지 않을 정도였다.
해장에 좋은 것이 또 있다. 우럭젓국이다. 우럭젓국은 태안과 서산의 전통 음식이다. 자연산 우럭을 꾸덕꾸덕하게 말려서 먹기 좋게 잘라 파 고추 등과 함께 쌀뜨물에 푹 끓인다. 담백하고 구수하고 속도 확 풀린다.
물텀벙이탕도 있다. 태안에서는 물메기를 물텀벙이라고 부른다. 시원한 맛이 일품이고 우럭젓국이나 박속밀국낙지탕보다 값도 싸 해장으로 최고 인기다. 포구나 태안조석시장 등 어디서나 쉽게 먹을 수 있다.
이외에도 태안 겨울 먹거리로는 '홍어사촌'인 간자미 회무침과 자연산 생굴을 이용한 물회, 무침회 등도 있다.
해안사구, 천리포수목원 등 볼거리도 많아
읍내에서 20분쯤 달려가면 아스팔트 길이 온통 모래로 덮여 있다. 저 멀리에는 모래언덕도 보인다. 자동차도 달릴 수 있는 3.5㎞에 이르는 딱딱한 모래 해변도 나타난다. 바로 신두리해안사구 지역이다.
천연기념물 431호인 신두리해안사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사구, 즉 모래언덕 지대다. 거짓말 좀 보태면 중동의 사막처럼 넓은 모래벌판이 펼쳐져 있다. 신두리해안사구가 만들어진 시기는 빙하기 이후인 약 1만5000년 전이라고 한다. 강한 바람으로 모래가 해안가로 운반되면서 오랜 세월을 거쳐 모래언덕을 만들었다고 한다.
겨울철 사구는 좀 황량하기는 했지만 인적 드문 바닷가에서 찬찬히 걸으면서 한 해를 정리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사구 입구에는 사구센터가 있다. 사구 생태공원 안에 있는 각종 동식물과 해안사구에 대한 정보를 입체와 영상으로 재연해 놓은 공간이다. 직접 보고 만지고 느끼는 체험 위주로 꾸며져 있어 아이들이 좋아한다.
해안사구에서 차를 몰고 20분쯤 가면 천리포수목원이 나온다. 태안반도 끝자락에 있는 천리포수목원은 '푸른 눈의 한국인'으로 불린 고 민병갈씨가 40여 년 동안 정성을 쏟아 일궈 낸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 수목원이다. 1970년부터 본격적으로 나무를 심기 시작했는데 지난 2009년에서야 일반에 공개됐다.
천리포수목원은 500종류가 넘는 목련속 식물을 비롯한 1만5800여 종류의 다양한 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민병갈씨의 미국 이름을 딴 '밀러 가든(Miller Garden)'은 천리포수목원 내 총 7개의 관리 지역 중 첫 번째 정원으로 2009년 3월 1일부터 개방했다. 밀러 가든은 바다와 인접해 사계절 푸른빛을 머금은 곰솔 사이로 탁 트인 서해 바다를 볼 수 있다. 특히 수목원 내 노을쉼터나 바람의 언덕은 아름다운 낙조를 감상하기에 좋은 명당으로 꼽힌다.
여행 정보: 태안은 서울시청에서 차로 2시간 반쯤 걸린다. 신두리해안사구나 천리포수목원 등 주요 볼거리는 읍내서 30분이면 닿는다. 또 군청 근처에는 백화산이 있다. 읍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산인데 높이가 284m밖에 되지 않지만 맑은 날에는 안면도까지 보인다. 백화산 중턱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마애불이 있다. 태안 동문리 마애삼존불로 국보 제307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