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GM이 17일 창립 15주년을 맞는다. 생일이지만 분위기는 우울하다. 창립일 전후로 생일잔치를 열어 대대적 마케팅을 펼쳤던 5년 전과는 정반대다. 내수 실적이 '역대급 부진'에 빠진 가운데 노사문제 등 악재가 겹친 탓이다. 창립일을 앞두고 실현 가능한 내년 사업 계획도 세우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급기야 '한국 철수설' '구조 조정설'이 또다시 고개를 들면서 지난달 1일 공식 부임한 신임 카허 카젬 사장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월 9000대도 못 팔았다
15일 완성차 업계에 따르면 한국GM은 지난달 내수 시장에서 전년 대비 36.1% 감소한 8991대를 판매하는 데 그치며 판매량이 9000대 밑으로 하락했다.
한국GM의 월간 판매량이 1만 대 밑으로 떨어진 것은 지난해 1월 이후 1년 8개월 만의 일이다.
이 같은 부진 탓에 한국GM은 지난달 브랜드별 판매에서 쌍용차에 밀리며 4위에 주저앉았다.
올 9월까지 누적 판매량도 지난해 같은 기간 12만7990대를 기록했던 것과 비교해 19.9% 감소한 10만2504대에 그쳤다.
판매량이 신통치 않다 보니, 올해 8월까지 한국GM의 국내 자동차 시장점유율 역시 7.8%까지 떨어졌다. 이는 지난 2002년 한국GM 창립 이후 역대 최저 수준이다.
2006년, 2007년 10%를 웃돌고 작년까지만 해도 9.9% 수준을 유지했으나 올해 들어 상황이 크게 나빠졌다.
특히 카허 카젬 사장이 지난 9월 1일 위기 탈출을 위해 새롭게 취임했지만 눈에 띄는 성과는 나오지 않고 있다.
한국GM은 주력 차종의 경쟁력 약화와 최근 자동차 업계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라인업 노후화로 인해 판매 부진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실제 주력 차종인 말리부와 크루즈는 지난 9월 각각 2190대와 417대 판매에 그쳤다. 모두 전년 동월 대비 44.8%, 45.3% 감소한 수치다. 여기에 캡티바와 올란도, 트랙스 등 SUV 모델 3종을 합쳐 총 판매량이 1946대 수준이다.
올해 추가로 내놓을 신차가 더 이상 없다는 점은 한국GM의 더 큰 문제다. 가장 이른 시일 내에 출시 가능성이 점쳐지는 캡티바의 후속 모델 '에퀴녹스'는 빨라야 내년에나 등판할 수 있다. 볼륨 모델 부재에 따른 내수 부진이 장기화될 경우 글로벌GM의 한국 철수설이 계속해서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노사 갈등까지…위기감 고조
노사 간 충돌은 갈 길 바쁜 한국GM의 발목을 잡고 있다.
한국GM은 올해 임금 및 단체협약에서 난항을 겪고 있다. 노사는 지난 7월 24일까지 총 18차례에 걸쳐 임금 교섭을 벌였지만, 좀처럼 양측의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노조는 기본급 15만4883원 인상, 통상임금의 500% 성과급 지급 등을 요구하고 있지만 사측은 기본급 5만원 인상, 성과·격려금 1050만원 지급 등을 제시한 상태다.
더구나 오는 11월 중순이 돼서야 노조 신임 집행부 선거가 마무리될 예정이어서 노사 간 본격적인 협상 역시 그 이후로 늦춰질 가능성이 높다. 이에 일부에서는 한국GM의 올해 임단협이 해를 넘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한국GM의 내수 부진·노사 갈등 등 잇따른 악재는 GM 본사가 글로벌 시장 재편에 나서고 있는 시점과 맞물려 더 치명적이라는 평가다.
GM 본사는 지난 4일 해외사업 부문(GM인터내셔널)을 남미와 통합하고 총괄 임원에 배리 엥글 사장을 임명하는 등 글로벌 시장 재편에 나섰다.
업계에서는 이번 조직 개편이 사실상 한국GM이 포함돼 있던 GM인터내셔널을 해체한 것으로 보고 있다. GM은 올해 유럽·인도·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구조조정을 단행했으며 한국GM에 대해서도 조직 슬림화를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군다나 한국GM의 2대 주주인 산업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지분 매각 거부권'이 창립기념일인 17일 종료될 예정이어서 위기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날 이후 GM이 한국GM의 지분을 매각하고 한국 시장을 떠날 수 있다는 전망이 높아지고 있다.
대내외 악재가 겹치면서 한국GM은 올해 이렇다 할 창립기념 행사를 열지 않기로 했다. 창립일 전후로 대대적 행사를 열던 과거와는 대조적이다.
한 한국GM 직원은 "올해 창립기념일은 별도의 행사가 없는 것으로 안다"며 "과거에는 기념일 전후로 행사를 하곤 했는데 올해는 회사 사정이 나빠지면서 조용히 넘어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