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국민은행의 노사 갈등이 커지고 있다. 노조는 지난해와 올해 초 두 차례에 걸쳐 치러진 위원장 선거에서 사측이 조직적으로 개입했다며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다. 또 개인형 퇴직연금(IRP) 가입자 할당과 관련해서도 노사가 마찰을 빚고 있다.
"사측 선거 개입했다"…노조 녹취록 공개
24일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KB국민은행지부(이하 국민은행 노조)는 여의도 본점 앞에서 사측의 노조 위원장 선거 개입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난해 12월과 올해 3월 국민은행 노조는 두 차례에 걸쳐 노조 위원장 선거를 진행했다. 노조는 이 과정에서 사측이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노조를 만들기 위해 현 박홍배 위원장을 낙선시키려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운영에 개입했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노조 선거에서 박 위원장은 득표율 49%로 당선됐지만 선관위가 당선 무효를 결정하면서 논란을 빚었다. 이후 올해 다시 치러진 선거에서 선관위는 박 위원장의 후보 등록 무효를 결정했다.
이에 노조는 법원에 가처분 신청서를 냈고 선거 하루 전에 가처분 인용 결정이 나면서 박 위원장이 58%의 과반수 득표로 당선됐다.
노조는 사측 개입의 증거로 이오성 전 경영지원그룹 부행장이 전국 부점장 화상회의에서 지점장 등의 노조 선거 개입을 지시했다는 내용 등을 담은 녹취록을 다수 공개했다.
녹취록에 따르면 이 전 부행장은 "세 명의 부점장당 한 명이 선출되는 대의원 선거에 있어서 대다수 직원들의 의견을 대변할 수 있는, 그야말로 직원들의 올바른 대표를 선출해야 한다. 지역 본부장님들, 우리 협력 지점장들께서 이것이 우리 은행의 주요 현안을 해결하는 첩경이라고 생각하라"고 말했다.
노조 측은 "이는 명백한 선거 개입"이라고 주장했다.
노조 측은 "대의원 대회에서 선출된 선관위가 노조 선거를 직접 진행했고 박홍배 위원장에 대한 두 번의 등록 무효를 결정했다"며 "HR 본부장 등이 선관위원 후보 중 1인을 지지하라고 전달했다는 진술도 확보했다"고 말했다.
노조는 또 사측이 지점장을 통해 선거에 개입하고 있다는 내용, 첫 번째 선거 당선 무효 직전에 김진윤 선관위원장이 사측의 개입으로 인한 어려움을 호소하는 내용 등이 담긴 녹취록 5개를 공개했다.
녹취록에서 김 선관위원장은 "사측의 말을 자꾸 듣다가 만약에 당선 무효되면 안 된다. 상호 간 합의를 할 수 있으면 좋은데 사측이 개입돼서 못 한다"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일부 본점 부서와 지점에서는 비밀투표 원칙을 무시하고 부서장 등이 기표 행위를 지켜보는 가운데 공개투표가 이뤄졌다고 한다"며 "일련의 행위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 엄격히 금지하는 부당노동행위"라고 말했다.
국민은행 노조는 26일 고용노동부 서울남부지청에 사측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을 요구하는 진정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이에 국민은행 측은 "선거 개입과 관련한 주장에 대한 입장은 없다"며 "선거 기간에 특정 후보를 지지한다는 말을 한 것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사측 IRP 가입자 할당…노조 '밀어내기식' 반발
국민은행 노사는 IRP 가입자 모집과 관련해서도 갈등을 빚고 있다.
사측은 26일부터 IRP 가입 대상자가 자영업자와 공무원으로 확대됨에 따라 전 직원에게 가입자 유치를 독려하고 있다. 이에 노조는 사측이 직원들을 지나치게 압박하고 있다며 금감원에 특별감독을 요구했다.
노조 측은 "금감원이 시중은행 앞으로 IRP와 관련한 과당경쟁 자제를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지만 사측의 압박은 계속되고 있다"며 "현재 직원 개인에게 계좌 50개라는 실적을 할당하며 '밀어내기식' 상품 판매를 독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노조 측은 제2의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가 될 우려도 있다고 했다.
지난해 ISA는 불완전판매 등으로 논란이 된 바 있다. 금융위원회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시행된 ISA 계좌 중 여전히 남아 있는 계좌의 73%는 잔액 10만원 이하의 '깡통계좌'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은행 노사는 최근 임원급 교섭을 실시하며 여러 안건에 대한 이견을 좁혀 가고 있지만 이번 사안들로 인해 갈등이 장기화될 조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