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지난 12일(한국시간) 스위스 로잔에서 총회를 열고 미국 로스앤젤레스(LA)와 프랑스 파리를 2024년과 2028년 여름올림픽 개최지로 발표했다. IOC는 이날 2024 하계올림픽 개최에 나선 파리와 LA의 프레젠테이션 뒤 두 도시가 차례로 각각 2024, 2028 올림픽을 유치하는 안을 놓고 표결했다. 표결 결과에 따라 두 도시는 연이어 치러지는 두 번의 올림픽을 각각 나눠 개최하게 됐으며, 어느 쪽이 먼저 대회를 개최할지 그 순번은 추후 확정하도록 했다.
입후보 도시 두 곳을 모두 개최지로 선정한 것은 이례적인 결정이다. 그러나 IOC 입장에서는 '피치 못할 선택'이었다고 보는 시선도 많다. 올림픽 개최에 대한 부담으로 후보 도시들이 줄줄이 기권한 상황에서 둘 중 하나라도 놓치기 아쉬웠을 것이라는 얘기다.
실제로 IOC는 "LA와 파리 모두 올림픽 유치 경쟁에서 탈락하기 아까운 훌륭한 입후보 도시들"이라고 강조하며 두 도시가 차례로 올림픽을 개최할 수 있을 것이라 내비쳐 왔다. 그리고 당초 9월 13일 페루의 수도 리마에서 회원국 전체 비밀투표로 2024 올림픽 개최 도시를 결정하려던 일정도 앞당겨 치렀다.
◇ 누가 먼저 올림픽 열까
2020 도쿄올림픽에 이어 치러질 두 차례의 올림픽 개최지가 모두 결정된 상황에서 남은 것은 순번 문제뿐이다. 어떻게 보면 개최 여부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남아 있다고 볼 수 있다.
에릭 가세티 LA 시장은 이날 로잔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유년시절 내 고향에 다시 한 번 여름제전을 가져오고 싶다는 희망이 현실화돼 기쁘다"고 개최 결정을 반기는 동시에 "라이벌 파리와 7년 뒤 또는 11년 뒤 올림픽을 어떤 순서로 개최할지 상의해야 한다. 아직 모든 절차가 끝난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전반적인 분위기는 파리가 먼저 올림픽을 개최하는 쪽으로 흐르고 있다. 2024년이 마침 1924 파리올림픽 100주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상징성이 크기 때문이다. 또한 이번 유치전에 뛰어들 때부터 파리가 2024 올림픽 개최를 강력하게 희망한 점도 작용할 수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이날 IOC 총회에 직접 나서 올림픽 관련 프레젠테이션을 한 뒤 "우리는 그동안 세 번의 기회를 놓쳤다. 다시 네 번째 기회를 잃고 싶지는 않다"고 강조하며 2024 올림픽을 개최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파리는 1992년과 2008년, 2012년 올림픽 유치전에 뛰어들었으나 모두 고배를 든 바 있다.
LA 역시 7년 뒤인 2024년 개최를 바라는 마음이 크다. 그러나 분위기가 파리 쪽으로 유리하게 흘러가면서 여러 가지 손익계산을 고민하는 중이다. LA 입장에서는 2028 올림픽을 개최할 경우 당초 계획보다 예산이 크게 늘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는 부정적이지만 그만큼 IOC의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은 매력적이다. IOC는 연말까지 두 도시의 개최 순번을 확정 지을 예정이다.
◇ 올림픽 꺼리는 속사정
LA와 파리가 모두 개최지로 선정된 배경에는 올림픽 개최의 그림자가 있다.
이번 2024 올림픽 개최를 희망했던 후보 도시는 LA, 파리 두 곳만이 아니었다. 이탈리아 로마와 독일 함부르크, 헝가리 부다페스트, 미국 보스턴 등이 2024 올림픽 개최를 희망했다가 경제적 부담 때문에 줄줄이 기권을 선언했다. 올림픽 비대화로 인해 예산이 폭등하고 경제적 부담이 커진다는 이유로 국민들의 반대에 부딪힌 탓이다. 천문학적인 금액을 투자해 올림픽을 개최해도 남는 것은커녕 빚더미에 오르는 현실이 유치에 나섰던 도시들의 발목을 잡았다.
이처럼 올림픽의 경제적 효과는 심각한 마이너스 곡선을 그리고 있다. 2014 소치겨울올림픽 당시 러시아는 510억 달러(약 57조8000억원)를 퍼부었으나 적자를 면치 못했고,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도 60억 달러(약 6조7000억원)에 가까운 적자를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차기 올림픽 개최지인 일본 도쿄 역시 늘어나는 올림픽 개최 비용으로 인해 국내에서 잡음에 시달리는 중이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당초 미국의 단독 입후보지로 결정됐던 매사추세츠주의 주도 보스턴도 주민들의 반대로 유치 의사를 철회했다. LA는 보스턴이 기권한 자리를 대신해 유치에 나서 올림픽을 개최하게 된 셈이다.
상대적으로 인기가 높은 여름올림픽의 상황이 이렇다 보니 겨울올림픽은 유치 도시를 찾기가 한층 더 어렵다. 내년에 열리는 2018 평창겨울올림픽 이후 다음 대회가 또다시 아시아에서 열린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IOC는 균등한 올림픽 개최를 위해 대륙별 순환원칙을 세웠으나 2022 겨울올림픽 개최를 희망한 도시가 중국 베이징밖에 없어 무용지물이 됐다. 개최를 희망했던 스웨덴의 스톡홀롬과 폴란드 크라쿠프가 모두 유치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4년에 한 번 열리는 짧은 대회를 위해 '빚더미'에 오를 수는 없다는 '냉정한 현실' 앞에서 올림픽의 권위도 빛이 바래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