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제주 유나이티드 클럽하우스에서 만난 이창민(25)은 자신감 넘쳤다. 그라운드를 누빌 생각에 들뜬 표정이었다.
제주는 31일 일본 사이타마스타디움에서 우라와 레즈(일본)와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 원정경기를 벌인다. 1차전 홈경기에서 2-0으로 이긴 제주는 1골 차로 져도 구단 역사상 첫 8강 진출을 확정한다. 제주는 이번 시즌 챔피언스리그에 참가한 한국 팀(수원 삼성·FC 서울·울산 현대 이상 조별리그 탈락) 중 유일하게 16강에 진출해 'K리그의 자존심'으로 불리고 있다.
이창민은 "K리그를 대표해서 뛴다고 생각하니 책임감이 생긴다. 골을 넣어 팀을 승리로 이끌 것"이라고 각오를 밝혔다.
이창민은 올 시즌 제주의 에이스로 활약 중이다. 공격형 미드필더로 나서는 그는 날카로운 패스와 강력한 슈팅을 무기로 제주의 공격을 진두지휘한다. 덕분에 제주는 '1강' 전북 현대와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며 선두 싸움을 펼치고 있다. 1경기를 덜 치른 제주(승점 23·7승2무3패)는 현재 선두 전북(승점 25·7승4무2패)에 불과 승점 2점 차 뒤진 2위다.
거침없이 그라운드를 누비는 이창민의 별명은 '챔피언스리그의 사나이'다. 유독 챔피언스리그에서 많은 골을 터뜨렸기 때문이다. 그는 정규 리그 10경기에서 1골만 기록했지만 챔피언스리그 7경기에서는 3골을 터뜨렸다. 이창민은 스트라이커 마르셀로(32·브라질)와 함께 팀 내 챔피언스리그 득점 공동 1위에 올라 있다. 그가 우라와전을 벼르는 이유다.
이창민이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을 기대하는 이유는 또 있다. 경기를 치를 사이타마스타디움은 한일전 역사에 남을 '박지성 세리머니'가 탄생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2010년 이곳에서 열린 한일전 때 결승골을 넣은 박지성은 일본 관중석을 바라보며 산책하듯 달리는 세리머니를 펼쳤다. 당시 너무나 여유로운 박지성의 표정에 기가 눌린 일본 홈 관중석에는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이창민은 지난 삼일절에 벌어진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H조 2차전 감바 오사카 원정경기에서 호쾌한 중거리슛 골을 꽂아 넣은 뒤 '박지성 세리머니'를 재연한 적 있다. 이창민은 "사이타마에서 골을 넣어 보고 싶다는 생각은 늘 해 왔다. 박지성 선배님의 세리머니는 이미 한 번 했으니 더 기발하고 색다른 것을 준비해 득점 후 선보이겠다"고 예고했다.
이창민은 지독한 연습 벌레다. 그는 잠 많던 고교 시절 새벽 개인 운동을 하루도 거르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축구를 더 잘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졸린 눈을 비비면서 볼을 찼다. 이때 생긴 습관은 프로가 된 지금까지 이어졌다. 지금도 팀에서 가장 늦게까지 남아 개인 운동을 한다. 동료 사이에서는 "창민이를 찾으려면 헬스장을 가라'는 말이 생겼을 정도다.
이창민은 "아무리 힘든 훈련을 해도 체력 운동으로 마무리한다. 그럴 때마다 형들이 지나가면서 '저 축구 또라이 진짜 독하다'고 농담하는데 오히려 그 말에 희열을 느껴 조금이라도 더 하게 된다"며 웃었다.
이런 노력 덕에 최근 이창민은 생애 첫 태극마크도 달았다. 지난 22일 울리 슈틸리케(63·독일) 축구대표팀 감독이 발표한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 카타르와 8차전(6월 14일) 24명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다.
이창민은 "'골'과 소속팀 '챔피언스리그 8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겠다. 챔피언스리그의 좋은 기분을 그대로 안고 대표팀에 합류하는 것이 목표"라고 각오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