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 저 진짜 팬이에요. 영화 잘 봤어요. 악수 한 번만" 취중토크 장소를 섭외하는 과정에서 애초부터 떠들석한 자리를 마다하지 않은 배우 정만식(42)이다. 어차피 자신을 많이 못 알아봐 괜찮다면서 "다만 너무 시끄러우면 인터뷰에 방해되는 것 아니나"며 되려 기자의 취재 포인트를 걱정한 배려심이 돋보였다.
하지만 그의 겸손함이 무색할 정도로 저녁식사를 위해 식당을 찾은 손님들은 단번에 정만식을 알아보며 끊임없이 곁눈질을 했고, 20~30대 남성들에게 인기가 좋은 듯 여러 번의 악수와 사인·사진촬영 요청을 받아 눈길을 끌었다. 어느덧 많은 사람들이 알아보는 배우가 됐지만 그는 거리낌 없었다. 취기가 올라도 밝은 웃음으로 화답하는 매너가 빛났다.
"가족들도 제가 드라마·영화에 나올 줄은 몰랐다는데 저라고 상상 했을까요." 성격에서 비롯된 츤데레 입담은 명불허전이다. 액션 영화 준비를 위해 술을 자제하고 있다면서도 시원하게 소맥부터 만든 정만식은 홀로 소주 세 병을 홀짝 홀짝 마시며 기증전 아내사랑, 극단 후배들에 대한 애정을 표했다.
치열했던 20대, 힘들었던 30대, 지금의 아내를 만나 각성하게 된 순간까지 과거부터 현재, 다가 올 미래를 훑은 정만식과의 인터뷰는 네 시간을 훌쩍 넘겨 마무리 됐다. JTBC 개국 이래 최고 오프닝 시청률을 기록한 '맨투맨'에 대한 향후 기대치와 개봉을 앞두고 있는 영화 '대장 김창수' '군함도'에 대한 스포일러는 깜짝 선물.
특히 연극배우 시절, 집 없이 연습실에서 동거동락한 조진웅과 다시 만나 호흡한 '대장 김창수'는 정만식에게 꽤나 의미있는 작품으로 남을 전망이다. "우리 진웅이가 꼭 남우주연상을 탔으면 좋겠다"며 본인은 죽을 때까지 주연을 하지 않겠다는 고백은 현재 정만식이 갖고 있는 고민이자 진심이다.
아내가 차려준 생일상을 '대장 김창수' 배우들과 함께 먹었다며 사진 자랑을 빼놓지 않았고, '대장 김창수' 개봉 때 꼭 다시 인터뷰 하자는 약속도 여러 번 강조했다. 그는 "비중은 상관없다. 이 시대에 필요한 이야기 안에서 연기하고 싶다"며 막잔을 기울였다.
※인터뷰①에서 이어집니다.
- 고마운 사람을 세 분만 꼽아주실 수 있나요. "세 명? 너무 많은데?(웃음) 지금 이 순간, 이렇게 나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시작점부터 생각해 보자면 잠시 연극을 안 하고 쉴 때 다시 연극 하라고, 돈 벌지 말라고 했던 우리 엄마가 있죠. 그리고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굉장히 많이 생각하고 고민하면서 우연치 않게 찾아간 어느 극단에서 만난 대표님이 계세요. '너 짐승 아니야. 사람이야'라고 말해주신 분이죠. 보통의 배우들이 대학을 다니면서 배웠을 것들을 전 극단 대표님을 통해 배웠어요. 엄마가 날 만들었고, 사람의 시작을 극단에서 했다면 완성 단계까지 올라오게 해 주신 분이 바로 와이프죠."
- 많은 연예인 분들이 나로 인해 가족들이 불편함을 겪을 때 힘들다고 하시더라고요. "누나들이 어디가서 이야기 하지 말라고 했는데 해도 돼요.(웃음) 큰 누나가 '야, 배우 정만식 때문에 성질도 못내고 살잖아. 욕 한 번 딱 했어야 하는데 겁나 참고 살어'라고 한 적이 있어요. 그래서 '참지마! 해!'라고 했더니 '이상한 이야기 나오면 어떡해'라고 하더라고요. 겉으로는 '그러게 왜 내가 동생이라고 이야기를 했어'라면서 뻔뻔하게 구는데 속으로는 많이 미안해요. 결국 나 잘 되라고, 내가 신경쓸까봐 하는 말인걸 아니까요."
- 연기자의 길로 들어서게 만든 분들이 가족이잖아요. "맞아요. 그래서 그런 말도 해요. '내가 이렇게 될 줄 몰랐냐. 사람들이 알아 볼 줄 몰랐냐. 평생 연극만 할 줄 알았냐'고요.(웃음) 그럴 땐 '이렇게 피곤할 줄 몰랐지'라고 한탄하죠. 우리 작은 매형 거래처 분들도 저에 대해 언급하신 적이 있나봐요. 우리 매형이 소심한 벌교 사나이인데 '얼굴도 잘 못 봐요. 처남 힘들어요'라면서 알아서 막아 줬대요. 티격태격해도 가족이라고, 가족들과는 파이팅 있게 잘 지내요."
- 배우 정만식으로 연기를 하면서 고마운 분들도 있었겠죠. "배우로서 말하자면 매니저도 있지만 작품을 함께 한 수 많은 선배들, 감독님들이 계실 거예요. 류승완 감독님, 김성수 감독님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고, 사나이픽처스 한재덕 대표님은 제가 어려울 때마다 늘 관심과 애정을 주시는 분이죠. 저를 다양하게 움직이게 해주시고 조력해 주시는 분이세요. '만식이는 그냥 하면 돼!'라는 신뢰까지도요."
- 다시 가족 이야기를 하면 장모님은 복덩어리라 부르신다구요. "저는 장모님의 복덩어리, 아내는 우리 엄마의 복덩어리죠. 똑같이 해요. 제 입장에서는 귀하고 멋진 딸 주신 것도 감사한데 저까지 예뻐해 주시니까 더할나위 없죠. 동서들이 그래요. '형님은 정말 잘 하시는 것 같아요.' 그럼 '너도 그렇게 해 임마!' 라고 대꾸하죠. 힘들지 않아요. 힘들 것 없어요."
- 연애 하실 땐 어떤 스타일이었나요. "솔직히 결혼 전에는 과할 정도로 격했어요. 많이 거칠었죠. 사람들은 '만식이 매력이잖아' 하는데 아니에요. 더럽게 살았어요.(웃음) 연애를 하면서 저를 되찾게 된 것 같아요. 또 다른 내가 아니라 원래 있던 나인데 잊은 채, 모른 채. 아니다. 채가 아니라 척이네요. 잊은 척, 모른 척 하면서 살다가 와이프가 '예쁘다, 귀엽다' 칭찬해 주니까 내가 감춰둔 나를 다시 찾아낸 것 같아요."
- '이 사람과 결혼 할 것 같다'는 느낌이 왔나요. "연애 할 때 이미 결혼 생각을 하고 있었죠. 사랑도 타이밍이 중요한데 아내가 먼저 '우리 어떻게 할 거예요? 우리 관계는 뭔가요. 묘해요. 친구인지 아닌지.'라고 물었어요. '연애하자!'라는 말 없이 자연스럽게 만나게 됐거든요. 보통 남자들은 그런 질문을 받으면 뭐라고 해요? 제가 알기로는 대부분 '나 너 좋아해. 우리 서로 좋아하잖아. 왜 지금 문제있어?'라던가 '연인같이 친구같이 잘 지내잖아. 근데 연인에 가까워'라고 한대요. 제일 양아치가 '내 마음 알잖아'라는 답변이죠. 쓰레기예요. 하하."
- 본인은 뭐라고 답하셨나요. "저도 100점은 아닐거예요. 근데 그 질문은 분명한 의도를 품고 있는거잖아요. 일단 잠깐 시간을 달라고 했어요. 그리고 한 시간 정도 생각한 후 '결혼합시다'라고 말했죠."
- 그렇게 프러포즈 하셨어요? "에이, 프러포즈는 아니예요. 그걸 프러포즈라고 하면 전 마누라한테 혼나요. 일반 상해치사 정도에 속할 수 있는 사고죠. 물론 프러포즈를 따로 하지는 않았지만.(웃음) 그 말을 할 때 전 정말 많이 떨렸고 설렜고 당연한 진심이었다고 자신할 수 있어요. 이후 결혼까지 자연스럽게 진행 됐죠."
- 흔히 말하는 결혼반대는 없었나봐요. "당시 '드라마의 제왕'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장인어른이 드라마를 좋아 하신다길래 아내에게 은근히 시청을 권유했어요. '보라고 좀 해 봐요'라고. 드라마가 끝난 후에 인사를 드렸죠. 솔직함이 통했던 것 같아요. 아버님이 '초반에 나오다가 후반에 안 나오더구만'이라고 하시길래 '네. 작가가 그렇게 써서요'라고 답했고, '연애 하고 있는건가. 결혼 준비는'이라는 질문에는 '전혀 안 됐습니다. 지금 270만원 있습니다'라고 했고요. 당연히 당황하셨죠. 근데 또 웃으셨어요. 그 날 술잔만 여러 번 기울였던 것 같네요. 하하."
- 그래도 자신감을 보였으니 믿어주셨던 것 아닐까요. "맞아요. 이상하게 자신이 없지는 않았어요. '준비되면 말씀 드리겠습니다'라고 했고 '애 엄마가 배우라고 해서 탐탁치 않게 생각해'라고 하시길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딸을 가져도 저한테는 안 보낼 것 같습니다'라고 했거든요. 하지만 전 아내를 만나 정말 많이 변했고, 그 변화와 진심을 보여드리려 했어요. 좋게 봐 주신 것 같아요."
- 결혼 준비가 만만치는 않았을 것 같아요. "곧바로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죠. 돈도 없으면서 성격상 월세·전세는 싫었어요. 내가 집 주인이고 싶었죠. 터치 안 받는.(웃음) 와이프도 '꾸려가면서 살자'고 동조해 줬어요. 실존주의라고 해야 할까요? 어떤 좋은 현실을 맞이하는 것이 중요한게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을 좋아하시는 분이라. 사고가 당차세요. '무리하지 마세요'라고 했지만 그런 아내를 보니까 살짝 무리하고 싶더라고요. 경매로 괜찮은 가격에 집 장만을 할 수 있었어요. 소박하면서 풍요롭게 시작해야 했다고 할까요. 행복함이 컸어요."
- 부모님 반응은 어땠나요. "혼수 준비를 하면서 많이 부딪힌다고 하잖아요? 초장에 제가 먼저 말했어요. 아무것도 안 할거니까 기대하지 말고 말하지 말라고. 한 마디라도 하면 배우고 뭐고 다 접고 외국으로 간다고, 일본가서 살거라고 했죠. 제가 괜히 그냥 선수친거죠.(웃음)
- 아내 분도 일본에서 배우 생활을 하셨죠. "전 우리 아내가 배우로 활동했으면 좋겠고 배우로 빛 받았으면 좋겠어요. 그럴 능력이 충분히 있어요. 일본에서 18년동안 배우 생활을 했고, 일본 오사카 예술대학 외국인 여성 최초 박사가 된 분이에요. 아내가 정식으로 활동 한다면 제가 아내의 1호 팬이 되겠죠.(웃음)"
- 연극제에서 만나셨다구요. "결혼 후에 아내가 고백했죠. '결혼해서 말씀 드리는건데요. 처음에 무슨 짐승같은 사람이 와서 뭐라고 하나 했어요' 하하. 아내와는 밀양 연극제에서 처음 만났어요. 아내는 일본팀이었고, 제가 일본팀이 있는 모여 있는 곳에 찾아가 술자리를 권했죠. '저희 이야기 해야 하는데요' '하세요' '아니 아직 안 끝났다구요' '일본말로 할건데 제가 뭘 알아 듣겠어요'라는 식의 대화였어요.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나 했을 거예요."
- 경제권은 아내에게 있나요. "다. 전부 다 관리하시고. 전 카드 한 장으로 생활하죠. 카드 한도가 꽤 있거든요. 근데 많이 쓰면 떨려요. '아씨, 큰일 났네. 어떻게 말하지?' 싶어요. 줄인다고 줄이는데 후배들 만나고 하다 보면 쉽지 않더라고요."
- 그래도 비상금은 챙길 것 같은데. "말하면 비상금이 아니죠.(웃음) 원래는 드라마 재방송비·해외송출비 등이 따로 들어왔거든요. 그게 은근 쏠쏠해요. 나름 비상금이자 용돈으로 썼는데 그것까지 아내에게 다 말했어요. 말하고 나서 얼마 안 있다가 해외송출비가 들어왔다고 문자가 왔더라구요. '아! 이거까지 먹을껄!' 했죠. 하하. 지금도 문자는 와요. 눈만 즐겁고 만지지는 못하죠. 그럴 때마다 아내는 제철음식을 식탁에 올려줘요. 그거면 됐죠 뭐."
- 이벤트도 자주 하나요. "아내 생일이 11월 초, 결혼기념일이 12월 말이에요. 둘 다 챙기려면 어떤 이벤트 회사도 힘들거예요. 타이밍을 잘 맞추려고 하죠. 그래봐야 1년에 한 번, 두 번 밖에 없는 날인데 그냥 지나가는건 말이 안 되잖아요. 그렇다고 제가 제2의 최수종도 아니고. 하하. 우리 와이프도 1년에 한 번 생일상을 차려줘요. 지난 생일 땐 '대장 김창수' 팀을 초대해 함께 식사 했어요. (조)진웅이가 깜짝 놀라더라고요. 뿌듯했죠."
- 어떤 인터뷰에서건 기승전'아내' 이야기로 끝나는 것 같아요. "저도 몰랐어요. 그 만큼 제 삶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고, 그 만큼 큰 비중을 차지하고, 그 이상으로 제가 살아가는 원동력이라는 거겠죠. 거기에 목동 어머니(장모), 수원 엄마 이야기까지 털어 놓는 저를 보면서 '내가 변했구나'라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됐죠."
- 2세도 기다려질 것 같아요. "두 가지 생각이 있어요. '내가 부모가 될 준비가 됐나, 내 아이를 낳아도 되는 세상인가.' 제가 준비가 됐다면 하늘에서 점지해 주실 것이라 믿어요. 그 전까지 스스로에게 성심을 다 해아 할 것 같고, 한 번씩 저를 되돌아 봐야 할 것 같고요. 그리고 사회가 조금 더 안정적이 되면 낳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아이에게는 좋은 세상만 보여주고 싶은 것이 모든 부모들의 마음일 거예요. 저 역시 마찬가지죠. 그런 세상이 되길 희망합니다. 될 것 같아요." >>③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