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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의 갓모닝] 595. 알파인 마을의 부자
미국 포브스가 선정한 10대 부촌 마을 중 하나인 뉴저지주 알파인. 850여 채의 궁전을 연상케 하는 대저택이 있는 이 마을에는 번지가 없기로 유명하다. 외부인의 출입을 철저히 막기 위해서다. 또 사람이 들어갈 때도 사설 경비 업체의 삼엄한 감시를 받아야 한다.
허드슨 강변에 위치한 알파인은 뉴욕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아름다운 마을이다. 그러나 낮이건 밤이건 동네를 돌아다니는 사람은 없다. 간혹 한국인 재계 거물들이 저택을 소유하고 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철저한 비밀로 돼 있어 누구인지 확인할 수 없다.
이 철옹성 같은 마을에 나는 종종 초대받아 가곤 했다. 내가 알파인에 간다고 하면 주위 사람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어 봤다. “누가 초대해서 가시는 겁니까?” 아무리 부자라 해도 웬만해서는 알파인 저택에 함부로 초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미국에 있을 때 알파인에 거주하는 부자들과 친분을 맺은 적이 있다. 하루는 세계적인 커피 전문점 체인사업을 하는 거부의 아들로부터 초대를 받고 알파인에 가게 됐다. 저택은 성에 가까웠다. 방은 수십 개, 수영장도 여러 개였다. “너 정말 부자구나”라고 감탄했더니 그는 쑥스러워 하며 “내가 부자가 아니라 우리 아버지가 부자인 겁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아버지 재산과 자기 재산을 분명히 구별했다. “미국에서는 열여덟 살 때 집을 떠납니다. 공부하던 중 잠깐 집에 들른 겁니다. 이 집은 아버지 집일 뿐입니다. 내 집은 정말 작아요.” 일본도 마찬가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부분 독립을 한다. 스무 살이 넘어서까지 부모에게 의존하면 사회적 낙오자로 손가락질을 받는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떤가. 나이에 상관없이 자식은 부모의 도움을 받으려고 한다. 또 부모도 자식이라면 무조건 도와주려고 한다. 특히 대부분의 재벌들은 자신의 부를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재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다.
대를 물릴 것과 물리지 않을 것이 있다. 그중 재산만은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았으면 한다. 한국 재벌들은 대부분 자식에게 경영을 맡긴다. 그래서 재벌 2세, 3세, 이제는 4세까지 등장하고 있다. 간혹 경영을 잘 못해 교도소에 가도 가족 경영 중심 체제를 유지하려 안간힘을 쓴다.
재벌의 자녀들이 기업을 잘 운영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기업도 있다. 한때 기업을 개혁한다며 전문 경영인을 두곤 했지만 사주가 전문 경영인이 마음에 안 들 때에는 주식을 이용해 경영권을 빼앗는 일이 많다. 그러다 보니 기업의 신뢰는 바닥으로 추락했고 재벌 자녀들은 여전히 교도소를 들락거리고 있다.
우리는 유한양행의 기업 정신을 기억할 것이다. 창업자 유일한 박사는 전문 경영인에게 기업의 경영을 맡기고 자신의 주식은 모두 정리해 사회에 환원했으며 우리나라 최초로 종업원 지주제를 실시했다. 그 분의 정신을 이어받아 한국의 재벌들도 주식을 소유하는 것과 기업을 경영하는 일을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구명시식으로 삼대를 가는 거지 없고, 부자가 삼대 가는 것이 어려움을 확인했다. 국가가 위태로울 때일수록 가진 사람은 더욱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국민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hooam.com/ 인터넷신문 whoi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