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번 타자의 타석 결과가 나오기 무섭게 4번 타자를 부르는 울림이 경기장을 메운다. "대~호, 대~호".
마치 메이저리그 통산 601세이브에 빛나는 트레버 호프만(2011년 1월 은퇴)의 등장 음악, '지옥의 종소리'를 떠오르게 한다. 상대는 긴장하고, 팬들은 승리를 의심하지 않는다. 이대호(35·롯데)를 부르는 소리에도 같은 기운이 전해진다. 그는 KBO 리그에 복귀한 14경기에서 매 타석 기대감을 줬다. 강렬하고 극적이다.
이대호는 16일까지 나선 14경기에서 타율 0.460·5홈런·12타점·14득점·출루율 0.557·장타율 0.800을 기록했다. 타율·홈런·득점·OPS(출루율+장타율)에서 모두 리그 1위다.
이대호는 일본과 미국 무대에서 4년 동안 뛰며 풍부한 경험을 쌓았다. 이미 리그를 평정했던 타자가 더 성숙해진 기량으로 돌아왔다. 과거에도 해외 무대 도전을 마치고 복귀한 타자들이 있었다. KBO 리그 최고 스타였던 이승엽(삼성), 이병규(은퇴), 김태균(한화), 이범호(KIA)가 대표적이다. 대체로 시즌 초반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2012년 일본 무대에서 복귀한 이승엽은 14경기에서 타율 0.385·4홈런·9타점, 같은 해 돌아온 김태균도 타율 0.472를 기록했다. 2010년 소프트뱅크에서 1년을 뛰고, 이듬해 KIA로 이적한 이범호도 같은 경기 수에서 타율 0.314·16타점을 올렸다.
하지만 이대호는 조금 더 특별하다. 홈런과 타점의 생산 타이밍이 매우 극적이다. 그는 KBO 리그 복귀전이던 3월 31일 마산 NC전에서 4타수 3안타를 기록했다. 롯데 타선은 경기 초반 메이저리그 출신 NC 선발 제프 맨쉽 공략에 실패했다. 하지만 이대호가 4회초 사구와 진루타로 만든 2사 2루 기회에서 중전 적시타를 때려 냈다. 팀의 첫 안타이자 타점이었다.
NC전 15연패 기로에서도 이대호가 불씨를 살렸다. 롯데가 4-6으로 뒤진 9회초, 선두 타자로 나서 상대 마무리 투수 임창민으로부터 좌월 솔로홈런을 때려 냈다. 한 점 차로 추격하며 상대를 압박했다. 팀은 5-6으로 패했지만 이대호는 화려하게 복귀했다. 롯데는 2차전에서 3-0으로 승리하며 NC전 연패를 끊었고, 3차전에서도 12-4로 승리하며 약 2년 만에 상대전 우세 시리즈를 거뒀다. '이대호 효과'가 컸다.
4월 4일 넥센과 홈 개막전에서는 오랜 시간 자신을 기다린 롯데 팬들에게 더없이 좋은 선물을 안겼다. 이대호는 첫 타석에 들어서기 전 1루 측 홈 관중을 향해 헬멧을 벗고 목례를 했다. 함성이 커졌다. 그리고 불과 상대 투수 최원태의 세 번째 공에 구장 내 데시벨은 배가됐다. 이대호가 친 타구가 포물선을 그린 뒤 좌측 담장을 넘겼다. 사직 구장 복귀 첫 타석에서 드라마 같은 홈런을 때려 냈다.
4번 타자 역할도 제대로 해내고 있다. 시즌 1·2호 홈런으로 자신의 복귀를 알렸다면, 이후 홈런 3개는 경기 승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9일 사직 LG전에선 5-1로 앞선 6회말 상대 투수 최동환으로부터 좌월 솔로포를 때려 냈다. 점수 차를 5점으로 벌리며 7-1 승리를 이끌었다. 시즌 4호와 5호 홈런은 13일 인천 SK전에서 나왔다. 롯데는 전날 경기에서 끝내기 패배를 당하며 시즌 첫 연패 기로에 있었다. 이대호는 3회 8-8 동점에서 SK 문광은의 커브를 받아쳐 역전 솔로홈런을 때려 냈다.
패색이 짙던 순간에도 그가 나섰다. 재역전을 허용하며 9-10으로 뒤진 9회초 2사에서 SK 마무리 투수 서진용의 몸 쪽 공을 당겨 쳐 다시 좌측 아치를 그렸다. 양측 벤치와 관중석의 희비가 엇갈렸다. 중계 해설자는 그를 향해 "사람이 아니다. 저런 선수가 다 있느냐"고 했다. 과장이 아니었다. 패했지만 SK의 끝내기 승리만큼이나 이대호가 남긴 여운이 짙었다. 이대호는 NC전 3차전이 끝난 뒤 "홈런 스윙보다 출루에 중점을 두는 스윙을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필요한 순간엔 누구보다 든든한 해결사였다.
이승엽과의 시즌 첫 맞대결로 기대를 모은 삼성과 주말 3연전 클래식 시리즈에서도 이대호의 활약은 이어졌다. 1차전이던 14일엔 5-5 동점이던 7회말 1사 1·2루에서 바뀐 투수 김승현을 상대로 좌전 적시타를 때려 냈다. 이날 경기 결승타였다. 2차전에서도 0-1으로 뒤진 1회 동점 적시타, 5-4 한 점 차로 쫓긴 8회 1사 1·3루에서 적시타를 치며 쐐기를 박으며 우세 시리즈(2승1패)를 이끌었다. 3경기에서 12타수 5안타 2타점을 기록한 이승엽과 멋진 승부를 펼쳤다.
0-3으로 패한 16일에도 자기 몫은 했다. 0-0으로 맞선 4회 2사 1루에서 좌전 안타를 치며 선취점 기회를 만들었다. 득점에는 실패했지만, '팀을 위한 스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