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까지 벚꽃이 만개했지만 북쪽 땅 경기도 연천의 봄은 이제부터 서서히 기지개를 켜고 있다. 한걸음 한걸음 올라오고 있었지만 길가의 산수유도 노랗게 피었고, 군청 앞 목련도 하얀 꽃망울을 터뜨렸다. 더딜지언정 연천에도 봄은 이미 와 있었다. 다만 꽃으로 물든 남녘의 봄은 눈으로 감상하는 것이라면 연천의 봄은 직접 자연 속으로 걸어 들어가서 몸으로 느끼는 것이었다.
연천의 역사가 담긴 길-평화누리길 11코스
경기도에는 평화누리길이라는 것이 있다. DMZ 접경지역인 김포에서 연천까지 이어지는데 총 12개 구간 중 연천에는 10~12코스가 지나간다.
그중 가장 인기 있는 길이 11구간이다. 산수유·개나리·진달래 등이 이제야 살포시 고개를 내밀고 있는 평화누리길 11코스는 숭의전에서 출발해 당포성~주상절리~황공천~군남홍수조절지까지 19.2㎞에 이른다. 무난한 길이어서 약 5시간이면 다 걸을 수 있다.
평화누리길 11코스는 연천의 역사를 오롯이 담고 있는 길이다. 수십만년전 용암분출로 인해 만들어진 연천의 지형을 이해할 수 있고,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의 역사도 공부할 수 있다. 게다가 근대사의 비극인 한국전쟁과 얽힌 이야기도 길에서 만날 수 있어서다.
출발점인 숭의전은 임진강이 굽이쳐 흐르는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아미산 중턱에 있다. 숭의전은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을 비롯해서 현종·문종·원종 등 4명의 고려왕과 정몽주·서희·강감찬 등 고려의 충신 16명의 위폐를 모신 사당이다.
그런데 이 사당을 지으라고 명을 내린 사람이 아이러니하게도 고려를 무너뜨린 조선 태조 이성계이다. 처음에는 8명의 고려왕을 모셨지만 문종이 "고려왕을 제사지내도록하는 것은 합당치 않다"는 신하들의 간청에 4명의 왕만 모시게 됐다고 한다.
숭의전을 출발해 아스팥트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왼쪽으로 'UN군 화장장'이라는 이정표가 나온다. 100m쯤 길을 벗어나서 들어가면 무너진 건물과 굴뚝이 보인다. 한국전쟁 당시인 1952년 만들어진 유엔군 전사자들을 화장하던 곳이다.
연천군청 관계자는 "연천에는 한국전쟁 당시 격전지가 많다"며 "그만큼 전사자들이 많았는데 전사한 유엔군 장병들이 이곳에서 한줌의 재로 변해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10여 분 더 걸어가면 임진강변으로 죽 늘어서 연천의 자랑거리인 주상절리가 길게 뻗어 있다. 높이가 25m에 길이만 2㎞에 이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주상절리이다. 가을에는 담쟁이와 단풍나무가 붉게 물들어서 '임진적벽'이라고도 불린다. 봄에는 그 아름다움을 볼 수 없어 살짝 아쉬웠다.
자연을 만끽하다-한탄강 오토캠핑장
겨우내 얼었던 땅이 풀리자 한탄강변에 자리잡은 한탄강 오토캠핑장도 캠핑족으로 붐비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시설을 자랑하는 오토캠핑장이다. 부지만 약 31만2000㎡, 약 9만평에 이를 만큼 크다.
입구에 들어서면 왼쪽으로 캐러번 27대가, 오른쪽으로는 16대의 캐빈이 줄지어 서 있다. 여기에다 텐트를 칠 수 있는 강변 야영장 88개, 언덕 야영장 40개를 갖추고 있다. 이미 3월말부터 캠핑족이 몰리기 시작해서 주말에는 미리 예약해야만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그냥 텐트 한 동을 치면 3만원(주말기준)만 내면 된다. 하지만 최근에는 캐빈이나 캐러번을 이용하는 고객이 훨씬 많다는 것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3~4인용 캐러번은 주말 8만원, 7~8명이 들어갈 수 있는 캐빈하우스는 주말 14만원한다. 실내에 TV·냉장고·침대·부엌에다 샤워시설까지 갖추고 있어 편리하다.
한탄강 오토캠핑장은 놀거리가 많아서 더 인기다. 축구장과 풋살경기장, 족구장도 있다. 한탄강에서 오리배와 카약도 탈수 있고 루어 낚시도 가능하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을 데리고 온 가족 단위 이용객들이 많이 눈에 띈다.
오토캠핑장 바로 앞에는 경의선 한탄강역이 있다. 동두천에서 백마고지까지 다니는 통근열차가 선다. 옛 추억이 되살아나서 인지 의외로 나이 지긋한 이용객이 많다. 특히 지금 모든 열차는 전기로 움직이는데 이 열차는 디젤열차이다. 덜컹덜컹 느리게 움직이지만 지금은 사라진 완행열차의 소박했던 당시의 추억이 되살아 난다. 이용요금은 1000원이고 편도 1시간이면 백마고지역까지 갔다올 수 있어 재미삼아 타는 승객도 많다.
인근 연천역에는 1914년 서울과 원산을 오가던 경원선 개통 당시에 만들어졌던 급수탑이 그대로 남아 있다. 1967년까지 운행하던 증기기관차에 물을 공급하던 시설이다. 급수탑 곳곳에는 한국전쟁 때의 흔적인 총탄 자국이 남아 있어 당시의 상황을 말해주는 듯 하다.
글·사진=이석희 기자 seri1997@joongang.co.kr
◇여행정보=서울시청에서 연천군청까지는 약 75㎞지만 차로 2시간이나 걸린다. 서울역에서 한탄강까지가는 DMZ기차(편도 9800원)는 약 1시간 40분 걸린다. 연천은 구석기 시대의 유적지가 많다. 사적 268호인 전곡리 유적지도 있고 선사시대의 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곡선사박물관도 있다. 031-839-2061(연천군 문화관광체육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