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박지성 세리머니'를 왜 했냐고요? 삼일절을 맞아 국민들을 통쾌하게 해 드리고 싶었거든요."
제주 유나이티드 미드필더 이창민(24)의 대답은 세리머니만큼이나 유쾌했다. 그는 지난 1일 일본 오사카 스이타경기장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H조 2차전에서 2골을 터뜨리며 제주의 4-1 대승을 이끌었다.
압권은 1-0으로 앞선 전반 46분 자신의 첫 골을 터뜨리고 난 뒤였다. 페널티 지역 정면에서 호쾌한 중거리슛을 꽂아 넣은 그는 무표정으로 산책하듯 유유히 그라운드를 가로질렀다. 한국 축구의 '레전드' 박지성(36)이 2010년 사이타마경기장에서 열린 한일전에서 결승골을 넣고 펼친 세리머니를 재연한 것이다. 스이타경기장 홈 관중석에는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이창민은 이 '한 방'으로 4일 K리그 개막을 앞두고 가장 '핫한' 선수가 됐다. 지난 2일 귀국 뒤 전화 인터뷰에 응한 그는 "제주 선수단을 위해 마중 나온 팬들로 공항을 가득 채우기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할 것"이라며 웃었다.
이창민은 올 시즌 제주 공격의 핵심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건 아니다. 지난 시즌 제주에 입단한 이창민은 주전으로 도약하는 데 1년 가까이 걸렸다. 운이 없었다. 지난 시즌 제주 미드필드진엔 실력은 물론 경험까지 풍부한 이근호(32)와 권순형(31), 송진형(30) 등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축구대표팀의 주전 미드필더로 뛸 만큼 실력을 인정받은 이창민이었지만 선배들의 노련미까지 넘어설 수는 없었다.
조성환(47) 제주 감독은 "(이)창민이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많이 한다. 실력이 좋고 열심히 하는데 경험 많은 선배들에게 밀려 출전 기회가 많지 않다"는 말을 자주했다.
기회는 시즌 막판인 작년 10월에 찾아왔다. 송진형이 알 샤리자(아랍에미리트)로 이적한 것이다. 당시 제주는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이 주어지는 3위 이내에 들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었다. 그때 정규 리그 4위 제주(승점 43)는 한 경기를 더 치른 3위 울산 현대(승점 48)에 승점 5점 뒤졌다.
이런 가운데 조 감독은 "송진형을 뛰어넘는 선수가 될 것"이라며 막내 이창민을 송진형의 대체자로 낙점했다. 이창민은 조 감독의 신뢰에 보답했다. 그가 공격을 이끈 제주는 남은 7경기에서 5승1무1패를 거두는 뒷심을 발휘하며 극적으로 3위를 탈환, 5년 만에 아시아 무대를 다시 밟았다.
조 감독은 "창민이가 올 시즌 공격에서 중책을 맡았다. 충분히 감당해 낼 능력이 있는 친구"라며 믿음을 보였다. 이창민은 "공격적인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장점을 최대한 살리겠다"며 쑥스러운 듯 웃었다.
이창민은 팀 동료들 사이에서 '축구 또라이'로 통한다.
무슨 일이든 "이만하면 됐다"고 말하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 일이 축구라면 눈이 돌아갈 만큼 더 강한 승부욕을 보인다. 잠 많던 고교 시절 새벽 개인 운동을 하루도 거른 적이 없다. 청소년 대표팀에서 반드시 주전을 차지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졸린 눈을 비비면서도 볼을 찼다. 이때 생긴 습관은 성인이 된 지금까지 이어졌다. 지금도 팀에서 가장 늦게까지 남아 개인 운동을 한다.
동료 미드필더 권순형은 "창민이는 헬스장에서 산다. 언제 가도 볼 수 있다"고 전했다. 이창민은 "아무리 힘든 훈련을 해도 체력 운동으로 마무리한다. 그럴 때마다 형들이 지나가면서 '저 축구 또라이 진짜 독하다'고 농담하는데 오히려 그 말에 희열을 느껴 조금이라도 더 하게 된다"며 웃었다. 이어 "승부욕이 발동되면 티가 나는가 보다. 같은 팀 형들이 '쟤 또 시작됐다. 또라이 모드 시작됐다'고 말한다"고 덧붙였다.
감바 오사카전에서 터진 장거리슛 역시 근성으로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 그는 '골키퍼가 나온 틈을 노려 슈팅을 시도하라'는 조 감독의 조언을 받아들여 고단한 팀 훈련이 끝난 뒤에도 홀로 슈팅 연습에 매달린 지 1년 만에 실전에서 성공했다. 이창민은 "축구에 올인해 올 시즌 동료들과 우승컵 하나는 들어 올리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인터뷰 말미에 이창민에게 올해 목표를 물었다.
"확실한 주전이라고 생각 안 해요. 한 경기 한 경기 최선을 다해 뛰어야죠. 그러면 연말 K리그 시상식에서 베스트11에 뽑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