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 트로이카 특집인터뷰-2편 고종수]①"끼와 실력 있는 선수들 해외로 유출…K리그 인기 추락 이유"
등록2017.03.02 06:00
1998년은 'K리그의 르네상스'로 불린다.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축구장에는 구름관중이 몰렸고, 언론 매체는 앞 다투어 축구 소식을 전했다. 그 중심에는 '앙팡테리블'이란 애칭으로 불렸던 고종수(39) 현 수원 삼성 코치가 있었다. 현역시절의 고종수는 "저돌적이고 창의적인 축구를 한다"고 평가받았다. 동시에 거침없는 언변과 쇼맨십으로 '반항아'라는 이미지를 얻었다. 그래서 일까. 소녀팬 사이에 큰 인기를 끌었다.
일간스포츠가 2017시즌 개막에 앞서 20년 전 K리그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1998 트로이카 이동국(38·전북 현대)-고종수-안정환(41·MBC 해설위원)을 차례로 만난다. 2편의 주인공 고종수 코치를 만나 'K리그의 황금기가 다시 오지 않는 이유'와 함께 '옛 추억'을 들었다.
◇소녀팬이 점령했던 1998년 K리그
-1998년은 K리그의 전성기였다.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소녀팬 300여 명이 팀 훈련을 보기 위해 매일 모여들었다. 언젠가 울산으로 원정을 갔는데 관중이 너무 많이 몰려서 경기가 시작됐는데도 입장을 다 하지 못했다. 구장 측에서 동서남북에 있는 운동장 문을 개방했더니 사람들이 그 문을 통해 그라운드까지 내려와 응원을 하는 바람에 경기가 중단됐다."
-당시 고종수의 인기는 어느 정도였나. "구단으로 보내오는 팬레터와 선물이 정말 많았다. 내 방에 놓을 수 없어서 구단 숙소에 있던 창고와 손님용 방까지 사용했다. 소녀팬이 나에게 준 삐삐(무선호출기)만 수 백여 개였다. 아마 나에게 연락을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밤에 자려고 하면 선물 받은 삐삐들이 한꺼번에 울리는 통에 잠을 못 잤다."
-안정환·이동국과 인기 경쟁은. "세 명의 매력이 모두 다르다고 생각했다. (이)동국이는 동정심을 자극하는 순수함과 풋풋함, (안)정환이 형은 만화에 나올 것 같은 잘생긴 외모로 인기를 끌었다. 나는 사실 잘생긴 편도 아니고 왜 인기가 있었는지 이해가 안 된다. 아마도 저돌적인 플레이를 좋아하지 않았나 싶다."
-솔직히 누가 제일 잘 나갔나. "음…. 98년 인기상을 누가 받았더라. 아마 나인 것 같은데.(웃음) 그거면 다 끝나는 거다. 경쟁은 없었다. 한때 아이돌 그룹 중에 HOT와 젝스키스가 굉장한 인기였는데, 그들처럼 우리도 팬을 나눠 가졌다."
-스포테이너의 선두주자였다. "외모 때문에 그런지 모델 쪽은 섭외가 없었다. 디자이너 앙드레김 선생님이 이동국과 안정환을 거론하며 '바디가 좋다'며 칭찬을 하셨다. 나에게는 '축구를 열심히 해 줘 감사하다'고만 했던 기억이 난다.(웃음) 뮤직비디오도 찍고 방송도 나가고 그랬다. 그때는 정말 순수하게 방송을 통해 색다른 팬서비스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일까. '너무 튄다'는 소리를 들었다. "머리도 노랗게 물들였었고. 솔직히 우리 정서에 안 맞는 행동을 많이 했다. 당시는 염색을 하면 '날라리'처럼 보고 그랬는데 (내 덕에) 지금은 그런 편견이 없다. 어릴 때 그런 행동을 해보니까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상담을 할 때 도움이 된다. 고기도 씹어 본 사람이 맛을 안다고 하지 않나."
◇오지 않는 르네상스를 기다리며
-자만하지는 않았나. "엄청난 부담감을 느꼈었다. 그래서 방황도 했었고. 소녀팬은 내가 볼만 잡으면 소리를 질러댔다. 언론 보도도 힘들었다. 나는 그 경기에 만족을 못했는데 '고종수가 완벽하게 했다'며 칭찬했다. 언론에 의해 내가 만들어진다고 해야 할까. 인터뷰를 할 때도 거침이 없이 속 이야기를 다 하다 보니 이미지가 '반항아'가 됐다."
-2017년 K리그는 98년과 비교해 인기와 명성이 식었다. "재능있고 스타성 있는 선수들을 해외 리그로 계속해서 빼앗긴다는 점에 있다. 어느 한 선수를 보려고 수원 삼성을 응원했는데 어느 날 중국으로 가버리면 경기장에 오겠는가. 다른 리그에서 뛰다가 은퇴 무렵에 국내로 복귀하면 전성기는 지나 있다. 여기에 독창적인 색깔이 있는 어린 선수들마저 잘 나오지 않고 있다."
-색깔있는 선수란. "과거에는 각자 잘하는 것이 뚜렷했다. 그런데 요즘은 조금씩 다 잘하려고 든다. 자신만의 개성이나 색깔이 사라진다. 자신만의 무기를 만들고 팬에게 어필해야 하는데 그게 안 된다. 하나같이 운동장에서 너무 착하기만 하고 열심히만 한다. 어쩌다 '끼'를 가진 선수들이 나오면 '골때린다'며 욕한다.'나를 보러 경기장에 오라'고 외칠 선수가 없다."
-언젠가 르네상스를 열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자신만의 색깔이 있는 선수가 돼주길 바란다. 그리고 하나 더. 남자의 의리는 감독님과 동료에게만 지켜야 한다. 젊을 때 인기를 얻으면 파리처럼 달라붙는 사람들이 생긴다. 이런 지인들과 어울리다가 귀한 시간과 피땀 흘려 모은 돈을 탕진하는 사례가 많다. 승부조작도 거기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