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발 좌익수 출장이 예상되는 가오궈후이(32)는 대만프로야구(CPBL)가 자랑하는 홈런 타자다. 2014년부터 3년 연속 홈런왕에 올랐다. 2015년엔 39홈런으로 CPBL 단일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을 세웠다. 지난해에도 34홈런으로 슈퍼스타 린즈셩과 함께 공동 홈런왕을 차지했다. 공인구의 반발력이 높아지며 홈런이 급증하는 CPBL이지만 가오궈후이의 장타력은 위협적이다.
역시 외야수인 뤄궈롱(28)은 지난해 CPBL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CPBL에서 골든글러브는 KBO 리그와 달리 수비상이다. 여기에 타격에서도 타율 0.312에 16홈런·74타점으로 만만찮은 공격력을 보였다. 당초 최종엔트리에는 없었지만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FA(프리에이전트) 계약을 한 양다이강이 대표팀 합류를 고사함에 따라 발탁됐다.
네 살 차이 형제. 그런데 성이 다르다. 형은 가오(高)씨며 동샐은 뤄(羅)씨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대만 인구는 국공내전 이후 본토에서 넘어온 외성인들과 원래 대만에서 터를 잡고 있던 내성인으로 나뉜다. 여기에 한족 계열이 아닌 원주민들도 있다. 이들 세 인구 집단은 복잡한 역사·정치적 관계로 얽혀 있다. 스포츠에서도 그렇다. 외성인 출신들은 본토에서부터 익숙한 축구와 농구를 선호했다. 대만에서 야구는 식민지 시절 일본에서 도입된 스포츠였다. 그래서 지금도 대만의 유명한 야구선수 중에는 내성인과 원주민 출신이 많다. 대만에서 야구가 최고 인기 스포츠가 된 계기는 1968년 홍예초등학교 선수가 주축이 된 소년팀이 일본 간사이 대표에 거둔 역사적인 승리 때문이다. 홍예초등학교 야구부에도 원주민 선수들이 많았다.
성이 다른 국가대표 형제는 대만 중동부 해안 도시 화롄 출생이다. 아버지는 객가인, 어머니는 원주민인 아메이족 출신이다. 형제는 모두 네 명. 가오궈후이가 첫째, 뤄궈롱이 셋째다. 4형제는 2001년까지는 아버지 성을 따라 가오씨를 썼다. 하지만 2002~2003년에 걸쳐 어머니 성으로 개명했다. 대만 정부는 원주민 어머니 성을 쓰는 자녀에겐 학비 감면 혜택을 주는 지원 정책을 펴고 있다. 본토에 뿌리를 둔 아버지의 성을 따를 경우 혜택이 없었다.
화롄은 일제시대부터 야구 역사가 깊은 곳이다. 4형제도 모두 야구를 좋아했다. 큰형 가오궈후이는 2006년 시애틀 매리너스와 계약하며 미국으로 떠났다. 이때 이름은 뤄궈후이. 지금도 메이저리그 공식 기록에 그의 이름은 '뤄궈후이'로 기재돼 있다. 상당한 유망주로 기대를 모았지만 더블 A를 끝으로 6시즌 동안의 메이저리그 도전을 접었다. 대만에 돌라온 뒤에는 다시 아버지의 성으로 돌아갔다. 맏형과 함께 막내도 성을 바꿨다. 하지만 둘째와 셋째는 아직 어머니의 성을 쓰고 있다.
둘째와 막내도 대만에서 프로야구 선수로 뛰고 있다. 둘째 뤄궈화(31)는 중신 슝디의 우완 투수다. 2009년 프로에 입문해 2011년부터 1군에서 구원투수로 뛰고 있다. 지난해엔 5경기 등판에 그치며 부진했다. WBC 대표팀 투수 궈뤄화(25)와는 동명이인이다. 막내 가오궈린(24)은 2015년 EDA에 입단해 지난해 처음 1군에 데뷔했다. 유격수로 46경기에 출장했다.
4형제를 길러 낸 아버지 가오상런도 야구선수 출신이다. 1971년부터 초등학교와 중학교 선수로 뛰었다. 학창 시절 야구선수였던 아버지 아래에서 아들 네 명이 모두 프로야구 선수가 됐다. 이 중 첫째와 셋째는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3월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뛴다.
가오궈후이는 중심타선에서 대만 대표팀의 타점을 책임진다. KBO 리그에서 두 번째로 홈런에 불리한 고척스카이돔에서 그가 홈런 파워를 입증할 수 있을지가 관심사다. 뤄궈롱은 스타팅 후보로 아직 꼽히지 않지만 외야 세 포지션을 모두 맡을 수 있는 수비력의 소유자다. 궈타이위안 대만 대표팀 감독이 경기를 풀어 나가는 데 도움이 되는 선수다.
가오씨네, 혹은 뤄씨네 가족엔 또 다른 스타 야구선수가 있다. 한때 콜로라도 로키스 소속으로 시속 160km를 던졌던 강속구 투수 차오진후이다. 잇따른 부상으로 메이저리그 6시즌 통산 5승에 그쳤지만, 그는 대만 출신 2호 메이저리거였다. 투수로는 첫 번째. 아메이족 원주민인 차오진후이는 4형제의 이종사촌 형이다. 그는 승부 조작 사건에 연루돼 2014년 대만 프로야구에서 영구 제명된 뒤 미국으로 돌아갔다. 2015, 2016년 LA 다저스에서 메이저리그 투수로 복귀해 7경기에 등판하는 데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