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순(46) KBS N 해설위원이 자신있게 말했다. "국내용에 머물지 않고 전세계를 향해 뻗어나갈 것"이라는 예상 속에는 깊은 자부심과 바람이 담겨있는 듯했다.
'괴물신인' 박지수(19·KB국민은행)가 위대한 비상을 시작했다. 박지수는 지난 3일 아산 이순신빙상장체육관에서 열린 삼성생명 2016~2017 여자프로농구 정규리그 아산 우리은행 위비와 경기에서 39분9초 동안 30득점 21리바운드 3어시스트 5블록을 기록하며 연장 2차전 끝에 팀 승리를 이끌었다.
여자 농구계 최강자인 우리은행을 상대로 거둔 짜릿한 승리보다 더욱 뜻 깊었던 것은 그가 세운 기록이었다. 박지수는 WKBL에서 역대 두 번째 기록에 해당하는 '30(득점)-20(리바운드)'를 달성하며 큰 박수를 받았다.
국내 1호 '30-20' 기록은 정은순 위원이 보유하고 있다. 정 위원은 삼성생명 시절 2000년 1월 10일 '2000겨울리그' 개막전에서 신세계를 상대로 '32득점 20리바운드 7어시스트 3스틸 5블록'을 기록한 바 있다. 박지수는 정 위원 이후 6235일 만에 의미 있는 기록을 작성했다.
정 위원은 5일 본지와 전화 통화에서 "나도 지난 3일 경기를 지켜봤다. '정은순에 이어 두 번째 30-20 기록이 나왔다'는 사실을 처음 알고나서 '아니, 내가 그렇게 농구를 잘했다는 말인가' 싶더라. 너무 오래 전이라 기억도 가물가물했다"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17년 전 일이니 그럴 만도 했다.
정 위원은 박지수가 무너진 여자농구를 일으켜 세울 '키우먼'으로 보고 있었다. 한국 여자농구의 국제적 위상은 최근 수년 사이 급격하게 추락했다. 1984 LA올림픽 은메달과 2000년 시드니올림픽 4위 등으로 성과를 냈지만 2004년 아테네 대회 12위를 시작으로 경쟁력이 크게 떨어졌다. 2012 런던올림픽에 이어 2016 리우 올림픽까지 2회 연속 본선무대 진출에 실패하면서 바닥을 쳤다. WKBL을 상징하는 '토종' 선수는 키워내지 못하고 첼시 리(28) 등 외국인 선수 귀화 작업을 하다가 된서리를 맞았다.
정 위원은 "박지수는 국내 1인자로 끝나지 않을 선수다. '우물 안 개구리'가 된 WKBL을 일으킬 인물"이라면서 "반드시 올림픽에 태극마크를 달고 나가서 한국이 아시아 정상 자리를 탈환하고 더 나아가 국민의 여자농구 사랑을 되찾아올 선수다"고 평가했다. 그는 "한국 여자농구계가 박지수라는 걸출한 재원이 있는 시기를 잘 활용해야 한다"는 당부도 덧붙였다.
박지수의 꿈은 미국여자프로농구인 WNBA 진출이다. 정 위원은 "지난 올스타전에서 외국인 선수와 함께 덩크슛을 꽂아 넣는 걸 봤다. 그런데 박지수의 폼이 용병보다 훨씬 낫더라"며 "배구계에 김연경(29·페네르바체 SK)이 월드스타로 군림하고 있다고 안다. 박지수는 여자농구계의 김연경과 같은 인물로 성장하게 될 것"이라고 고 힘줘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