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식 WBC 대표팀 감독과 코칭스태프는 4일 회의를 열고 WBC 엔트리 변경을 논의했다. 포수 포지션에 큰 변화가 생겼다. 당초 대표팀은 양의지(두산)-강민호(롯데) 체제로 운영될 게 유력했지만 강민호가 오른 무릎 외측부인대가 부분파열돼 교체가 불가피했다. 예비엔트리에 있던 이재원과 김태군(NC)이 후보군에 올랐고, 김태군이 최종엔트리에 발탁됐다. 김인식 감독은 "이재원은 무릎 연골 수술로 출전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재원이 수술을 받은 건 사실이다. 지난해 10월 30일 서울 건국대병원에서 왼 무릎 반월판 연골 수술을 받았다. 8월 중순 이 부위에 통증을 느꼈고, 불안요소를 확실하게 지우기 위해 수술을 선택했다. 삼성 박한이가 2016년 4월 받았던 수술과 비슷하다. 당시 박한이는 왼 무릎 반월판에 칼을 댔고, 수술부터 복귀까지 27일(4월19일~5월15일) 걸렸다. 이재원은 병원 측에서 "재활에 최소 2개월 정도가 필요할 것 같다"는 소견을 들었다. 무릎 부담이 큰 포수의 특성상 재활 기간이 길게 잡혔다.
이미 2개월이 지났다. 지금은 무릎에 큰 문제가 없다. 지난 2일부터 인천 SK 행복드림구장에 출·퇴근하면서 기술훈련에 들어갔다. 곧 티배팅도 시작한다. 오는 7일에는 날씨가 따뜻한 사이판으로 이동해 집중적으로 몸을 만들 계획까지 세워 놨다. 자비를 들여 해외훈련까지 계획했으니 수술했던 왼 무릎은 걸림돌이 아니다.
그렇다면 "무릎 수술로 WBC 출전이 어렵다"는 이야기는 왜 나온 걸까. 시간의 재구성이 필요하다. 당초 대표팀 합류가 유력했던 강민호는 3일 자기공명영상(MRI) 촬영 결과를 KBO에 전달해 '대회 출전 불가 방침' 의사를 전했다. 새로운 선수를 뽑아야했던 대표팀은 곧바로 조대현 트레이너가 박창민 SK 트레이너에 전화해 이재원의 무릎 상태를 물었다. 박 트레이너는 "대회 출전이 '가능하다, 아니다'를 말한 건 아니다"며 "선수 상태를 확인하지 못한 상황에서 확답을 하기는 어려웠다. 다만 1월말까지는 재활을 지속했으면 좋겠다, 기술훈련에 급하게 들어가면 무리가 생길 수 있다고 전했다"고 밝혔다.
SK는 조대현 대표팀 트레이너의 전화가 걸려온 3일 이재원의 무릎 상태를 100% 체크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이유가 있다. 박 트레이너는 "11월까지는 활동기간이라 재활팀에서 상태를 체크할 수 있었다. 하지만 12월은 팀이 관여할 수 없는 비활동기간이다. 11월 말 이후론 선수를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는 지난해 시즌 뒤부터 선수들의 비활동기간 야구장 훈련을 전면금지했다. '휴식'을 보장하기 위해 코치나 트레이너가 훈련에 개입하면 안 된다.
조대현 트레이너는 박창민 트레이너와의 통화 후 이재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재원은 "몸은 괜찮다. 출전할 수 있다"는 의사를 강력하게 전달했다. 혹시 몰라 문자도 남겼다. 조 트레이너는 이재원과의 통화 후 관련 보고서를 대표팀 코칭스태프에 올렸다. 그는 "통증이 사라졌기 때문에 1월 7일 사이판으로 가서 전지훈련을 할 것이라는 내용을 그대로 보고했다. 주관적인 견해를 넣기 힘든 사안이다. 기초재활이 끝나서 기술훈련에 들어간다는 것과 통증이 없다는 내용이었다"고 말했다.
김동수 WBC 배터리코치는 조 트레이너의 보고를 받고 김성갑 SK 수석코치와 통화했다. 트레이 힐만 신임 감독이 현재 한국에 없는 SK는 김 수석코치가 팀 훈련을 이끌고 있다. 결과적으로 김동수 코치와 김성갑 코치의 통화 이후 이재원은 예비엔트리에서 제외됐다. KBO 관계자는 "김성갑 코치가 '힘들 것 같다'고 이야기를 했다더라. 아무래도 문제가 있지 않겠냐고 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SK 트레이닝파트는 3일 통화 후 이재원의 무릎 상태를 정밀검진하기 위해 5일 강화에서 관련 절차를 밟을 계획이었다. 정밀검진 결과 없이 선수를 대표팀에 보낼 수 없었다. 박창민 트레이너는 "무릎 수술은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뛸 수 있다, 아니다'를 바로 판단하기 힘들다. 근력 차이를 비교해야 하는데, 수술한 왼 무릎과 수술 받지 않은 오른 무릎의 근력이 큰 차이가 없어야 한다. 20% 미만 편차가 나와야 하는데 테스트를 할 수 있는 기계가 강화에 있어서 데이터를 뽑아볼 계획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4일 최종엔트리 교체가 발표되면서 5일로 예정됐던 이재원의 무릎 상태 체크는 없던 일이 됐다. 이재원은 예비엔트리에서도 제외됐고, 이지영(삼성)과 박동원(넥센)이 예비엔트리에 포함됐다. KBO 관계자는 "SK에서 말한 '1월말까지는 재활을 지속했으면 좋겠다'는 게 (대회 출전이) 힘들다는 것 아닌가. 1월 말까지 재활이 필요하다고 하는 선수를 바로 데려갈 수 있을까. 감독님도 고민하다가 결정을 한 것 같다. 선수 말만 믿고 뽑는 건…"이라고 말했다.
WBC 대표팀에 포수는 두 명 뿐이다. 대표팀 입장에선 불확실성이 있는 선수를 선발하기 어렵다. 구단 입장도 마찬가지다. 문제가 생기면 책임 소재가 발생하며, 정규시즌 준비에도 차질이 생긴다. 하지만 아쉬움이 남는다. 강민호가 병원 소견서를 제출하고 최종엔트리 변경을 발표할 때까지 채 24시간이 안 되는 시간 동안 이재원의 예비엔트리 탈락이 확정됐다. 그 사이 수술 받은 왼 무릎에 대한 객관적인 의학적 자료는 검토되지 않았다. 다만 전화를 통한 확인만 거듭됐다.
여기에 이재원의 무릎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으면 좀 더 일찍 엔트리에서 제외하는 게 맞다. 아니면 4일 엔트리 발표 때 강민호 대체 선수는 발탁을 유보하고 정밀 재검토를 하는 게 필요했다. SK도 대회 출전과 관련해 이재원과 폭넓은 대화를 진행했어야 했다. "무릎에 문제 없다. 대회에 나가고 싶다"는 선수의 말은 공염불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