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터미팅 마지막 날에는 메이저리그의 또 다른 재미인 룰5 드래프트가 열린다. KBO에서도 현재 룰5 드래프트를 모티브로 2차 드래프트 제도를 시행해 선수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고 있다. 하지만 실제 룰5 드래프트의 방식은 KBO의 2차 드래프트와는 상당히 다르다. 룰5 드래프트는 간단히 말해서 메이저리그에 오랫동안 올라오고 있지 못하고 있는 마이너리그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는 제도이다. LG에서 kt로 이적한 이진영과 같은 선수를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룰5 드래프트를 통해서 구단은 거의 출혈 없이 젊은 선수를 데려올 수 있다. 메이저리그 길이 막힌 유망주 입장에서도 메이저리그 데뷔의 기회를 얻는다. 하지만 이 제도의 핵심은 1년 동안 25인 로스터에서 잠시라도 제외된다면 원 소속팀의 마이너리그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1시즌을 25명이라는 제한된 선수로 치러야 하는 메이저리그에서 한 자리를 미완의 선수에게 1년 내내 보장해야 한다는 건 굉장히 부담스럽다.
그래서 룰5 드래프트 성공사례는 극히 드물다. 그렇다보니 지명권을 아에 행사하지 않는 팀도 많다. 작년에도 30개 구단 중에서 11개의 구단만이 룰5 드래프트에서 선수를 지명했다. 하지만 열악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매년 룰5 드래프트를 통해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이 나오고 있다. 그 숫자가 많지 않더라도 말이다. 그렇다면 과연 얼마나 많은 선수가 룰5 드래프트로 메이저리그에 데뷔할까. 그리고 이 중에서 롱런하는 선수는 몇이나 될까?
룰5 드래프트 선수가 1년 동안 25인 로스터를 지키면서 메이저리그에서 살아 남을 확률은 대략 1/4 정도라고 한다. 2006~2015년 수치를 살펴보면 총 160명 선수가 룰5 드래프트에서 지명됐다. 이 중 서비스타임 1년을 꽉 채운 선수는 51명으로 31.9%다. 만이 메이저리그에서 살아남았다. 하지만 이 선수들이 장기적으로 메이저리그에 안착했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3년 전인 2013년 12월에 있었던 룰5 드래프트를 보자. 당시 지명된 9명 중에서 딱 3명만이 2014시즌에 메이저리그에서 1년을 모두 뛰고 새로운 팀에 정착했다. 그리고 2015시즌에도 메이저리그 경기를 뛴 선수는 콜로라도 로키스의 토미 케인리가 유일했다. 그 케인리마저도 시즌 중반에 양도선수로 지명돼 시카고 화이트삭스로 이적했다. 결국 3년 전의 룰5 드래프트 선수들 중에서 2년 이상의 커리어를 이어간 선수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마이너리그 전문지인 <베이스볼아메리카> 에 따르면 2008~2013년 룰5 드래프트 드래프티 중 25명이 새 팀에 안착을 했다. 이 중 메이저리그 첫 해보다 두 번째 해에 더 많은 경기를 소화한 선수는 겨우 14명에 불과했다. 그리고 카를로스 모나스테리오, 데이빗 패튼, 랜더 비어드는 룰5 드래프트에서 지명된 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메이저리그 경기장을 밟아본 시즌이 된 선수들이다. 대런 오데이(7.0 fWAR), 애버스 카브레라(4.1 fWAR) 정도가 2008년 이후 롱런에 성공한 선수다.
하지만 2년 전인 2014년 룰5 드래프트에서는 조금 다른 경향을 보였다. 2014년에는 총 14명의 선수가 룰5 드래프트에서 지명됐는데, 이 중 무려 11명의 선수가 1년의 서비스타임을 모두 채우고 새로운 팀의 정착에 성공했다. 물론 11명 모두 좋은 성적을 거둔 것은 아니지만 팀에 대한 기여도를 보더라도 다른 해와 비교하여 월등히 뛰어났다.
텍사스 레인저스에 지명된 델리노 드쉴즈는 주전 중견수로 활약하면서 25개의 도루로 팀에 기동력을 담당했다. 필라델피아 필리스에 지명된 오두벌 에레라는 3할에 가까운 타율과 뛰어난 중견수 수비로 9.9 UZR을 기록하며 공수에서 활약했다. 또한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의 마크 칸아는 16홈런 70타점으로 룰5 드래프트 출신으로서는 드문 장타력을 보였다. 뉴욕 메츠에 지명된 불펜투수 션 길마틴은 57.1 이닝, 2.67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불펜 한 자리를 차지했다. 이 4명의 선수가 2015시즌에 기록한 fWAR은 무려 7.8로 다른 어떤 해의 룰5 드래프트 선수들보다 뛰어난 활약을 보였다.
2016시즌에는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조셉 비지아니가 빛났다. 선발투수로 뛰었던 마이너리그 시절보다 시속 5마일 가량 빠른 공을 던지면서 토론토의 핵심 불펜으로 자리잡았다. 67⅔이닝, 평균자책점 3.06 , 1.2 fWAR이라는 뛰어난 성적에 포스트시즌에서도 중용되며 인상 깊은 활약을 보였다.
이번시즌 룰5 드래프트는 한국 선수들과도 인연이 있다. 볼티모어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었던 최지만은 LA 에인절스의 지명을 받으며 꿈에 그리던 메이저리그 데뷔를 이뤄냈다. 비록 5월까지 0.056/0.292/0.056의 부진한 성적으로 양도지명돼 마이너리그로 강등됐지만, 7월에 재승격돼 22경기를 더 뛰었다. 원 소속 팀 볼티모어로 돌아가지 않은 이유는 볼티모어가 '반환'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또 볼티모어의 김현수는 룰5 드래프트에서 지명된 조이 리카드와 플래툰 짝을 이루기도 했다.
올해 활약한 룰5 드래프티들이 내년에도 잘할 수 있을 거란 보장은 없다. 2015시즌에 뛰어난 활약을 보였던 4명 선수들 중에서 오두벌 에레라(fWAR 3.8)를 제외하고는 모두 부상이나 부진으로 메이저리그에서 많은 경기를 뛰지 못했다. 비지아니 역시 내년에 올해와 같은 활약을 보여줄 수 있을지는 뚜껑을 열어봐야 할 것이며, 최지만 역시 내년을 마이너리그에서 시작할지 메이저리그에서 시작할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원 소속팀에서 40인 로스터에 포함되지 못한 이들은 처음부터 ‘루저’의 입장에서 새 도전을 시작했다. 악조건을 이겨내고 메이저리그에 살아남았다는 것만으로도 값어치가 있다. 얼마 후 있을 룰5 드래프트에서도 15명 내외의 선수들이 지명을 받고 새로운 팀에서 메이저리그 데뷔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받게 될 것이다. 이들의 2017년 시즌은 어떻게 될까.
봉상훈(야구공작소)
야구 콘텐트, 리서치, 담론을 나누러 모인 사람들. 야구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공유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