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명가' 농심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주력 사업인 라면의 시장점유율이 하락하고 있는 가운데 미래 먹거리를 찾겠다며 야심차게 추진했던 사업들이 잇따라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어서다. 라면 사업은 한때 80%에 육박하던 점유율이 60% 이하로 떨어졌고,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의 투자를 진행한 생수 사업은 아직 확고한 2위 자리를 굳히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신사업이던 즉석밥과 커피사업은 경쟁 업체의 공세를 이기지 못하고 잇따라 생산을 잠정 중단하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재의 어려움을 돌파해 낼 '결정적 한방'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14년 만에 즉석밥 생산 중단
19일 식품업계에 따르면 농심은 최근 즉석밥 시장에서 철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2002년 시장에 진출한지 14년 만이다.
농심은 당시 라면·스낵과 함께 즉석밥을 '3대 핵심 사업군'으로 정하고 즉석밥 브랜드 '햅쌀밥'을 선보였다. 햅쌀밥은 농심이 경기도 안양에 110억원을 투자해 전용 공장을 짓는 등 공격적인 투자를 진행해 한때 20%대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즉석밥의 '절대강자'인 CJ제일제당 '햇반'의 아성을 넘어서지 못하고 최근 후발주자인 오뚜기·동원F&B에도 밀리자, 장고 끝에 생산 중단을 결정했다.
농심의 즉석밥 설비 공장은 최근 CJ제일제당이 인수했다. 가격은 농심의 투자비용 수준인 100억원 안팎으로 알려졌다.
농심은 일단 제조 설비를 매각했지만 시장에서의 완전 철수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농심 관계자는 "CJ제일제당에 즉석밥 공장 설비를 매각한 것은 사실이지만, 시장의 해석대로 완전한 철수는 아니다"며 "시장상황을 지켜본 뒤 그때 가서 결정할 일이다"고 말했다.
쓴맛만 남긴 커피사업
농심의 신사업 부진은 이뿐만이 아니다. 커피사업에서도 좀처럼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농심은 지난 2013년 모유·녹용 등에 있는 신체기능유지 활성물질인 강글리오사이드 성분이 들어간 커피믹스 '강글리오' 선보이며 커피 시장에 발을 들였다.
당시 "2~3년 안에 시장 점유율 두자릿수를 점하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혔지만, 3년이 흐른 현재 농심의 커피 사업은 쓴맛만 남긴채 시장에서 사실상 철수되는 분위기다.
이미 지난해부터 주요 대형마트 등에 입점 중단이 시작됐고, 유행에 민감한 주요 편의점에서도 판매실적이 신통치 않아 사실상 발주가 중단된 상태다.
하지만 농심은 커피사업 철수에 대해 "시장성 있는 제품 리뉴얼을 검토 중이다"고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당초 목표한 리뉴얼 시점보다 1년이 흘렀고 언제쯤 제품이 나올지 가늠할 수 없어 업계에서는 철수하는 분위기로 보고 있다.
한 업체 관계자는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커피믹스 시장에서 차별화만으로 승부하긴 애초에 무리가 있었던 것 같다"며 "농심이 커피와 즉석밥 사업에서 잇따라 철수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미래 먹거리로 부상한 생수사업에 더욱 집중하겠다는 전략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물에 꽂힌 농심, 성적은 기대 이하
농심이 최근 미래 먹거리로 낙점한 생수 사업 역시 아직은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표를 받고 있다.
농심은 2012년 백두산 물을 사용한 생수 브랜드 '백산수'를 론칭하며 생수사업에 뛰어들었다. 지난해에는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인 2000억원을 투자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 기대만큼의 성과가 나오지 안고 있다. 광동제약 '삼다수'의 압도적인 1위 속에 생수시장 2위 자리도 불안한 상태다.
닐슨에 따르면 지난해 생수 브랜드별 순위는 삼다수가 44.8%로 압도적인 1위를 기록한데 이어 2, 3위는 롯데칠성음료의 아이시스 8.0(5.7%)와 백산수(5.6%)였다.
올 상반기에는 삼다수가 43.9%, 백산수는 6.8%, 아이시스 8.0은 5.9%를 기록했다. 백산수의 점유율이 소폭 늘긴 했지만, 아이시스 8.0을 비롯해 아이시스 평화공원산림수 등 다수의 생수 브랜드를 보유한 롯데칠성음료의 전체 생수 점유율은 지난해 9.4%에서 올 상반기 10.2%로 오히려 늘었다. 업체별 생수 점유율에서는 아직까지 농심이 3위인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농심이 미래동력인 생수시장에서는 아직까지 확고한 2위 자리를 굳히지 못하고 있고 신사업으로 추진했던 즉석밥 및 커피사업에서는 잇따라 생산을 잠정 중단하는 등 '삼중고'를 겪고 있다"며 "즉석밥과 커피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가장 잘하는 사업인 라면과 미래동력인 생수사업에 집중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농심은 올 상반기 매출 1조953억원, 영업이익 448억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 대비 매출은 2.4%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13.5% 줄었다. 증권업계에서는 농심이 올 3분기에도 특별한 호재가 없어 전년 동기 대비 영업이익이 42%나 줄어든 217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