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는 가습기살균제 제조·판매업체인 애경산업·SK케미칼·이마트가 인체에 유해한 성분을 숨기고 광고했다는 혐의를 사실상 무혐의 처분했다. 이에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측은 "공정성과 형평성을 잃고 업체들에 면죄부를 줬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공정위는 지난 19일 제3소회의에서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과 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을 주성분으로 하는 가습기살균제 제조·판매업체 3곳이 해당 성분이 독성물질이라는 점을 은폐하고 광고했다는 혐의에 대해 심의절차 종료를 의결했다고 24일 밝혔다.
심의절차 종료는 사실관계 확인이 어려워 법 위반 여부를 판단할 수 없는 경우를 말하는 것으로 처벌을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무혐의와 같다.
애초 공정위 심사관들은 이들 업체가 표시광고법을 위반했다는 혐의를 두고 조사에 착수해왔다. 공정위는 지난 4월 애경과 SK케미칼에 대한 신고를 접수 받았고 이마트는 직권인지를 통해 조사에 들어갔다. 담당 심사관들은 이들 업체가 제품의 주성분명과 주성분이 독성물질이라는 점을 은폐하고 표시·광고한 것으로 판단했다.
환경부에서 CMIT와 MIT의 인체 유해성에 대한 연구에 착수한 점도 공정위가 사건 조사를 진행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공정위 전원회의에서는 다른 결정을 내렸다. 전원회의에서는 가습기살균제의 인체 위해성 여부가 아직 확인되지 않았고 환경부 추가 조사도 진행되고 있다는 이유로 표시광고법 위반에 대한 최종 판단을 미룬 것이다.
김성하 공정위 상임위원은 "정부가 피해자에게 지원금을 지급한 것은 위해성 여부를 인정한 것과 다르다"며 "지원금 지급은 선지원 후보상 방침에 따라 지원한 것"이라고 말했다.
CMIT와 MIT의 유해성 여부에 대해서도 심사관과 전원회의는 의견차를 보였다. 전원회의에서는 이들 원료가 제품에 쓰였지만 실제 판매 단계에서는 0.015%로 희석돼 인체 위해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아직 환경부에서 CMIT, MIT 등이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라 공정위의 결정이 적절했는지에 대한 논란이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측은 이번 공정위의 결정에 즉각 반발했다.
환경보건시민센터는 이날 광화문 이순신동상 앞에서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5년간 건강 피해가 확인됐고 새로운 증거들이 제시됐는데도 공정위는 귀를 막고 눈을 감은채 살인기업 편에 섰다"며 비판했다.
환경보건시민센터는 "다음주면 SK케미칼·애경산업·이마트에 대한 국회 국정조사특위의 청문회가 열린다"며 "이 문제는 지난 50여 일 동안 국정조사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으로 떠올랐는데도 공정위의 이번 의결은 검찰과 환경부의 기존 입장을 되풀이한 것으로 그동안 지적된 문제점이 하나도 반영되지 않았다"고 했다.
환경보건시민센터가 접수한 전체 가습기 피해자 1528명 중 CMIT, MIT제품을 사용한 피해자는 167명이며 이 중 사망자는 37명에 달한다.
앞서 공정위는 2012년 인체에 해를 끼치는 것으로 확인된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과 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을 사용한 옥시와 홈플러스 등에 52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검찰에 고발 조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