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별반 다르지 않다. 샌프란시스코가 후반기 첫 20경기에서 6승 14패로 부진을 겪었지만, 여전히 지구 1위를 사수하고 있다. 다저스도 클레이튼 커쇼를 비롯한 주축 투수들이 부상 중임에도 두꺼운 선수층을 자랑하며 샌프란시스코를 뒤쫓고 있다.
오히려 오프시즌 잭 그레인키와 셸비 밀러 등을 영입하며 야심차게 시즌을 준비했던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가 47승 66패로 지구 최하위에 쳐져 있다. 대신 3위 자리에는 낯선 팀이 올라 있다. 로키 산맥의 후예 콜로라도 로키스다.
콜로라도는 시즌의 3분의 2가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55승 59패로 승률 5할에 근접한 승률을 올렸다. 4연패에 빠지기 전까진 딱 5할 승률이었다. 와일드카드가 1장 더 늘어난 덕분에 포스트시즌 진출도 도전 범위 안에 있다.
해발 1600m에 위치하는 홈 구장 쿠어스필드는 '투수들의 무덤'으로 악명높다. 희박한 공기 탓에 타구가 멀리 뻗어나간다. 변화구의 각도도 예리함이 떨어진다. 제구에도 애를 먹는다. 일부 투수는 쿠어스필드에서 던지는 것을 거부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20년이 살짝 지난 현재까지 콜로라도에서 살아남은 투수는 몇몇 있었다. 2002년 15승을 거두며 콜로라도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 신인왕인 제이슨 제닝스는 강력한 싱커가 일품인 투수였다. 2008시즌 200이닝과 16승을 거둔 애런 쿡도 제닝스와 유사한 타입의 투수였다. 그 해 그가 기록한 55.9%의 땅볼 유도율은 당대를 풍미했던 싱커볼러인 브렌든 웹(64.4%)과 데릭 로(60.3%)에 이은 3위의 기록이었다. 2007시즌 기적의 '록토버' 열풍을 이끌었던 제프 프랜시스는 공은 빠르지 않았지만 타자들의 타이밍을 빼앗는 체인지업이 뛰어난 선발투수였다.
하지만 이들은 부상으로 인해 꾸준한 활약을 이어가는데 실패했다.
'콜로라도의 에이스' 하면 빼놓을 수 없는 투수가 우발도 히메네스다. 최근의 히메네스는 93마일의 패스트볼도 던지기 힘들어하지만, 콜로라도 시절만 하더라도 100마일짜리 패스트볼을 심심찮게 던지는 투수였다. 콜로라도 역사상 200이닝 이상·평균자책점 4점대 이하 기록은 딱 네 번 나왔다. 그 중 2번을 히메네스가 해냈다. 19승 8패 214삼진 평균자책점 2.88을 기록한 2010시즌은 콜로라도 투수가 다시 거두기 어려운 기록이다. 19승은 콜로라도 단일시즌 최다승, 200이닝-200삼진은 2000년 이후 콜로라도 투수들 가운데 유일한 기록이다.
그러나 영원할 것만 같았던 히메네스의 강속구도 2011시즌을 기점으로 급격히 하락했다. 패스트볼 평균 구속은 2010년 96.1마일에서 이해 93.5마일로 떨어졌다. 히메네스는 패스트볼의 경쟁력을 잃자 급격한 부진에 빠졌고, 결국 시즌 도중 클리블랜드로 트레이드되며 짧은 쿠어스필드 생활을 마쳤다.
히메네스의 빈자리는 생각보다 컸다. 콜로라도 마운드는 지난해까지 4시즌 연속 지구 최하위에 그쳤다. 전임 짐 트레이시 감독은 2012시즌 도중 ‘4인 75구 로테이션’이라는 괴상한 작전을 쓰기도 했다. 그만큼 1경기를 믿고 맡길 수 있는 선발투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2010시즌 83승 79패를 마지막으로 지구 하위권을 전전했던 콜로라도가 올시즌 반등에 성공한 이유는 마운드에 있다. 팀 득점은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리그 1위. 콜로라도의 팀 평균자책점은 4.78로 여전히 리그 13위에 그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와는 다르게 선발투수들이 '이기는 야구'를 하면서 좋은 성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벌써 지난해 선발승(41승) 기록을 넘어섰다.
2013년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전체 3순위에 지명된 존 그레이는 미래의 에이스로 성장할 재목으로 꼽힌다. 대학시절부터 100마일이 넘는 패스트볼을 던진 강속구파다. 지난해 메이저리그에 올라와서는 다소 고전했지만 올시즌 평균 구속이 다소 회복(지난해 94.4마일 → 올해 95.2마일)하며 호투하고 있다. 콜로라도 선발투수 가운데 유일하게 이닝당 1개 이상의 탈삼진을 잡아내고 있으며 홈/원정 편차도 가장 작다.
지난해 8승을 거두며 어느 정도 기대감을 드러냈던 채드 베티스는 그레이처럼 폭발적인 구위를 갖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미래의 2~3선발로서는 충분한 평가를 받고 있는 선수다. 콜로라도 투수 가운데 가장 많은 선발 등판과 퀄리티스타트를 만들어냈다. 조금 더 분발하면 2010시즌 히메네스 이후 처음으로 200이닝을 돌파하는 콜로라도 선발투수가 될 수 있다. 토미존 수술에서 돌아온 타일러 챗우드는 홈과 원정의 편차는 큰 편이다. 하지만 원정에서 만큼은 지구 내 경쟁팀 에이스인 클레이튼 커쇼와 매디슨 범가너가 부럽지 않다(6승 평균자책점 1.30). 시즌 중반 메이저리그에 합류한 늦깎이 신인 타일러 앤더슨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콜로라도 프런트의 제2의 히메네스, 그레이 찾기는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프랜차이즈 유격수 트로이 툴로위츠키를 토론토에 주며 2명의 강속구 투수(제프 호프먼, 미겔 카스트로)를 받았다. 이들은 트리플A에서 메이저리그 데뷔를 앞두고 있다. 또 지난 6월 드래프트에서 101마일 패스트볼을 던질 수 있는 고교 우완 라일리 핀트를 480만 달러 계약금으로 계약에 성공했다.
결국 관건은 쿠어스필드에서 롱런을 할 수 있느냐다. 팀내 역사상 최고의 에이스인 히메네스도 풀타임 시즌으로 계산하면 채 4시즌을 버티지 못했다. 오히려 올시즌이 계약 마지막 해인 팀내 최다승(85승) 투수 호르헤 데라로사가 부침은 있었지만 9시즌 째 로키산맥을 지키고 있다. 콜로라도는 히메네스의 폭발력과 데라로사의 꾸준함을 겸비한 투수를 찾을 수 있을까. 새로운 에이스를 찾는 날, LA 다저스와 샌프란시스코의 양강구도를 깨트리는 날이 더욱 가까워질 것이다.
반승주(비즈볼프로젝트)
지속적인 스포츠 콘텐트 생산을 목표로 하는 젊은 스포츠 연구자들의 모임. 일간스포츠와는 2014년부터 협력 관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