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친일파로 명성을 떨친 염석진이 세월을 뛰어넘어 조국을 지키는 비밀요원 장학수로 돌아왔다. 불혹을 넘긴 나이에도 천의 얼굴, 팔색조, 변신의 귀재라 불리는 이정재(45)다.
이정재를 중심으로 두고 본다면 영화 '인천상륙작전'(이재한 감독)에 대한 평가는 딱 둘로 나뉜다. '도둑들'부터 '관상', '암살'에 이르기까지 충무로 상위 1% 흥행보증수표 이정재가 선택한 작품이기 때문에 믿고 본다는 것과, 그런 이정재가 왜 '인천상륙작전'을 선택했는지 모르겠다는 의구심이 든다는 것.
"염석진만 싫어할 줄 알았지 제가 같이 욕 먹을 줄은 몰랐잖아요. 하하" 이정재의 이유는 명확했다. 극악무도한 친일파 염석진의 그림자를 조금이라도 빨리 떼어내고 싶었고, 애국, 애족을 강조한 작품이라도 제 손에 들어온 '한국형 첩보영화'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진정성이 보였기 때문일까. 영화에 대한 호불호는 갈릴지언정 이정재의 연기력에 대해서는 한 마음 한 뜻으로 극찬이 쏟아지고 있다. 더 이상 최선을 다 할 수 없다 생각될 정도로 열연을 펼친 이정재의 노고가 퇴색되지 않길, '인천상륙작전' 역시 그의 대표작으로 자리하길 모두가 바라는 이유다.
-'인천상륙작전' 감상평을 전해달라.
"솔직히 난 재미있게 봤다. 영화에 대한 좋은 평도 있고 그렇지 않은 평도 있는 것 같은데 사실 혹평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고민과 걱정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어우, 저게 뭐야'라고 생각될 정도로 치명적인 오점은 없었던 것 같다. 최선을 다 했다는 것에 위안을 삼는다면 만족하지는 못하더라도 외부인, 내부인이 걱정하는 것 정도 만큼은 아니지 않나 싶다."
-어떤 부분을 가장 걱정했나.
"첫 번째는 '인천상륙작전'과 관련된 모든 시간이었다. 한국 영화의 퀄리티가 굉장히 높아진 상황에서 우리 영화는 촬영 기간부터 후반 작업, 개봉까지 타이트한 스케줄로 움직여야 했다. 주어진 시간이 타 영화의 3분에 2정도 밖에 안 됐기 때문에 '가능할까. 해낼 수 있을까' 싶었다. 무엇보다 CG가 많이 들어가는 작품이라 더 걱정을 했던 것 같다."
-‘암살’ 염석진에 이어 또 한 번 애국적 성격이 강한 캐릭터를 택했다.
"일부러 찾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관심이 있는 것은 맞다. 광복절 등 시기가 되면 모든 방송사에서 관련 다큐멘터리를 일제히 보여준다. 지금까지 소개된 수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있다면 소개되지 않은 분들도 있다. 자료 조사를 할 때마다 한 두 분 씩 나타나고 그 분들의 스토리를 들어보면 한 편의 영화나 다름없다. 소재가 떨어질리 없다. 이런 스타일의 작품이 꾸준히 만들어지는 것 같다."
-실화를 소재로 재창조해 낸 이야기라는 부담감도 있었을 것 같다.
"부담감도 있었고 고민도 많이 됐다. 사실 인천상륙작전은 위험 요소가 거의 없는 작전이었다.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폭격이 많지도 않았고 연합군들의 사상자도 거의 없었다. 하지만 영화를 그렇게 만들면 재미없지 않냐. 그래서 이전의 첩보 활동에 주목했다. 우리가 만들어낸 가공의 이야기들이 너무 영화적 흥행 요소만 염두해 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했는데 최선의 선택이었다."
-장학수라는 인물은 어떻게 준비했나.
"일단 제작사에서 준비해 준 자료가 많았다. 다큐멘터리를 많이 봤고 관련 인터뷰도 참고했다. 처음에는 '아무리 그래도 이런 일이, 이런 인물이 진짜 있을 수 있겠어?'라고 의심하긴 했는데 자료를 보면서 '단순히 재미를 위해 과장한 것 만은 아니구나'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영화보다 더 한 현실이 있더라. 그 때부터 의심없이 믿음을 바탕으로 연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