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운드가 지난해보다 높아졌다고 느꼈다. 그러나 5월이 지나가면서 점점 지난해와 크게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아무래도 훌륭한 투수들이 잘 보이지 않아 그런 것 같다.
프로야구 출범 이후 한동안 '좋은 투수다' 하면 망설임 없이 꼽을 수 있는 이름들이 여럿 있었다. 맨 처음에 박철순(OB)이 있었고, 그 다음에는 최동원(롯데)과 김시진(삼성), 선동열과 조계현, 이강철(이상 해태) 등으로 이어졌다. 그 다음 세대에도 이상훈(LG), 송진우, 구대성, 정민철(이상 한화), 정민태(현대) 등 좋은 국내 투수들이 참 많았다. 리그 전체는 물론이고, 그런 투수가 몇 명씩 있는 팀도 있었다.
예전에 해외 진출 선수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오히려 지금보다 더 많았다. 1990년대에는 한양대에 다니던 박찬호가 메이저리그로 갔다. 고려대 조성민도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했다. 이를 계기로 정민철과 정민태도 일본 리그에 도전했다. 최동원과 선동열 역시 메이저리그에서 러브콜을 받았지만 한국에 남은 경우다. 선동열은 결국 일본에 가서 성공하지 않았나. 그 외에도 서재응, 김선우, 김병현, 봉중근 등 유망한 투수를 미국에서 먼저 뽑아서 데려갔다.
그런데도 국내 리그는 잘 유지가 됐다. 좋은 투수들이 많아 스타도 많이 나왔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로는 그런 투수들을 보기가 어렵다. 2006년 류현진, 2007년 김광현 이후로 새로 나온 특급 투수가 거의 없지 않다. 이름만 딱 대도 상대팀이 무조건 맞붙기 싫어하는 투수가 많이 나와야 하는데, 정말 몇 명 되지 않는다. 특히 오른손 투수는 더 모자란다. 꼭 강속구를 펑펑 던지는 투수여야 한다는 게 아니다. '오늘 이 투수가 나오면 이기기 어렵다'는 존재감을 줘야 한다. 그 정도로 위협적인 투수가 많지 않다.
벌써 10년 가까이 특급 투수가 나오지 않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봤다. 그러다 대학 야구팀에서 인스트럭터로 일하는 프로 출신 코치들의 얘기가 기억났다. "고교를 졸업하고 입학한 투수들은 몇 경기 던지지도 않았는데 오자마자 수술부터 한다"고 했다. 1990년대와는 달리 지금 대학에 가는 선수들은 프로 구단 지명을 받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 아닌가. 그런데도 입학 첫 해에 수술부터 할 정도면 문제가 심각하다. 아무래도 고교 시절 너무 많은 공을 던진 게 문제 아닌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는 얘기다.
앞서 언급했던 훌륭한 투수들은 프로나 대학에서 요즘 투수들보다 더 많은 공을 던졌다. 그런데도 입단한 지 얼마 안 돼 수술대에 오르는 일은 없었다. 프로에서 4~5년은 던진 뒤에 어깨나 팔꿈치에 탈이 났다고 한다면 이해가 간다. 그러나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수술을 거친다는 건 학창 시절 등판의 문제로 볼 수밖에 없다.
전국대회에서 아파도 참고 무리하게 던지다 보면, 정작 가장 중요한 시기에 수술을 하게 된다. 선수가 프로에 오면 감독이나 투수 코치에게 공 던지는 요령과 게임 운영 방법을 배우고 진짜 실력을 발휘해야 한다. 그런데 입단하자마자 수술하고 재활하느라 시간이 다 간다. 프로 선수로 성장할 시간이 부족하다.
고교 시절은 프로 선수로 성장할 수 있는 바탕을 만들어 가는 시기다. 그런데 요즘은 고등학생들도 겨울에 해외 전지훈련을 떠난다. 아마추어 선수들도 프로처럼 따뜻한 곳에서 훈련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내 생각엔, 천만의 말씀이다.
아마추어 선수들이 겨울에 공을 던지고 경기하는 것은 강력하게 막아야 한다고 본다. 프로도 쉴 때는 쉬어야 하는데, 아마추어는 더 쉬어야 하는 것 아닌가. 고교 투수라면 오히려 겨울엔 체력 훈련에 중점을 둘 필요가 있다고 본다.
요즘은 학생 야구에서 기술을 너무 일찍 가르친다. 공을 이렇게 던져라, 저렇게 던져라 하면서 공 던지는 기술에만 중점을 두고 지도한다. 선수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지도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학생 시기에는 기술 훈련보다 체력을 기르는 게 먼저다. 부상 없이 잘 던질 수 있는 몸을 만들고 유지하는 게 첫 번째다. 그래야 프로 선수로 성공할 수 있다. 고등학교까지만 야구하고 그만 두고 싶은 선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모든 게 고교 야구 탓만은 아니다. 프로 지도자들이 잘못 '만져서' 다치는 선수도 있을 것이다. 야구 선수의 몸은 전체가 하나로 연결된 유기체다. 투수의 피칭폼은 아주 미세한 부분만 잘못 바꿔도 금세 탈이 난다. 정말 작은 차이가 큰 부상의 원인이 된다.
예전 OB에 이진이라는 투수가 있었다. 아주 유망했다. 두산과 NC에서 뛰었던 이혜천과 비슷한 스타일이었다. 그런데 부상으로 꽃을 피우지 못했다. 프로에 와서 투구폼을 잘못 고친 게 원인이었다. 이혜천도 일본 야쿠르트에서 고전했고, 한국에 돌아온 뒤에도 계속 부진했다. 일본 코칭스태프가 이혜천의 투구폼에 변화를 주려다 실패한 영향이 크다고 본다.
특급 투수가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 현실이 아쉬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 봤다. 어디서부터 문제점을 찾고 고쳐 나가야 할지 알 수가 없다. 그래도 이것 하나는 분명하다. 고교 야구 투수들에게도 휴식이 필요하다. 쉬어야 할 때는 쉬게 해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