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현역에서 아름답게 은퇴한 뒤 지난 1월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날아간 차두리다. 지도자 연수를 위해서다.
그는 "독일에서 공부를 하고 지도자 자격증을 딸 것"이라며 "독일 팀에 들어가 실습도 하고 독일 유소년도 가르칠 것이다. 독일 축구 시스템도 익히고 싶다"고 다짐한 채 독일행 비행기에 올랐다.
약 4개월이 지났다. 그는 공부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차두리의 한 지인은 "밥 먹는 시간만 빼고 공부에 열중하고 있다"고 전했다.
'열공'을 제외하면 그의 근황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전해지지 않았다. 간혹 독일에 간 신태용(46) 올림픽대표팀 감독과 황선홍(48) 전 포항 스틸러스 감독 등 친한 축구인과 함께 찍은 사진이 공개됐을 뿐이다. 최근에는 아버지 차범근(63)의 '차범근 축구교실' 행사 참석을 위해 잠시 국내에 들어온 것 정도가 알려졌다.
그렇게 차두리의 근황이 궁금하던 차에 최근 독일에서 반가운 '미담' 하나가 날아들었다.
독일에서 차두리를 직접 보고 느끼고 경험한 이야기였다. 이 미담을 소개한 사람은 안익수(51) U-19 대표팀 감독이다.
최근 U-19 대표팀은 독일에서 훈련 및 친선경기를 치렀다. 이곳에서 차두리를 만난 안 감독은 "(차)두리에게 정말 고맙다. 나중에 두리에게 거하게 한 턱 내야겠다. 두리 덕분에 대표팀 아이들이 정말 좋아했다"고 환하게 웃었다.
독일에서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안 감독이 전한 미담을 바탕으로 당시 상황을 재구성했다.
대표팀이 독일 U-19 대표팀에 2연패를 당한 뒤였다. 패배감에 빠져 있던 지난달 1일(한국시간) 도르트문트의 대표팀 숙소에 갑작스럽게 차두리가 들이닥쳤다. 대표팀 후배였던 박주호(29·도르트문트)도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박주호는 리그 경기를 앞두고 있었지만 도르트문트까지 온 후배들을 외면할 수 없었다. 차두리는 프랑크푸르트에서 3시간을 달려왔다. 대표팀 후배들을 위해서 바쁜 시간을 쪼갰다.
사진=한국 U-19 대표팀
사진=한국 U-19 대표팀
차두리는 후배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그 전에 그는 "안 감독님 및 코칭스태프들은 모두 나가주세요"라고 요청했다. 후배들과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였다. 대표팀 선수들이 지도자 눈치를 보지 않고 마음껏 말할 수 있는 자유로운 환경을 만든 것이다.
안 감독도 흔쾌히 받아들였다. 대표팀 선수들은 환호했다. 한국 축구 선배이자 영웅의 진심은 후배들의 심장을 강하게 흔들었다. 차두리와 후배들의 대화는 무려 '3시간'이 넘게 이어졌다.
"감독님 무섭지?"
차두리가 대표팀 선수들에게 던진 질문이다.
"네!"
후배들은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감독님이 무서워도 너희들이 할 수 있는 걸 해야 해. 지도자가 무섭게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야. 하지만 무섭다고 피하거나 자신이 하고 싶은 걸 못하면 절대 발전하지 못한다."
차두리가 진심으로 조언했다.
"감독님이 무서워 경기력에 문제가 생긴다면 자신이 가장 잘못한 거다. 무섭더라도 원하는 걸 요구해라. 감독과 대화를 시도해라. 성장하기 위해서는 그렇게 해야 한다. 감독이 성장시켜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하는 것도 잊어서는 안 돼."
그의 경험담을 대표팀 선수들은 경청했다.
차두리와의 대화가 효과가 있었던 것일까. 대표팀은 3일 뒤 열린 샬케 U-19 대표팀에 3-0 완승을 거뒀다. 독일에서 열린 평가전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승리를 쟁취하는 순간이었다. 김정환(19·FC 서울)이 2골을 넣었고 강지훈(19·용인대)이 1골을 추가했다. 대표팀은 승리에서 얻은 성취감을 가지고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사진=한국 U-19 대표팀 김정환
사진=한국 U-19 대표팀 김정환
2골 주인공 김정환에게 차두리의 '미담'을 더 들을 수 있었다.
차두리의 현역 마지막 팀이 FC 서울이라서 소속팀 후배 김정환에게는 더 크게 다가왔다고 한다. 김정환이 차두리에게 들은 이야기도 소개한다.
"그 선수들 몸값을 다 합치면 엄청 날거야. 아마도 1000억은 넘지 않을까. 대단하지?"
독일 U-21 대표팀 경기를 함께 본 뒤 차두리가 던진 말이다.
"너희들도 내년에 U-20 월드컵에 나가잖아. 큰 무대야. 또 좋은 기회야. 월드컵도 그렇고 평소에도 최선을 다 하다 보면 그 친구들 보다 더 크게 성장할 수 있어. 너희들은 무한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어."
내년 한국에서 열리는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을 기다리는 이들의 의지를 불태우는 말이었다.
"절대 주변의 상황들로 인해 기죽지 마라. 강호를 만나도 물러서지 마라. 어쩔 수 없이 물러섰다면 다시 마인드 컨트롤해서 자신의 플레이를 빨리 되찾아야 한다. 그렇게 하면 세상에 강팀은 없다."
2002 한일 월드컵 4강 신화 주역다운 발언이었다.
이런 의미 깊은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차두리와 대표팀 선수들의 대화는 끝났다.
독일에 있지만 차두리는 똑같이 살고 있다. 한국 축구 미래들을 위해 3시간을 한걸음에 달려왔고 3시간을 소통했다. 이 역시 한국 축구 발전을 위한 길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한국 축구에 조금이라도 힘을 보탤 수 있다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묻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