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서울에 신규 면세점을 추가하는 방안을 검토하면서 지난해 어렵게 사업권을 따낸 신규 업체들이 울상이다. 그동안 진척을 보이던 명품 브랜드와의 협상이 또 다시 미궁으로 빠지면서 자칫 '명품 없는 면세점'이 될 처지에 놓였기 때문이다. 일부에서 정부의 갈팡지팡 면세점 정책이 면세 사업자 간 브랜드 유치경쟁을 더욱 부추겨 결국 명품들의 콧대만 높여주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 "신규 면세점 2~3곳 늘릴 것"
2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면세점 특허기간을 5년에서 10년으로 늘리고 면세점 특허수수료율은 현행보다 최대 20배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시내면세점 신규 특허 요건 완화 방안도 논의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특허 요건 완화로 시내면세점이 추가될 가능성이 제기되자 지난해 신규 사업자로 선정된 업체들 사이에서는 위기감이 돌고 있다. 아직 시장에 안착하지 못한 상황에서 또 다시 면세점이 추가되면 출혈 경쟁이 일어날 것이 불보 듯 뻔하기 때문이다. 앞서 정부는 지난해 HDC신라면세점, 한화갤러리아, 두산, 신세계 등에게 신규 면세 사업권을 내줬다.
이들 업체가 경쟁 과열과 함께 가장 걱정하는 것 중 하나는 '해외 명품 유치'이다. 현재 각 업체가 사활을 걸고 있는 명품 브랜드 유치에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면세점 추가 소식은 악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해외 명품 유치에 민감한 이유는 사업의 성패와 직결되기 때문. 특히 중국인 관광객(요우커)이 선호하는 샤넬, 에르메스, 루이비통 등 이른바 3대 명품의 입점은 면세점의 품격과 매출을 결정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업계 관계자는 "명품 화장품 토산품 등을 한 곳에서 모두 살 수 있다는 점이 요우커를 비롯한 외국인 관광객들이 면세점 쇼핑을 선호하는 핵심요인"이라며 "명품 브랜드가 빠진 면세점이라면 쇼핑 선호도가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명품 콧대만 높아져
상황이 이렇게 되자 명품업체의 콧대만 잔뜩 높아졌다. 정부의 면세점 추가설에 해외 명품 브랜드들은 입점 여부를 결정하지 않으면서 면세 사업자 사이에서 이익을 저울질하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좋은 입점 조건이 제시되는 상황이라서 결정을 미루면서 몸값을 올리는 전략이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서울 시내 면세점 추가 여부를 다음달 확정·발표할 것으로 알려져 명품 사업자의 태도가 '지켜보자'는 쪽으로 변해버렸다"며 "명품 브랜드 입장에서는 면세점이 늘어날수록 더 유리하기 때문에 협상을 서두를 이유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오는 25일 전 점포 공사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오픈하는 HDC신라면세점은 최종적으로 루이뷔통, 샤넬, 에르메스 등 3대 명품 브랜드가 빠진 채 손님을 맞이하게 됐다. 신라면세점 관계자는 "불과 한 달 전만해도 루이뷔통, 에르메스 측이 면세점을 방문해 매장 위치, 평수까지 협의하고 구두 입점 약속을 받았지만 최근 이들이 최종 사인을 보류했다"고 말했다.
다른 서울 시내 신규 면세점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지난해 7월 신라아이파크면세점과 함께 신규 사업권을 따 올해 7월 그랜드오픈을 앞두고 있는 갤러리아면세점63도 주요 명품 브랜드 유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달 문을 연 SM면세점과 오는 5월 개장을 앞둔 두산면세점, 신세계디에프도 같은 처지다.
이들은 "명품 브랜드 측에서 ‘일단 롯데월드타워점이나 SK워커힐 면세점의 사업권이 만료되면 계약을 생각해 보겠다’는 입장이었지만 연장 영업될 것이 확실시됨에 따라 유치가 더욱 어려워졌다"고 토로했다.
업계에서는 수시로 변하는 정부의 면세점 정책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한 관계자는 "면세점 재승인 심사로 기존 업체가 탈락하고 신규 시내면세점이 허가된 지 얼마나 됐다고 다시 면세점 추가설이 나오느냐"며 "일관성 없는 정책으로 한국 면세점의 경쟁력이 흔들린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