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스피드스케이팅 대표팀은 2014 소치 겨울올림픽에서 세계 최대의 방위산업체 록히드마틴의 첨단 기술을 도입해 최고의 성적을 거둘 것이라 자신했다. 록히드마틴의 기술력과 스포츠 의류회사 언더아머가 2년 동안 최첨단 기술과 소재를 집약해 만들어낸 유니폼 ‘마하39’를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는 초라했다. 노메달에 그친 미국 대표팀은 “유니폼이 공기 저항을 크게 해 경기력을 떨어뜨렸다. 새 유니폼에 적응할 시간도 없었다”고 불만을 토해냈다.
성적을 내지 못한 미국 대표팀의 ‘핑계(?)’로 치부할 수만은 없다. 0.001초 차이로 순위가 바뀌는 스피드스케이팅에서 유니폼이 차지하는 역할은 매우 크다. 장거리 최강자 스벤 크라머(30·네덜란드)도 “스피드스케이팅에서 유니폼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어떤 유니폼을 입는지에 따라 차이가 매우 크다”며 유니폼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스피드스케이팅 강국으로 손꼽히는 미국과 러시아, 네덜란드가 매년 수억원대의 투자를 아끼지 않고 유니폼 개발에 매진하는 이유다.
‘빙속 강국’ 네덜란드는 그 중에서도 유니폼 개발에 가장 앞장서고 있는 나라다. 밴쿠버 대회에서 얻은 8개의 메달을 불과 4년만에 3배 가까이 늘린 네덜란드의 성적 상승 뒤에는 선수들의 노력 못지않은 유니폼의 과학이 숨어 있다.
네덜란드 대표팀 유니폼을 제작하는 스포츠 의류업체 ‘스포츠 컨펙스’는 본사 직원 20여명과 3개의 공장을 포함해 총 600여명의 직원을 거리고 있다. 그러나 규모가 아주 큰 회사라고는 볼 수 없다.
하지만 이 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기술력은 네덜란드 스피드스케이팅의 성적 상승에 크게 기여했다. 크라머를 비롯한 네덜란드 대표팀 전원이 스포츠 컨펙스의 유니폼을 입고 소치에서 23개의 메달을 따냈다. 크라머가 “수년 동안 스포츠 컨펙스의 유니폼을 입었는데 가장 빠르다. 편안함을 물론 자신감까지 심어준다”고 공언할 정도다.
스포츠 컨펙스는 최고의 유니폼을 만들기 위해 항공기나 자동차 개발에서 주로 실시하는 ‘윈드터널’ 테스트까지 유니폼에 도입했다. 풍동(風洞) 안에 인위적으로 빠른 공기를 흘려보내 공기의 흐름이나 그 흐름이 물체에 미치는 영향 등을 알아보는 윈드터널 테스트를 통해 유니폼이 받는 공기저항과 마찰계수를 측정한다. 윈드터널 테스트 1회당 3000만원 가량의 비용이 발생하지만 소재부터 완제품까지 끊임없는 실험을 반복해 선수 개개인에게 맞는 최적의 유니폼을 만들어낼 수 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선수 체형의 미세한 변화까지 통제하기 위해 대회 때마다 회사 직원들이 현장에 나가 유니폼을 점검하는 '애프터 서비스'까지 실시한다. 소치 23개 메달의 기적을 뒷받침한 과학과 기술의 앙상블이다.
안방에서 열리는 2018 평창 겨울올림픽을 앞둔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대표팀 역시 네덜란드 기술력의 혜택을 톡톡히 누릴 전망이다.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대표팀을 후원하는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 휠라(FILA)가 스포츠 컨펙스와 독점권 계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대표팀을 후원하고 있는 휠라는 스포츠 컨펙스에 연간 100만 달러(약 12억원) 가량의 연구비를 지원해 '휠라 러버수트'를 개발했다. 휠라가 독점권을 보유하고 있어 평창 대회에서는 오직 네덜란드와 한국만 이 유니폼을 입을 수 있다.
2017년 하반기 공개 예정인 휠라 러버수트는 소치에서 검증이 끝난 최적의 무게 330g을 바탕으로 공기저항과 마찰계수를 최대 8~9% 감소시키는 것을 목표로 제작 중이다.
스포츠 컨펙스의 최고경영자(CEO) 베르트 판 데르 툭(48)은 “평창 때는 휠라와 함께 개발한 '휠라 러버수트'로 소치 때보다 더 빠르고 좋은 유니폼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0.001초의 전쟁을 치르는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대표팀에는 '비장의 무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