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박성웅(43)을 보면 떠오르는 첫인상이다. 역할이 사람을 만든다. 그동안 박성웅은 영화 '신세계'서 본인이 읊조린 대사처럼 날씨부터 확인해야 할 거 같고 손에 무엇이 들렸는지 봐야할 만큼 접근하기 힘든 인물이었다.
하지만 이젠 달라졌다. 지난주 종영한 SBS 수목극 '리멤버' 속 박성웅(박동호)은 조폭 이원종(석주일) 사장의 도움으로 늦깎이 지방법대생이 됐고 가까스로 변호사 타이틀을 딴 인물. 이길만한 소송과 법정 밖에서의 뒷거래, 조폭들 간의 전쟁에서 발생한 법률적 뒤처리까지 해결하는 등 각종 소송을 도맡는 '무늬만 변호사'다. 우연히 유승호(서진우)의 사연을 접하고 그를 돕는 조력자로 활약한다. 경상도 사투리에 화려한 수트까지, 일상에서는 볼 수 없는 변호사의 모습은 코믹하고 때론 유쾌했다.
박성웅은 드라마와 영화 모두 성공을 거뒀다. '리멤버'는 꿈의 스코어로 불리는 전국시청률 20%를 넘기며 종영했고 그가 검사로 출연한 영화 '검사외전'은 전국 관객 900만이 넘었다. 정초부터 뭘 해도 되는 사람이다.
드라마 종영 후 만난 박성웅은 그가 연기한 박동호만큼 밝았다. "이젠 좀 만만한가봐요. 남고생들이 우르르 몰려와 저한테 극중 대사를 해달라고 하더라고요. 예전에는 잘 다가오지도 않으려고 했는데 많이 변했어요. 으하하"라고 호탕하게 웃는다.
-종영 소감이 남다를텐데. "아직 끝난게 실감나지 않는다. 촬영장에 가야할 거 같고 그 곳에서 스태프들과 일해야할 거 같다."
-결말에 대한 아쉬움도 있더라. "주어진 환경에서는 최선의 결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쉬울 수 있지만 모두들 그 안에서 최선의 연기를 끄집어냈다. 재미있게 본 사람도 있다고 하니 감사하다."
-후반부로 갈수록 캐릭터가 모호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4회까진 좋았는데 극중 4년이 지나면서 존재감이 애매해지더라. 이것도 저것도 못하는 박동호가 돼 버렸다. 10회 지나고 이창민 PD랑 상의했다. 그래서 '반복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보단 새로운 모습을 끌어내고 싶다'고 말했다."
-어떤 부분이 끌려 드라마를 선택했나. "입체적인 캐릭터라 좋았다. 보여줄게 많다고 판단해 꼭 하고 싶었다. 허풍이 심하고 허세도 있으며 나름 의리도 있다. 연기하기 편했다."
-화려한 패션이 화제였다. "첫 촬영때 올 화이트 수트에 핑크 셔츠를 입었다. 영 어색하고 나 같지 않았는데 막상 촬영장에 가니 감독이 '약하다'고 해서 놀랐다. 그 다음에는 새파란 슈트를 입고 촬영장에 갔는데 스태프들이 '100m 밖에서도 알아보겠다'고 했다. 이거구나 싶었다."
-원래 즐겨입는 스타일인가. "전혀 아니다. 그냥 청바지에 티셔츠다. 키가 이렇게 크니 뭘 입어도 어울리지 않겠나(웃음). 한 번도 시도하지 않은 패션인데 과감함에 놀랐고 잘 어울려 두 번 놀랐다."
-실제 법학도다. 도움이 됐나. "그냥 전공이었다. 학교 다니면서 법정에 서봤겠나. 전혀 도움 될 게 없다. 대학교 2학년때부터 연예계로 와 졸업하기 급급했다. 사람들이 아직도 법대 출신이라고 하면 믿지 않는다. 학력위조 파동 때 졸업장 좀 보여달라는 사람도 많았다."
-첫 사투리 연기에 도전했다. "아, 마지막까지 힘들었다. 매회 내 분량을 보고 사투리 억양을 녹음해 모바일 메신저로 보내주는 친구가 있었다. 대본 나오면 매니저가 그 친구한테 알려주고 문장 마다 쪼개서 보내줬다. 그걸 보면서 익혔다. 대본이 거의 악보 수준이다. 악센트 강조, 등이 빼곡히 적혀 있다. 대본과 억양 모두 외워야 돼 두배로 힘들었다."
-고향이 어디길래. "충청도에서 태어난 20년 살고 서울서 20년을 넘게 살았다. 부산엔 촬영하러 내려간 적 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사투리는 나와 상관없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캐릭터를 위해 하다보니 힘들더라. 부산 사람들한테 욕 많이 먹었다.(웃음)"
-이미지 반전이다. 이렇게 유쾌할 줄 몰랐다. "원래 그런 유쾌한 모습이 있다. 우리 엄마는 나보고 세상에서 제일 귀엽다고 하더라. 푸하하. 어릴 때 할머니 손에서 자라서 그런지 애교가 많은 편이었는데 어느 순간 안 그렇게 되더라. 알고보면 재미있는 점도 많다."
-유승호를 좋아하는 게 눈에 보이던데. "지금껏 만난 남자들 중 가장 착하다. 가만히 서 있는 유승호를 보고 있으면 다가가서 백허그를 해주고 싶을 정도였다. 나이는 어린데 생각이 깊고 연기에 대한 욕심도 있다. 욕심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혼자만 알고 있다. 한참 동생인데 배울 점이 많다. 승호를 보며 '나는 저 나이 때 무슨 생각을 하고 뭘 했나' 싶다."
-'검사외전'에서는 강동원과 호흡했다. "(강)동원이는 애늙은이 타입이다. 사실 30대 중반이면 애는 아닌데 얼굴과 다르게 무언가 묵직하고 생각이 많다. 촬영이 아닌 쉴 때 한없이 진지하고 코믹 연기 할때도 진지하다. 또 영리하다."
-강동원에게 빚진게 있다고. ."나 대신 폭탄주를 마셔준 적이 있다. 동원이가 술을 즐기는 편이 아닌데 먼저 나서서 도와줘 깜짝 놀랐다. 그게 지난해 9월인데 아직 '흑기사'의 소원이 유효하다고 하더라. 절대 안 까먹는다. 뭘 얘기할지도 두렵다."
-몇년 간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힘들지 않나. "날 찾아주지 않아 일 없는게 힘들다. 체력적으로 아직까진 괜찮다. 사람이 너무 힘들다고 해도 막상 상황이 닥치면 다 하게 되더라."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나. "술이다. 지난 주말에도 마셨다. 주량은 그때 그때 다른데 소주 3~5병까지 마신다. 몸 관리를 해야하니 안주를 잘 못 먹고 술만 마신다."
-고민은 없나. "고민 보다는 늘 감사하다. 지금처럼 편하게 연기할 수 있게 판을 깔아주는 사람들에게 고맙다. 앞으로도 쭉 활동하고 싶다. 시청자들에게 희노애락을 전달하고 싶다. 올해로 만 20년째 배우 생활이다. 지금처럼 나태하지 않고 앞으로도 계속할 수 있는 배우로 남고 싶다. 어렸을 때 잘된게 아니기 때문에 소중함을 잘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