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상경에게 2014년은 '터닝 포인트'다. 그는 데뷔작 MBC 드라마 '애드버킷'(98)에서 검사 역을 맡은 후 공교롭게도 반듯한 이미지의 역할만 줄곧 해왔다. 영화 '살인의 추억'(03)과 '몽타주'(12)에서는 형사, 드라마 '변호사들'(05)에서는 특수부 출신 변호사 서정호를 연기했다. 2008년에는 KBS 사극 '대왕세종'에서 타이틀 롤인 세종대왕을 연기해 근엄한 모습까지 보여줬다.
그랬던 그가 '변화'를 택했다. 시작은 현재 방송 중인 KBS 주말극 '가족끼리 왜 이래'다. 김상경은 여기서 찜질방 양머리 스타일을 선보이는 등 망가짐을 불사한 모습으로 안방극장을 공략 중이다. 김현주와 티격태격하는 장면에선 '이 사람이 김상경이 맞나?'하는 생각까지 들게 한다.
여기에 지난 20일 개봉한 영화 '아빠를 빌려드립니다'는 한층 진일보 된 김상경의 유쾌한 면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극중 서울대를 졸업했지만 10년째 백수 태만 역을 맡은 그는 딸(최다인)이 학교 아나바다 행사에 아빠를 내놓으면서 다양한 에피소드를 경험한다. 딸에게 꼼짝 못하고 아내(문정희)를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한 결 힘을 뺀 듯한 그의 연기가 러닝타임을 가득 채운다. 김상경은 최근 인터뷰에서 "영화를 홍상수 감독하고 처음에 한 세 편 정도 하고 나니까, 주변에서 아트 계열 배우로 생각한다"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동안 하지 않았던 캐릭터다.
"안 해본 역할이어서 좋았다. 시나리오를 볼 때 주안점은 '감동을 주느냐, 아니냐'다. 지금까지는 시나리오를 읽고 감동을 받고 울었던 작품만 했다. 이야기 자체가 가벼운 느낌이 있지만 거기에 (균형을 맞출 수 있는) 감동이라는 코드가 있었다. 원작이 있다는 게 마치 실화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전에 '살인의 추억'(03)에 나오고, 세종대왕도 연기하면서 이미지가 무거운 게 있었지만 원래 성격의 많은 부분이 유쾌하다.(웃음)"
-나름 큰 도전 아닌가.
"한편으로는 걱정스럽기도 하다.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위험성이라고 해야 할까…영화 촬영은 거의 1년 전(2013년 8월31일~11월9일)에 끝났는데, 그 사이 우연치 않게 드라마(KBS 주말극 '가족끼리 왜 이래')에서 유쾌한 역할을 하게 됐다. 주변에서 재밌게 보시더라. 반응이 괜찮아서 한편으로는 영화에 대한 부담을 덜었다. 사람들이 재밌게 봐주시니까 '(내가 이런 역할을 해도) 괜찮구나, 거북해 보이지 않겠구나' 안도하고 있다."
-영화와 드라마에서 연이어 비슷한 역할을 맡은 건 우연인가.
"우연의 일치다.(웃음) 영화 '살인의뢰'(2014년 5월15일~9월10일) 촬영이 끝날 때인 8월쯤 다른 영화를 하려고 시나리오를 보고 있었는데 그때 '가족끼리 왜 이래'가 들어왔다. 처음에는 이런 (망가지는) 캐릭터라고 생각 안했다."
-유쾌한 역할을 연기하면 재밌을 거 같은데.
"17년 정도 연기를 했지만 이런 건 한 번도 안 해봤으니까…'개그콘서트'(KBS)나 'SNL'(tvN)도 하고 오히려 제가 여러 가지 가진 것 중에 (유쾌한 것도) 하나니까, 재밌다. 배우가 우리나라에선 나눠져 있긴 하다. 한쪽에서 진지한 거 하다가 하니까 의외성도 있고 즐겁다."
-그런 면에서 태만을 연기하는 건 어땠나.
"태만도 풀어져 있는 타입이다. 서울대 출신이지만 사업을 하려다가 안 되고, 그 친구가 하는 게 모두 안 된다. 상황이 웃긴 거지 내가 막 웃기는 건 아니다. 태만의 경우는 약간 우리 옆집에 있을 법한 백수 같은 느낌이다."
-원작(홍부용 작가의 동명소설)을 읽고 연기에 들어간 건가.
"일부러 안 읽었다. 대신 감독님에게 많이 물어보는 편이다. '살인의 추억'과 '화려한 휴가'(07)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원래 사건이 있는 건 하다보면 중압감이 있을 수 있다. 어느 부분이 진짜고, 원작에 가까우냐에 딜레마도 있다."
-연기에 제약이 있을 수 있다는 의미인가.
"표현의 수위가 딱 막힐 수 있다. 그래서 콘티도 잘 안 본다. 어떤 작가는 콘티를 너무 자세하게 해서 준다. (경찰 연기를 많이 했지만) 실제 형사들을 만나면 도움이 되는 게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이번 영화에서는 딸과 연기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제가 좀 우리 아들하고 장난을 많이 하는 편이다.(웃음) 영화 속에서 철부지 느낌을 관객분들에게 보여줄 때 그런 게 재밌을 거 같다. 나에게도 어쩌면 배우 이미지를 탈바꿈하는 역할이 되지 않을까 싶다."
-실제 아버지라서 연기하는 게 편한 게 있겠다.
"아버지가 된 다음에 하는 연기와 그 전의 연기에는 차이점이 있다. 심정적으로 고기를 못 먹어본 사람이 그 맛을 어떻게 알겠나. 실제로 경험하는 게 훨씬 좋다."
-'김상경'하면 다작을 하지 않는 배우의 이미지가 강한데.
"옛날에는 일부러 많은 작품을 안 했다. 비워야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비우고 채우는 시간이 빨라졌다. 유연해졌다고 해야하나…하지만 내 마음에 (시나리오가) 마음에 들어야하고, 제작 여건 등 다른 경우의 수를 감안하면 다작이 잘 안 된다. 아무리 빨리 하려고 해도 1년에 1개반…2개 채우기가 쉽지 않다. 다만 내가 본 시나리오와 편수에 비해 성공한 작품이 많다.(웃음)"
-가장 감정적으로 힘들었던 작품은 뭔가.
"'화려한 휴가'다. 동생이 죽는 영화, 눈물 흘리는 코드가 굉장히 많았다. 시간적으로도 많이 울었던 거 같고. 조금 짠했다. 실제 (광주학생운동) 묘지에 가서 동생 같이 보이는 사람의 사진을 찍어서 가지고 다녔다."
-원래 눈물이 많은 편인가.
"다큐멘터리를 보고서도 1,2초면 운다. 이번 작품의 시나리오를 처음 받아서는 세 부분의 작품코드에서 울었다."
-성향적으로 주말극이 잘 맞을 거 같다.
"그렇다. 영화를 홍상수 감독하고 처음에 한 세 편 정도 하고 나니까, 나를 너무 주변에서 아트 계열 배우로 생각하더라.(웃음) 여기에 칸 영화제도 가고 그러니까 비상업적인 영화배우로 생각한다. 주말 드라마처럼 사람들에게 따뜻한 용기를 주는 작품 좋다. 특히 어머니가 좋아하신다."
-연기를 처음 한다고 했을 때 반대는 없었나.
"연극영화과에 간다고 하니까 혼났다. 붙고 난 후에는 군대를 가니까 전과하라고 그렇게 하시더라. 연영과에 다닐 때는 작업복을 입고 밤을 새고 그러니까 아버지가 출근하다가 진지하게 '너 대학 붙은 거 거짓말이지?'이렇게 물어보시기도 했다. 이후 드라마 속 검사로 데뷔해, 주변에서 '검사 아버지'라고 불리고 그 다음에 내가 의사까지 하니까 열심히 하라고 하시더라. '세종대왕 아버지'도 하시지 않았나.(웃음)"
-이번 영화가 공교롭게도 '아빠'라는 장치가 중요하다.
"아버지에 대한 생각과 '나도 어떤 아버지일까'에 대한 생각.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아버지의 정(情)은 뒤 돌아 생각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